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열·서송희 부부의 심리학 콘서트 '중년, 나도 아프다'](41) "아빠가 있어서 좋다. 나랑 놀아주니까"

2017. 4. 26.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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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가장들은 이제 일을 즐기면서 해야 한다. 그리고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단지 물리적으로 가정에 머무는 시간이 많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가족들과 함께 즐겁게 재미있게 보내는 시간이 많아야 한다.

"엄마가 있어서 좋다 / 나를 이뻐해주니까

강아지가 있어서 좋다 / 나랑 놀아주니까

냉장고가 있어서 좋다 / 나에게 먹을 것을 주니까

아빠는 / 왜 있는지 모르겠다"

이 시는 몇 년 전에 인터넷을 통해 소개된 후 한동안 회자된 초등학교 학생의 “아빠는 왜”라는 시다. 초등학생다운 진솔한 마음이 실려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착잡한 느낌을 주었다.

필자는 중년의 아버지들에게 이 시를 들려주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곤 한다. 만약 집에 있는 자녀가 “아빠는 우리 집에 왜 있어?” 하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하겠느냐고. 질문을 받은 아버지들은 대개 착잡한 표정으로 허망한 웃음을 웃기만 하지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린다. 아마도 스스로 그런 질문을 해본 적도 없고, 그런 질문을 받으리라고 생각한 적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한 생태공원에서 일가족이 화목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산악인들은 왜 목숨을 걸고 산에 오르는가?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조그마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아빠는 돈 벌어다 준다.” 하지만 대답을 하는 자신들도 그것이 정답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대답은 상당히 위험한 대답이다. 지금은 직장이 있고 돈을 벌어다주기 때문에 그런 대답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은퇴를 하거나 퇴직을 할 날이 올 것이고, 더 이상 돈을 벌어다주지 못하는 날이 필경 올 것이다. 그러면 그때는 아버지의 존재 이유를 무엇이라고 할 것인가?

우리나라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재벌그룹의 중견간부 승진 연수회에 초청받아 특강을 한 자리에서도 이 질문을 했다. 강당에는 거의 대부분이 남자인 중견간부들 약 300여명이 강당을 메우고 있었다. 그들도 똑같은 대답을 했다. 그래서 그 자리에 참석한 자녀가 있는 여성 승진자에게 질문했다. “만약 자녀들이 어머니에게 ‘아빠는 우리 집에 왜 있어?’ 하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하겠습니까?” 그러자 이 여성은 기다렸다는 듯이 곧 대답했다 “나도 그 사람이 우리집에 왜 있는지 모르겠다.” 이 돌발적인 대답에 그 자리에 참석했던 모든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썩 유쾌한 웃음은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 대해 대부분의 남자 가장들은 꽤 억울한 느낌이 들 것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가장들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온갖 험한 꼴을 다 당하면서도 꿋꿋이 참아내며 열심히 일하는 이유를 대부분 ‘가족을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작 가족은 “왜 아빠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인다면 이 얼마나 억울하고 참담한 심정이 들까?

