"차기 정부의 우선과제는 '개혁과 적폐청산'"

입력 2017. 4. 26.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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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참여정부 초대 청와대 정책실장 이정우 명예교수 인터뷰…
대선 정책 실종의 문제와 차기 정부의 과제를 묻다

“차기 정부의 성패는 1기 내각을 누구로 임명하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참여정부 때의 경험에 비춰, (각 부처 장관들을) 100% 개혁적인 인사 일색으로 가야 한다.”

참여정부 초대 청와대 정책실장인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경제통상학부)는 다음 정부의 첫 번째 숙제는 ‘화합과 통합’보다 ‘개혁과 적폐 청산’이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의 불평등을 연구해온 원로 경제학자인 그는 참여정부 초기 종합부동산세 도입 등 각종 개혁 정책을 도입하려 애쓰다가 물러났다. 당시 그의 개혁 노선이 재벌과 ‘모피아’ 관료 집단의 반감을 샀다는 뒷이야기가 돌았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개혁’을 추진하고 ‘적폐’를 청산하는 게 얼마나 험난한 일인지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꼈을 터다.

지난 4월14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미디어카페 후’에서 이정우 명예교수를 만났다. ‘경제민주화’가 화두였던 2012년과 달리 이번 대선에선 정책 논쟁이 사라졌다. 불평등, 불공정 등 촛불 국면에서 터져나왔던 이슈들은 대선 국면이 되자 행방이 묘연하다. 그 자리는 안보, 색깔 논쟁, 네거티브 공세 등이 채웠다. 그에게 대선에서의 정책 실종, 차기 정부의 과제를 물었다. 이 명예교수는 “(다음 정부에서) 한 자리 차지할 생각도, 욕심도 없다. 누군가 할 말은 해야 하는데, 그게 학자의 할 일이라고 생각할 뿐”이라면서 거침없이 ‘쓴소리’를 내놨다.

그는 2012년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 캠프의 경제민주화위원장을 맡아 경제·노동·복지 정책을 총괄한 바 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는 청와대에서 1년가량 호흡을 맞추며 일한 사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는 김대중 정부 시절 정책기획위원회에서 같이 활동한 적 있고,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노동정책 등은 대체로 공감하고 지지하는 편이라고 이 명예교수는 밝혔다. 그는 이번 대선에서 어느 캠프에도 몸담지 않았다.

“불평등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 나와야”

‘장미 대선’이 급박하게 치러져서 그런지 유난히 정책 이슈가 보이지 않는 대선이다. 불평등·불공정 문제보다 4차 산업혁명 등이 더 많이 거론된다.

지난 4월13일 주요 5당 대선 후보의 1차 텔레비전 토론을 보면서 의아했다. 불평등, 양극화 이야기는 너무 안 나오고 (후보들이) 자꾸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더라. 지금이 특별히 더 중요한 산업혁명기도 아닌데, 4차 산업혁명이란 용어가 유행어처럼 너무 과장돼 사용되는 듯하다.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건 수백 년 동안 반복된 이야기다. 실체 없는 4차 산업혁명 대신, 실체 있는 불평등 문제에 대해 좀더 구체적인 정책이 나와야 한다. 양극화와 저성장이란 이중고를 겪는 한국 경제를 구하려면 소득 주도 성장, 포용적 성장이 필요하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향한 비판 가운데 하나가 비정규직 문제 등 양극화를 오히려 심화했다는 점이다. 가장 결정적인 실패 원인이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나. 차기 정부가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대중·노무현 정부 모두 복지예산을 많이 늘리고, 기초생활보장제도나 동반성장 개념 도입 등 새로운 시도를 했다. 예전 보수 정권에 견줘 진일보했다. 그런데 그게 충분했느냐? 그러진 못했다. 가장 어려운 점은 우리나라 전체적으로 복지나 사회적 투자에 대한 인식이 낮다는 것이다. 포퓰리즘이라는 여론이 너무 강하다. 그걸 돌파하려면 제일 중요한 게 사람이다.

참여정부 때는 ‘개혁과 보수의 조화’를 중시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각이 그랬다. 대통령이 개혁적이니 국무총리는 좀 보수적이어도 된다, 청와대 정책실장이 개혁적이니 경제부총리는 경제관료를 시켜도 된다, 사회정책 장관들은 진보적이니 경제정책 장관들은 보수적으로 가자는 식으로 조화와 균형을 꾀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게 참 일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다음 정부에서 첫 번째 조각이 중요한 이유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간에 적폐 청산, 개혁으로 방향을 잡고 국민의 협조를 구해서 100% 개혁적인 인사 일색으로 장관들을 임명해야 한다.

