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교수 주승현의 '우리는 모두 조난자다'](10) 통일,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소원

2017. 4. 26.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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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명밖에 안 되는 북쪽동포와도 함께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는 시험대에 올라 더욱 가혹하게 펼쳐질 통일을 보고 있다. 스스로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과의 형편도 이러한데 한국에 대한 끝없는 적대감과 저항의식으로 교육되고 성장한 북한주민이 한국이 주도하는 통일국가에 편입되기 쉽지 않다는 것은 간명한 원리이다.

한국에서는 몇 안 되는 통일학 박사가 됐다. DMZ에서 근무하며 처음으로 분단을 눈으로 보았고, 그곳을 넘어와서는 분단의 아픔을 몸으로 겪었다. 집요하게 내 삶을 괴롭히는 분단의 질곡에서 벗어날 탈출구를 통일에서 찾은 이기심이 민족의 소원에 업힌 듯했다. 통일학 박사임을 밝히면 통일이 언제쯤 되느냐는 진부한 질문을 수도 없이 받곤 한다. 그럴 때면 비전공자가 갖는 궁금증만큼이나마 통일문제 관심자로 한국 사회에서 살아오면서 궁금했던 부분들을 정리할 수 있어야 했다.

정말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었던가

북한에서 어려서부터 배우게 되는 노래는 수령에 대한 찬양과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다. 물론 누구에 의한 통일 염원인지를 잘 구분해야 한다. 어찌됐건 통일에 대한 믿음을 깊이 수반한 채 한국에 와서 마주친 통일은 북한의 그것과 결코 대등하지 않은 부가적 요소에 가까웠다. 애매하고 불성실해 보이는 논리들을 알아가려 했던 나날들은 더 이상 한국에서 통일이 ‘당위’의 영역에 속하지 않음을 이해하는 시간들이기도 했다. ‘현실’적인 소원들이 그 자리를 채운 듯싶었다. 좋은 학교, 좋은 회사, 좋은 이상형, 좋은 집과 차, 풍요로운 삶 등이 ‘나의 중요한 소원’이 된 사회에서 ‘통일’은 배타적 영역으로 치부된다.

2012년 6월 27일 경기 파주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에서 출경자 100만명 돌파 기념식이 열린 가운데 DMZ 내 북한측 판문각에서 관광객으로 보이는 북한 주민들이 카메라로 남측을 찍은 장면을 서로 보여주고 있다. / 정지윤기자

통일을 연구하고 들여다봐야 먹고살기조차 막막했던 학우들이 학위와 상관없는 직종과 분야로 돌아섰다. 나도 안정적인 회사에서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을 챙긴 시기도 있었지만 ‘통일’이라는 기호가 채워주는 포만감이 좋아 퇴사 후 통일을 붙잡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통일대박’이라는 용어와 함께 통일붐이 봇물처럼 터졌다. 다시 사회적 논의의 주류로 등장한 장밋빛 통일론의 상황만큼은 ‘대박’이었다. 정부를 필두로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 언론과 종교뿐 아니라 기업과 국민들도 관심을 갖고 기민적이면서 친숙하게 다가섰다. 학술대회와 세미나가 쉴 새 없이 언론을 통해 전해졌고 관련된 금융상품이 쏟아졌다. 그러나 얼마 못가서 통일논의는 잦아들고 통일무용론과 통일기피론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통일전문가, 통일전도사를 자처했던 수많은 통일장사꾼들은 곶감 빼먹듯 명함을 바꾸고 사라졌고, 통일대박에 맞춰 출시된 금융상품들은 쪽박을 차고 있는 중이다. 한때는 숙명으로, 또 한때는 금기로, 그 후 열망으로, 지금은 다시 터부시되고 있는 상처 입은 통일을 보며 비로소 묻고 싶었다. 우리의 소원이 정말 통일인가라고.

