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이야기]우클릭 안보, 좌클릭 복지 '가속도'

2017. 4. 26. 10:2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ㆍ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공약과 정책의 후보 간 차이 줄어

대선은 후보들의 공약과 입장이 움직이는 과정이기도 하다. 관심이 집중되는 분야의 공약일수록 움직이는 폭은 더욱 커진다. 북한과 미국이 서로에 대한 강경대응을 공언한 이래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위협이 고조되면서 각 정당 대선후보들이 내놓고 있는 안보·외교정책도 주목받고 있다. TV토론에서 불거진 ‘주적’ 논란에 더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 등 첨예한 입장차가 드러나는 이슈에 대해서는 유력 후보들이 ‘우클릭’으로 입장을 전환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반면 안보 못지않게 관심을 끄는 분야인 복지와 경제분야 등에서는 보수 후보까지 포함한 전반적인 ‘좌클릭’도 나타나고 있다.

‘안보 우클릭’과 ‘복지 좌클릭’의 결합은 유력 후보들 간의 공약 차이가 줄어드는 수렴현상으로 나타난다. 가장 지지율이 높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대선정국이 시작되기 전에도 이념적 입장차가 크지 않았지만, 중도와 보수성향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지지층 확장에 나서면서 차이는 더욱 드러나지 않게 됐다. 두 후보만이 아니라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와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도 안보에서는 기존의 보수적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개혁적 성향이 가미된 복지공약을 내놓으면서 일부 공약은 진보 색채가 가장 강한 정의당 심상정 후보와 견줘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경우까지 생겼다.

공약과 정책의 후보 간 차이가 가장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분야는 안보 쪽이다. 앞서 지난해 7월 문 후보와 안 후보는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에 대해 각각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과 “국민투표 및 국회 비준을 거쳐야 한다”는 입장에서 사실상 반대 의견을 내세웠다. 그러나 현재 문 후보는 조건부 찬성, 안 후보는 사실상 찬성으로 돌아선 상황이다. 사드 배치 문제만 놓고 봤을 때는 결론적으로 보수 후보들과의 차이가 크지 않은 셈이다.

19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5개 원내 정당 후보들이 4월 19일 서울 여의도 KBS에서 스탠딩 형식으로 열린 두 번째 TV토론회에 앞서 각자 지정석에서 토론을 준비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사드 배치, 심상정 후보만 반대

안 후보는 한때 문 후보보다 더 강경하게 사드 배치에 반대했지만, 한·미 정부 간 합의를 존중할 필요가 있고 사드 배치가 이미 시작된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찬성 입장으로 선회했다. 문 후보의 입장 역시 사드 배치 문제는 차기 정부에서 공론화를 거쳐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북한이 6차 핵실험을 한다면 사드 배치도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움직였다. 홍준표 후보와 유승민 후보는 일관되게 사드 배치에 찬성하고 있어 유력 후보들 사이에선 정책 수렴현상이 강해졌다. 반면 심상정 후보는 사드 배치 철회를 국방공약 중 첫 번째로 내걸어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주적’ 개념 논란으로 지펴진 보수정치권 발 색깔론 논쟁에서도 안 후보는 “북한은 우리의 적”이라는 입장을 거듭 밝히며 빠르게 태세를 전환하고 있다. 이미 두 후보 모두 사드 배치를 두고 보수진영으로부터 ‘말바꾸기’라며 공격을 당했지만 보수 지지층을 더 많이 끌어들여야 하는 안 후보에게서 ‘우클릭’ 행보가 더 극적으로 나타나는 양상이다. 문 후보는 “북한은 군사적 위협이 되는 적이 분명하지만, 헌법에 의한 평화통일 대상이기도 하는 등 복합적 관계”라며 ‘주적론’에는 동의하지 않아 이 점에 대해선 안 후보 및 보수진영 후보와 다른 시각을 보였다. 하지만 두 후보 모두 개성공단 재개에 대해서는 북한의 도발이 계속되면 재개가 어려울 수도 있다며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문·안 두 후보가 보수 후보들과 차이를 드러내는 안보·대북정책은 남북 간 경제협력 등에 관한 부분이다. 홍 후보와 유 후보는 북한이 먼저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야 경제협력 등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비해 문 후보와 안 후보는 북한에 대한 제재도 필요하지만 대화창구를 열어두고 대화를 병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두 후보 중에서는 북핵 문제 해결 여부에 따라 동·서해 중부지역에 신경제벨트 구축도 가능하다며 상대적으로 ‘대화와 협상’에 방점을 찍고 있는 문 후보와, 대화와 교류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제재 역시 중요하기 때문에 ‘당근과 채찍’을 병용해야 한다는 안 후보의 입장이 세부적인 차이를 보인다.

