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한 불은 껐지만 불씨 여전한 대우조선

2017. 4. 26. 10:2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ㆍ추가 자금 투입으로 또 ‘연명’… 몸집줄이기 성공할지 전망 엇갈려

7조1000억원. 지난해 정부가 2017년 문화 관련 예산으로 편성한 돈이다. 국방부가 침상형 구조의 병영생활관을 침대형으로 바꾸는 현대화 사업에 지난 8년간 쏟아부은 돈은 이보다 1000억원 적은 7조원이었다. 7조원은 인구 248만명의 대구광역시 올해 예산으로 편성된 돈이기도 하다. 대구시 예산보다 많은 7조1000억원의 돈이 한 기업에 불과 1년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투입됐다. 법정관리 문턱에서 또다시 기사회생한 대우조선해양 얘기다.

4월 17~18일 이틀간 열린 대우조선해양 사채권자 집회에서 정부와 산업은행·수출입은행이 내놓은 채무재조정안이 가결되고 기업어음(CP) 투자자들 역시 여기에 동의하면서 한 달 새 숨 가쁘게 진행된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연명방안이 확정됐다. 대우조선해양이 신규자금을 지원받기 위한 세 가지 전제조건인 ▲대우조선 노사의 자구노력 합의 ▲시중은행의 채무재조정 합의 ▲회사채 및 CP 투자자의 채무재조정 합의를 모두 충족한 것이다. 법원이 회사채 채무조정안 인가를 내면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자율적 구조조정’ 절차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또 2조9000억원 자금 수혈

일단 이번 채무재조정안에 따라 1조5500억원 규모의 회사채와 CP의 50%가 주식으로 전환되고, 나머지 50%는 만기가 3년 유예된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보유한 1조6000억원 규모의 무담보 채권은 100% 주식으로 전환된다. 시중은행이 보유한 무담보채권의 80%인 5600억원을 포함해 총출자전환 규모는 2조9000억원에 달한다.

출자전환이 마무리되면 지난해 말 2732%까지 치솟았던 대우조선의 부채비율은 300%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주식거래 재개를 위한 토대가 마련되는 셈이다. 아울러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필요할 때 한도 내에서 꺼내 쓰는 ‘마이너스 통장(한도성 여신)’ 방식으로 대우조선해양에 2조9000억원을 지원한다. 그간 묶여 있던 은행권의 선수금환급보증(RG·조선업체가 선박을 제 시기에 건조하지 못하거나 파산했을 경우 선주로부터 받은 선수금을 은행이 대신 물어주는 보증) 발급도 재개된다.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혈세 투입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9년 대우그룹 몰락 이후 꾸준히 공적자금이 투입돼 왔고, 2015년 10월 비공개 경제금융 점검회의인 청와대 ‘서별관회의’ 이후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4조2000억원 규모의 자금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당시 정부는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더 이상 추가 지원은 없다”고 공언했고, 불과 4개월 전인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이 입장을 되풀이했지만 4월 회사채 만기가 다가오자 말을 뒤집었다.

우여곡절 끝에 대우조선은 다시 한 번 회생의 닻을 올리게 됐지만 정부가 기업 구조조정의 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렸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논란의 중심에는 또다시 국민연금이 있다.

국민연금은 대우조선해양의 회사채와 CP 1조5500억원 가운데 30%에 달하는 3900억원가량을 보유하고 있다. 회사채와 CP 투자자들이 모두 동의해야만 채무재조정이 시행되는 상황에서 자율적 구조조정으로 가느냐, 아니면 법정관리의 일종인 ‘P플랜(Pre-packaged Plan·워크아웃+법정관리)’으로 가느냐의 키는 국민연금이 쥐고 있었다.

국민연금으로서는 이번 채무조정안이 만만치 않은 부담일 수밖에 없었다. 앞서 국민연금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안에 찬성했다가 정권의 압력에 의해 손실을 떠안았다는 비판에 직면했고, 여기에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구속기소돼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국민의 노후자금 곳간을 털어 부실기업을 지원한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당초 국민연금은 대우조선해양의 신용등급이 추락하던 2014년과 2015년 집중적으로 이 회사의 회사채를 사들였는데, 당시에도 정부의 직·간접적 압박 때문이 아니었느냐는 의혹이 끊이질 않았다.

이미 ‘최순실 트라우마’를 겪은 국민연금 입장에서는 이해당사자가 손실을 부담하라는 정부와 산업은행 측의 요구를 덜컥 받았다가 또다시 외압에 흔들리는 ‘거수기’ 노릇을 한다는 비판이 자명한 상황이었다. 당초 정부의 채무재조정안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던 국민연금은 사채권자 집회가 열리기 직전 막판까지 버틴 끝에 일주일 만에 입장을 번복했다. 시간을 끌 때까지 끌다 산업은행이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혀 왔던 ‘회사채 상환 법적 보증’ 대신 ‘상환 보장’이 담긴 이행 확약서를 받고 어렵사리 동의해준 모양새를 취했지만, 이 역시 책임 회피를 위한 ‘알리바이’를 쌓은 것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민연금이 채무재조정안 승인과 동시에 대우조선해양을 상대로 2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것 역시 마찬가지 맥락으로 보인다.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로 인한 잘못된 회계정보로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 소송의 요지인데, 분식회계를 저지른 기업을 살리는 데 국민의 노후자금을 동원했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한편 산업은행은 회사채 상환을 법적으로 ‘보증’할 수는 없지만, 대우조선해양에 별도 관리 계좌(에스크로)를 만들어 만기가 도래했을 때 회사채 원리금을 먼저 갚도록 하겠다고 한 발 물러섰다. 회사채의 청산가치분(6.6%)에 해당하는 1000억원을 에스크로 계좌에 예치해 우선 제공하고, 대우조선해양의 현금 흐름이 개선되면 회사채 우선 상환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국민연금이 우려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한다 해도 청산가치는 보장한다는 것이다.