21세기 지식정보화 사회는 인간을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즉 놀이하는 인간으로 정의한다. 그렇다면 잘 노는 것이 잘 사는 것이 된다. 그리고 보기에 따라서는 놀지 않고 일만 하면서 사는 것은 오히려 잘못 사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석학으로 존경받는 이어령 교수가 “20세기에는 ‘일하기 위해’ 놀고 21세기에는 ‘놀기 위해’ 일한다”고 말씀하셨듯이, 미래는 재미있게 사는 것이 중요해졌다. 이런 의미에서 잘 살기 위해서는 “재미있게 일하고 열심히 놀아라(Work playfully, play seriously)”라고 조언한 유명한 스위스의 정신의학자 칼 융(Carl Jung·1875~1961)은 시대를 앞서 간 선각자다.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영화 <히말라야>를 다시 보았다. 영화는 눈 덮인 에베레스트산을 오르는 산악인의 거친 호흡소리로 시작한다. 그리고 곧이어 “이곳은 인간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신의 영역”이라는 말이 들린다. “왜 산악인들은 목숨을 잃을 위험을 무릅쓰고 신의 영역에 들어가려고 하는가?” 실제로 한국산악사에 길이 남을 산악인들이 산에서 목숨을 잃었다. 1977년 9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여기는 정상, 더 이상 오를 데가 없다”고 가슴 뭉클한 소식을 전해주었던 고상돈씨도 맥킨리봉 등정 후 하산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김상민 기자
산악인들은 왜 목숨을 걸고 산에 오르는가? 한마디로 말하자면 “좋으니까” 하는 것이다. 고산 등정만큼 위험하지는 않지만 사람들은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밥이 나오는 것도 아닌” 다양한 활동을 한다. 그렇다면 그런 활동을 할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떤 행동이라도 그런 행동을 할 만한 동기(動機)가 있다. 동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내재적(內在的)’ 동기이고, 다른 하나는 ‘외재적(外在的)’ 동기이다. 내재적 동기에 의한 행동은 행동 그 자체가 재미있거나 보람이 있거나 의미가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반면에 외재적 동기에 의한 행동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보상을 얻거나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다”

원숭이도 퍼즐 푸는 것을 좋아한다. 한 퍼즐을 다 풀면 다른 것을 달라고 조르기까지 한다. 다른 퍼즐을 주면 열심히 퍼즐을 풀려고 노력한다. 이 과정을 몇 번 되풀이한 후, 이번에는 퍼즐과 동시에 바나나를 함께 준다. 원숭이는 신이 나서 더 열심히 퍼즐을 푼다. 이 과정을 몇 번 되풀이한 후, 이번에는 처음처럼 퍼즐만 준다. 그러면 이 원숭이는 계속 퍼즐을 풀 것인가? 아니면 퍼즐 푸는 행동을 중지할 것인가?

정답은 ‘더 이상 퍼즐을 풀지 않는다’이다. 처음에 원숭이는 퍼즐 푸는 행동 자체가 즐거워서 되풀이한다. 즉 내재적 동기에 의해 퍼즐을 푼다. 하지만 바나나가 짝지어 주어지면 원숭이에게 퍼즐을 푸는 행동의 이유가 이제는 바나나를 얻기 위한 것으로 바뀐다. 즉 내재적 동기에 의한 행동이 외부의 보상과 연합하여 외재적 동기로 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바나나를 주지 않으면 퍼즐을 푸는 행동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이제는 완전히 외재적 동기에 의한 행동으로 변한 것이다.

요즘 주위에서 “사는 재미가 없다”는 가장들이 많다. 가족을 위해 ‘죽도록’ 일한 대접을 받지 못해서 섭섭해 하는 가장도 늘고 있다. 우리나라는 연간 평균 근로시간이 OECD 국가 중 최장시간(2193시간)을 기록하여 여전히 일 중심적인 삶을 살고 있으니 틀린 말도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일을 하는 이유가 달라져야 한다. 더 이상 일하는 이유가 ‘돈 벌기 위해’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재미있어서’ 일을 하는 것으로 마음가짐이 바뀌어야 한다.

한국의 가장들은 이제 일을 즐기면서 해야 한다. 그리고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단지 물리적으로 가정에 머무는 시간이 많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가족들과 함께 즐겁게 재미있게 보내는 시간이 많아야 한다. 그러면 자녀들은 “아빠가 있어서 좋다. 나랑 놀아주니까”라면서 고마운 마음을 전할 것이다. 그리고 힘들어하는 아빠에게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하면서 힘을 북돋워줄 것이다.

하버드대학생 268명을 72년간 인생 추적한 연구의 결론은 우리가 다 알고 있는 평범한 진리를 확인시켜주고 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이며, 행복은 결국 사랑이다.’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syhan@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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