이밖에도 안보분야에서 문 후보와 안 후보의 정책 차이가 잘 드러나지 않는 점들은 적지 않다. 북핵에 직접 대응하는 핵심 전력체계인 킬체인(2023년까지 구축 예정된 한·미 연합 선제타격 체계)과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의 조기 전력화에 대해 두 후보 모두 같은 입장을 보였다. 국방예산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현재 2.4%(작년 기준) 수준에서 3% 안팎까지 늘리겠다는 공통적인 방향을 제시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두 후보 중 누구도 안보나 국방분야에 대해서는 괜히 국민 정서를 건드렸다가 지지율 깨질 것이 두렵기 때문에 보수 쪽과 크게 차별화된 내용을 내놓을 수 없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5명 모두 육아수당에 아동수당 신설

안보에서는 문·안 두 후보의 ‘우클릭’이 두드러진 반면, 복지분야를 비롯해 고용·증세·재벌개혁 등을 포괄하는 경제분야 공약 중에선 보수 후보들의 ‘좌클릭’이 눈에 띈다. 보수진영의 유승민 후보가 법인세 인상을 앞장서 주장하는 상황이 대표적이다. 이에 비해 문·안 두 후보 모두 증세가 필요하다는 전제를 두지만 신중해야 한다는 단서를 덧붙여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 2012년 18대 대선에서 법인세 인상 공약을 앞다퉈 제시했던 점과 비교되는 모습이다. “증세의 가장 마지막 단계로 법인세를 올리겠다”는 문 후보의 발언이 “증세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는 안 후보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현재 시행 중인 육아수당 지급에 더해 추가로 월 10만원의 아동수당을 신설한다는 공약은 홍 후보까지 공통되게 내놓을 정도다. 홍 후보가 저소득층 중심으로 지급한다는 단서를 달았고, 유 후보도 대상 연령을 초등학생 이상 자녀로 상향한 차이 등을 빼면 기본적인 정책 골격은 비슷하게 수렴되었다. 문 후보는 0~5세, 안 후보는 0~11세의 소득 하위 80%를 대상으로 했다는 세부적인 차이가 있을 뿐이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대체로 복지공약이 진영을 가리지 않는 모습”이라면서 “아동수당 외에도 육아휴직 확대와 기초연금 인상, 청년실업부조제 등이 후보를 가리지 않고 들어가 지난 대선에서 복지공약 바람이 불 때보다도 강화되었다”고 평가했다.

재벌을 개혁하고 중소기업을 살리겠다는 정책 방향도 이번 대선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공약의 기류다. 다중대표소송제를 도입하는 등 기존의 재벌 일가가 행사하는 지배력을 통제하는 방안을 비롯해, 비리를 저지른 재계 인사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확대하는 등 재벌과 대기업의 힘을 빼는 방향을 후보들의 공약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문·안 두 후보가 똑같이 중소기업부를 신설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점도 주목을 끈다. 두 후보 공약의 차이점은 부처 이름에 문 후보가 ‘벤처’를, 안 후보가 ‘창업’을 넣었다는 점뿐이다.

경제분야 정책에서 보수 후보들이 내놓은 공약 가운데서는 문·안 두 후보의 ‘안보 우클릭’처럼 과거 보수진영의 정책과는 반대방향의 전향적인 정책들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홍 후보는 청국장과 두부 등을 영세·생계형 보호업종으로 지정해 대기업 진출을 제한하고, 대형 유통기업의 골목상권 출점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유 후보 역시 공정거래위원회 전속고발권 폐지, 집단소송제도 도입 등 기업의 권한을 제한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된 경제공약을 발표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 주간경향 (weekly.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향신문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