통일로 인해 내가 왜 손해를 봐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본심이 통일을 기피했던 이유가 된다. 이해득실을 따지며 통일비용에 대한 주판알을 튕기고 있을 때 분단은 더욱 고착화됐고, 남북의 이질화는 그 층층시하와 시시비비를 가릴 때 심화됐다. 산업화와 경제발전의 자부심으로 통일보다는 우리 내부의 풍요를 우선해 왔지만, 전 세계가 직면한 위기와 혼돈의 시대에 성장과 변화의 동력과 출구를 다시 통일과 북한땅에서 찾으려 하고 있다. 비단 성장이 정체된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안보, 종교 등 전 영역이 포함된 ‘퍼펙트 스톰’의 위기 속에서 통일은 한국에 성장의 유일한 활로이며 생존의 출구가 된 것이다. 한반도의 지정학·지경학·지전략적 저주를 프리미엄으로 바꾸고 인구 8000만의 내수시장과 광활한 미개척·미개발지역, 아직 잠재가치를 헤아리기도 어려운 풍부한 지하자원 등을 굳이 앞세우지 않아도 앞으로 한국에서 통일에 대한 관심과 요구가 끊이지 않고 빗발칠 것이다. 민족의 신성한 의무이자 과제가 생존의 절박함, 블루오션의 필요성과 불가분의 함수관계를 갖게 된 것이다.

우리의 통일에서 사라진 통일 상대

반대로 북한주민이 더 통일을 원할 것이라는 임의적인 공식도 몽매하고 오만한 포폄이 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성장의 동력이 멈춘 한국과 다르게 성장할 일만 남은 북한이 그동안 자신들을 외면해온 상대를 변함없는 민족애로 반길 것이라는 생각이야말로 우리의 주관적인 소원이 아닌가. 언제인가 광복 70주년을 맞아 모 방송사에서 탈북청년들과 남한청년들이 함께하는 ‘통일실험’ 프로그램을 만든 적이 있었다. 방송을 지켜보던 나도, 다른 시청자들도 놀랐다. 남쪽 출신들이 통일에 회의적이고 북쪽 출신들이 적극적일 것이라는 도그마를 뒤집은 것이다. 남한청년들의 통일 요구에 한 탈북청년이 입을 열었다. “저는 통일에 반대한다. 지금의 방식은 북한이 자원과 싼 노동력을 제공하게 된다. 그러면 북한사람들은 통일의 피해자가 된다. 제가 북한에서 사는 북한주민 입장이라면 ‘왜 우리 자원을 남한한테 싸게 줘야 해요?’라는 생각을 할 것 같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굳이 남한하고 통일을 안 해도 중국이 있다.” 방송이 나간 후 흥분한 남한 네티즌들의 엄청난 악성 댓글과 집요한 추적을 피해 탈북청년들은 한동안 ‘잠수’를 타야 했다.

다른 탈북 여학생이 비슷한 강연 프로그램에서 했던 발언도 회자됐었다. 그는 자신을 비롯하여 한국에 온 3만명이 겪고 있는 차별이면 충분하지 않으냐며 반문한 뒤 고향사람들과 북한주민들이 남한사람들에 의해 받을 차별을 생각하면 통일이 반갑지 않다고 했다. 필자가 공직자를 대상으로 한 강의 중간에 탈북민 정착시설인 하나원에 대한 얘기가 나온 적이 있었다. 하나원을 다녀온 공직자들이 탈북민과 대화가 통하지 않아 하나원 직원들이 통역을 해줬다고 하여 남북의 언어적 이질감을 토로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다음 발언에 놀랐다. ‘탈북민들이 한국이라는 문명사회에 하루빨리 적응하려면 북한에서의 모든 것을 없애야 한다’는 취지였다. 물론 탈북민들이 이 사회를 배우고 적응해야 하는 것은 필수다. 하지만 그들의 한국 사회 적응만큼이나 우리 사회의 탈북민과 북한 사회에 대한 이해도 중요한 것이 아닌가. 통일 공동체에서 북한주민에게만 일방적 동화와 적응을 강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사회의 편향적인 태도와 일방적인 인식에 교정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북한을 모르고서는 함께 살아가야 할 통일도 없다.