임기 5년 중에 초반 2년은 개혁, 후반 3년은 통합으로 가야 한다. 2년 동안 ‘개혁’이란 숙제를 다 하고 나서 통합하고 화합해야 한다. 걱정스럽게도 촛불집회가 반년 가까이 이어지다보니 벌써 ‘개혁 피로증’ 비슷한 게 나타난다. 우리가 언제 뭘 개혁하고 적폐를 청산했나? 대청소부터 한 다음에, 집을 새로 수리하고 칠하는 건 나중 문제다. 지금은 통합과 화합을 이야기할 때가 아니라 오로지 개혁, 적폐 청산으로 가야 한다.

“보수에 영합하려고 통합? 역사에 죄짓는 것”

문재인 캠프는 박근혜를 도왔던 김광두 서강대 석좌교수를, 안철수 캠프는 변양호 옛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을 ‘경제 브레인’으로 영입했다. 대선 캠프 구성이 1차 시험대인데 보수 표심에만 신경 쓰는 듯하다.

‘용광로 선거대책본부’를 구성한다고 하던데, 선거운동 할 때는 용광로가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차기 정부가 성공하려면, 지도자는 작은 의리는 무시하고 역사의 평가를 두려워해야 한다. 촛불집회에서 일어난 국민의 들불 같은 개혁 요구를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그런데 이게 너무 급속히 사그라들고 ‘통합’처럼 이상한 방향으로 자꾸 흘러가고 있다.

한국의 보수가 정말 뿌리 깊고 강하다는 걸 느낀다. 한국은 식민지, 해방 뒤 이념 대립, 전쟁, 독재 등의 역사를 100년 이상 경험하면서 보수가 과잉되고 진보는 말라죽은 나라다. 기본적으로 보수가 40%, 진보가 20%인 구도다. 선거에서 압도적으로 진보가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가끔 역사가 요동쳐서 김대중이나 노무현 같은 사람이 기적적으로 대통령이 됐다. 이번에 또다시 나라를 살릴 수 있는 선물이 하늘에서 뚝 떨어졌는데, 이걸 발로 걷어차고 보수에 영합하기 위해 중도·화합·통합 이런 식으로 가면 역사에 죄를 짓는 거다.

이정우 명예교수의 고향은 ‘보수의 아성’인 대구다. 대구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그는 “대구·경북 지역이 지난 대선에서도 결정적으로 박근혜를 지지해서 잘못된 대통령을 만든 책임이 큰데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대통령을 만드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하는 날 아침, 그는 대구에서 상경했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주최로 열린 ‘국토보유세, 기본소득 그리고 새로운 대한민국’이란 제목의 토론회 사회자로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틀 뒤인 4월16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이 선택한 기본소득’ 토론회에도 참석했다. 최근 그는 기본소득의 열렬한 지지자로 여기저기 얼굴을 내밀고 있다.

최근 기본소득 관련 발언이 부쩍 늘었다. 언제부터 기본소득 지지자였나.

원래 기본소득에 호감이 있었다.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 정책팀에서 기본소득을 이야기하며 “공약에 넣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모든 국민 대상으로는 아직 이르고 재원이 부족하니, 제일 급한 세 집단에 아동수당·청년수당·노인수당 형태로 지원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때만 해도 기본소득이 생소한 개념이라서 내부 호응이 별로 없었다. (웃음) 좋은 공약인데 아까웠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더불어민주당 경선 때 내놓은 공약이 내가 그때 제안했던 3대 기본소득과 상당히 유사하다.

“기본소득과 결합해 국토보유세를 걷는 방식으로”

문재인 후보 캠프 내부에선 기본소득을 두고 다소 이견이 있는 듯한데.