다만 이 같은 방식이 자본시장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조차 훼손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회사채는 투자자가 손실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자본시장의 상식임에도 그걸 보장해주겠다는 것은 향후 구조조정 과정에 잘못된 선례를 남긴 것”이라며 “애초에 법정관리로 갔어야 할 회사에 4조2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한 서별관회의부터 잘못 꿴 단추였다. 이번엔 비교적 공개적으로 논의가 이뤄진 것이 다소 진일보했다고 볼 수는 있지만, 결과적으로 손실만 눈덩이처럼 키우다 보니 채권자를 달래기 위해 원칙 없는 구조조정을 정부가 하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하나도 ‘자율적’이지 않은 구조조정

전혀 ‘자율적’이지 않은 대우조선 구조조정 국민연금의 이번 결정은 연금 가입자의 손실을 그나마 최소화할 수 있는 ‘차악’에 가깝다는 것이 시장의 평가다. 자율적인 구조조정이 초단기 법정관리인 P플랜보다는 손실이 적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국민연금 역시 “연금 가입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다”면서 “채무조정안 수용이 기금의 수익성 제고에 더 유리할 것으로 판단해 찬성하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항변한다. 애초 금융위원회와 산업은행이 P플랜으로 갈 경우 원금의 90%를 날릴 수 있다며 국민연금을 사실상 ‘겁박’한 상황에서 퇴로가 없었다는 지적도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이번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채무재조정이 “자율적 구조조정을 추진하되 그게 안 되면 법정관리로 간다는 일관된 구조조정 원칙을 적용했다. 이런 원칙이 앞으로 기업 구조조정에 참고할 만한 선례로 남게 될 것”이라고 자평했지만, 문제는 이번 구조조정 방식이 그다지 ‘자율적’이지 않았다는 데 있다. 대우조선해양 위기설은 지난해 말부터 끊이지 않고 나왔지만 정부는 4월로 임박한 회사채 상환은 문제없다는 입장만 반복하다가 결국 만기를 한 달 앞둔 3월 23일 추가 지원안을 발표하며 말을 바꿨다.

정부는 대우조선해양을 청산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59조원으로 더 크고 지역사회 및 일자리 등 실물경제에 미칠 영향이 크다는 일종의 ‘공포 마케팅’으로 책임을 피해가지만, 정작 산업통상자원부는 대우조선해양 도산 시 손실 추정액이 17조원이라는 다른 계산을 내놔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한 달 만에 이뤄진 채무재조정 과정 역시 정부의 ‘벼랑 끝 전술’에 가까웠다. 불과 한 달 사이에 수조원대의 출자전환을 포함해 모든 채무재조정을 끝내라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한 일정이자 ‘퇴로를 막은 겁박’이라는 시장의 반발이 나왔다. 국민연금 역시 채무재조정 결정과정에서 시간 부족을 항변해 왔다. 정권 공백기를 틈타 또다시 차기 정권에 대우조선해양이라는 ‘폭탄 돌리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오는 이유다.

회생 닻 올린 대우조선, 순항할까

논란 끝에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인공호흡기는 3년 더 연장됐지만, 이번에도 결국 ‘대마불사’만 확인한 구조조정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조선업황에 대한 낙관적 전망으로 구조조정 적기를 놓쳤고, 기업 부실이 심각해지자 서별관회의라는 ‘밀실회의’를 통해 천문학적 혈세 투입을 결정했지만 이미 서별관회의 당시 정부가 대우조선해양의 5조원대 분식회계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의혹 역시 제기된 상태다. 이와 관련,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지난해 9월 열린 국회 청문회에서 “회계분식 위험성이 있다 정도만 인식하고 있었다”면서 “당시 자금이 투입되지 않았다면 즉각적인 회사 손실이 왔을 것”이라고 항변했다.

추가 자금 수혈로 급한 불은 껐지만 문제는 이후다. 임종룡 위원장은 “민간 전문가 중심으로 경영 정상화 관리위원회‘를 설치할 것”이라며 내년 중 인수·합병(M&A)을 통해 조선업 ‘빅3(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를 ‘빅2’ 체제로 재편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우조선해양의 몸집 줄이기가 성공적으로 이뤄져 M&A가 성사될지에 대해선 시장의 전망이 엇갈린다.

업황 회복 역시 주요 변수다. 수주 전망 여전히 밝지 않다. 영국의 조선·해운 분석기관인 클락슨리서치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2018년 이후 선박 발주 전망치를 이전보다 하향 조정했다. 2018년 발주량은 종전 전망치(2950만CGT)보다 390만CGT 감소한 2560만CGT로 낮췄고, 나아가 2019~2021년 전망치도 대체로 110만∼320만CGT씩 하락했다. 정부와 청와대가 2015년 서별관회의에서 4조2000억원의 자금지원을 결정하며 그 근거로 삼았던 것이 바로 클락슨의 전망 보고서였다. 임종룡 위원장은 “참고할 수 있는 가장 권위 있는 기관이 클락슨인데 이 전문기관조차도 지난해 시황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다”며 클락슨의 ‘낙관적 전망’을 탓했는데, 이 기관의 조선산업 전망이 갈수록 비관적으로 변하고 있는 셈이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 주간경향 (weekly.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향신문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