독일 통일이 시사 하는 바가 크다. “우리도 국민이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베를린 장벽 붕괴를 주도한 것은 동독주민들이었지만 이후 “우리는 하나의 민족이다”라는 표어로 통일국가로의 투표에 합의하고 함께한 주인공들은 동·서독 주민 모두였다. 합법적 방식과 민주적 절차를 통해 동독은 자기보다 우월한 서독으로 평화적인 체제이행을 단행했다. 서독으로의 편입을 선택한 동독주민에게는 통일국가에서 동등한 주체로 대접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꿈이, 동독주민을 받아들인 서독주민은 독일민족의 소망을 이뤄냄과 동시에 통일을 위해 경제적 비용을 지불하겠다는 각오가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새로운 통일공동체를 통해 독일민족이 다시 새롭게 도약하려는 동·서독주민 모두의 열망과 희망이 통일과정에 오롯이 담겼다. 우리의 사정은 어떠한가. 통일을 준비한다면서도 남북주민의 마음을 얻으려는 노력이나 특히 통일의 상대인 북한주민의 모습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코리아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온 수십만 조선족 동포가 이등국민으로 냉대받는 상황을 본 북한 엘리트들이 그것이 통일 후 자신들의 미래일 수 있다는 심각성에 남한 주도의 통일을 더 필사적으로 견제했었다. 최근에 한국 사회에서 삼등국민으로 빈곤과 차별을 겪고 있는 탈북민의 삶이 북한주민들에게 전해지고 있는 것도 통일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2014년 7월 21일 50개국 416명의 재외동포 청소년들이 21일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서 자전거를 타고 통일기원 DMZ평화대행진을 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통일문제를 연구하면서 필자는 북한주민의 정체성이나 통일 이후를 대비한 청사진을 거의 보지 못했다. 일방적인 통일이 전개된다면 타방에 의한 지역적·저항적 정체성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몽골과 거란족, 당나라와 수나라 대군을 비롯해 5000년 동안 약 1000회의 침략을 물리친 저항의 후예로 자부하는 것이 북한주민들이다. 그뿐인가. 북한은 일상과 근현대사 교육에서 꾸준하게 저항의 정체성을 주조하고 내면화했다. 이를테면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를 대동강에서 불태운 1866년을 근대사의 기점으로 삼았다든지, 일본 식민지 시기의 저항조직 ‘타도제국주의’를 결성한 1926년을 현대사의 기준으로 보는 시각은 우리의 근현대사와는 근원이 다르다. 최근에도 북한은 미국의 ‘선제타격설’에 결사항전과 최후의 저항을 주민들에게 천명하고 나섰다. 세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자존심과 자존감을 가진 북한주민이 만약 통일 이후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차별, 편견, 배제를 목격하고 자기들을 향한 천민자본주의적 태도를 경험한다면 거센 반발과 충돌이 저항과 재분단으로 불거져 한민족의 미래마저 한순간에 파괴할지도 모른다.

통일에 다시 ‘통일’을 묻다

옛 소련의 해체를 예언했던 정치학자 요한 갈퉁은 “전쟁이 끝난다고 평화가 찾아오는 게 아니며 그 다음에 찾아오는 것은 전쟁보다 더 잔인한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분단이 끝나고 한반도에 도래할 통일은 또 다른 갈등의 시작일 수 있다. 서로를 적대하고 증오해온 춥고 어두운 분단사와 불신의 악순환이 통일로 인해 거칠게 드러날 개연성이 크다. 필자도 늘 통일의 과제는 통일로 마치는 것이 아니라 통일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통일에 ‘통일’을 물어야 할 때다. 3만명밖에 안 되는 북쪽동포와도 함께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는 시험대에 올라 더욱 가혹하게 펼쳐질 통일을 보고 있다. 스스로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과의 형편도 이러한데 한국에 대한 끝없는 적대감과 저항의식으로 교육되고 성장한 북한주민이 한국이 주도하는 통일국가에 편입되기 쉽지 않다는 것은 간명한 원리이다. 남북통합의 과정에서 북한주민은 우리가 책에서 읽었던 동독주민이 아니며, 특히 자발적으로 한국에 온 탈북민은 더더욱 아니다. 과연 우리는 2500만 북한주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단언컨대 민족의 생존과 번영은 통일에서 확보할 수밖에 없다. 분단 환경이나 분단적 사고 등이 분단 극복의 아킬레스건일 수 있으나 그것이 더 나은 미래와 삶의 터전을 가로막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통일은 최후의 분단국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민족이 온전히 회복되고 우리가 지금까지 넘지 못한 부강한 선진국으로 가는 문턱을 넘게 할 대역사의 전개이다. 그래서 나는 식어가는 통일에 대한 관심과 열망이 다시 크게 타오르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그 통일은 한밤중에 얻는 대박보다는 시나브로 작은 통일이 모여 결실을 맺는 끈기와 인내의 열매여야 한다. 제대로 된 통일을 분별하지 못하다가는 민족의 웅비와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점을 분별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주승현(전주 기전대학교 군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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