대선에 전혀 관여하지 않아 속사정은 모르겠다. 이재명 성남시장의 ‘기본소득+국토보유세+지역상품권 3종 세트’(기본소득을 지역화폐로 지급해 자영업자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고, 재원은 국토보유세를 걷어 마련한다는 방안)에 대해 문재인 후보가 “취지를 살리겠다”고 말한 것으로 안다. 학자들 사이에선 ‘현금수당’이냐 ‘기본소득’이냐 찬반양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수당보다 기본소득이 국민을 설득하기 쉽다. 스위스 기본소득 도입 찬반 투표나, 올해 핀란드에서 시행 중인 기본소득 실험 등을 뉴스로 봤기 때문에 국민들도 타당성을 어느 정도 안다.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주는 게 최종 목표이고, 급한 사람부터 단계적으로 준다고 설명하면 이해와 설득이 쉽다. 국민들 처지에선 수당이냐 기본소득이냐보다, 어떻게 실현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기본소득이 불평등 문제의 대안이 될 수 있나.

(필요한 사람에게 복지를 제공하는) 선별주의와 (모두에게 제공하는) 보편주의 둘 다 재분배 효과는 있다. 보편주의는 선별주의보다 여러 장점이 있다. (가난한 사람을 선별하는 데서 오는) 낙인효과도 없고, 제도의 영속성을 높이면 재분배 효과도 훨씬 크다. 선별주의의 대표 국가인 미국에선 가난한 흑인들이 복지 혜택을 누리는 것에 백인 중산층이 ‘우리가 열심히 일해서 세금 냈더니 게으른 흑인들이 다 가져간다’며 복지에 반감을 품고 있다. 그러다보니 조세 저항도 심하다. 반면 유럽은 내가 낸 세금의 혜택을 내가 누린다는 사고방식이 있다.

한국은 미국보다 세금을 더 적게 내고 선별주의는 더 심한 나라다. 한국에서 보편주의는 무상급식 논쟁으로 촉발됐다. 무상교육·무상의료 등의 이슈로 (국민의 반대를) 돌파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액수가 크지 않다면 국민의 승인을 얻기 쉽다. 실현 가능하다고 본다. ‘가난한 사람에게만 준다’는 선별주의적 고정관념을 깨고 모든 국민이 혜택을 누리면 ‘보편주의도 해보니 장점이 있네’ 느끼게 될 거다. 그러면 기본소득이 보편주의로 가는 단계로서 굉장히 중요한 의의를 갖게 된다.

기본소득 재원 마련 방안으로 토지보유세(국토보유세) 도입을 찬성하는데, 이게 차기 정부에서 부동산 문제 해법이 될 수 있을까.

참여정부 인수위원회에 들어갔을 때부터 강조했던 게 보유세다. 2003년 10·29 대책에서 종합부동산세를 예고했고 부동산 가격이 어느 정도 잡히기 시작했다. 그런데 2004년이 되면서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잘렸다’. 부동산 정책은 국민경제자문회의로 넘기고, 실무 책임은 재경부에서 맡도록 했다. 누가 어떤 이야기를 했을지는 짐작이 가나, 아직까지도 노무현 대통령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정책에선 일관성이 중요한데, 그 뒤 부동산 정책 기조에 혼선이 오면서 부동산 가격이 다시 급등했다. 불로소득을 척결하려면 보유세 강화가 정답이다. 기본소득과 결합해 국토보유세를 걷는 방식이 장기적으로 근본 처방이 될 수 있다. (세금 혜택을 기본소득으로 돌려주기 때문에) 종합부동산세처럼 ‘세금 폭탄’이란 논리로 쉽게 공격받고 허물어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문 후보가 핵심 공약으로 기본소득 받았으면”

문재인 후보 캠프는 지난 4월19일 선거대책위원회 인사를 발표하면서 이재명 캠프에 참여했던 김기준 전 의원을 ‘기본소득위원회’ 공동위원장에 임명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의 핵심 공약인 기본소득을 받아안는 모양새를 취한 셈이다. 그러나 문재인 캠프 안에선 기본소득 취지에 공감하더라도 공약으로 내세울지에는 의견이 엇갈린다. 문재인 후보는 0~5살 아동에게 월 10만원을 지급하는 ‘아동수당’, ‘청년구직촉진수당’, 기초연금 30만원 확대 등의 공약을 내걸었다. 이재명 시장이나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제시한 ‘아동·청년·노인 기본소득’과 유사한 내용이다. 하지만 문 후보 쪽이 ‘기본소득’ 명칭을 쓸지는 미정이다. 이정우 명예교수는 “일자리나 경제성장 공약도 중요하지만, 문재인 후보가 핵심 공약으로 기본소득을 받아들인다고 빨리 발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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