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대놓고 하는 면세품 빼돌리기..국내 불법 유통

송욱 기자 2017. 4. 26.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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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서울의 한 시내 면세점을 갔습니다. 지난달 15일부터 중국인 단체 관광객 발길이 모두 끊겼다고 하지만 면세점 앞에는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대부분 중국인이었습니다. 개장하자마자 대부분의 중국인들이 향한 곳은 화장품 코너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화장품, 특히 중국에서 인기라는 한국 화장품을 몇 세트씩 샀습니다. 이른 아침에 이렇게 많이 쇼핑하면 관광은 어떻게 하나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인솔자로 보이는 사람 몇몇이 돈과 상품권 다발을 꺼내서 한참 세더니 줄을 선 일부 중국인들에게 나눠줬습니다. 구석도 아닌 바로 면세점 화장품 코너 앞에서 당당하게요. 한 눈에 보기에도 가족은 아니었고, 가이드가 돈을 대신 보관해주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중국인들이 옷차림에 크게 신경 안 쓴다고는 하지만 도저히 관광객으로 보이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받은 돈으로 화장품을 대량 구매한 사람들을 따라가 봤더니 모두 주차장의 한 승합차로 모였습니다.
 
● “소규모 보따리상? 이제는 대놓고 하는 사업”
 
관광객들을 대신해서 호텔이나 공항으로 운반해주거나 보관해주는 것일 수도 있단 생각에 따라가 봤습니다. 그런데 차량은 서울 성동구의 한 상가 건물로 향했고, 면세품들은 모두 사무실로 옮겨졌습니다. 사무실에 들어가보니 수백 개는 돼 보이는 면세품들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 켠엔 택배 상자들이 쌓여 있었습니다. 중국인으로 보이는 한 사람은 사무실 낸지 몇 개월밖에 안됐다는 말만 했습니다. 여행업계와 면세품을 담당하는 관세청에 알아보니, 이들은 전형적인 면세품 사재기 일당이었습니다.
 
면세점에서 국산 면세품은 외국인들의 경우 들고 나갈 수 있습니다. ‘현장인도’라고 합니다. 내국인이나 외국 제품은 안됩니다. 부가가치세 등을 공항에서 돌려받는 사후 면세점이 발달한 많은 나라에선 볼 수 없는 제도인데, 국산 제품의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입니다. 그런데 중국에서 한국산 화장품이나 건강식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보따리상들이 현장인도를 악용해 물품을 모아 중국으로 가져가거나, 주문을 받아 중국으로 택배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젠 보따리상 수준이 아니라 대규모로, 조직적으로 됐다는 게 여행업계 관계자의 말입니다. 여기에는 일부 여행사까지 끼어듭니다. 우선, 시내 면세품 제품의 가격을 보면, 면세만 받으면 보통 10% 정도 싸게 사지만, 대량 구매로 VIP가 되면 또 할인을 받습니다. 거기에 한가지가 더 있습니다. 면세점이 여행사와 가이드에게 주는 인센티브입니다. 면세점은 외국인 손님을 데려오는 여행사와 가이드에게 구매금액에 따라 돈을 줍니다. 이렇게 하면 30% 정도까지도 저렴하게 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싸게 산 면세 화장품은 마진을 붙여서 중간상에게 넘겨지거나, 아니면 직접 해외나 국내로 유통시키기도 합니다.
 
한 여행업계 관계자는 “여행사 입장에서 예전엔 부업이었지만 현재는 이것을 전문적으로 하는 곳이 많습니다. 거래 액수가 억 단위인 곳도 있습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또 면세점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면서 이런 일을 조장하기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대부분의 가이드들은 이런 일 안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문제의 여행사들은 자격증이 없는 무자격 가이드를 고용해서 아르바이트생들을 데리고 다닙니다. 면세점이 무자격 가이드들에게 인센티브를 주지 않는다면 이런 일을 근절시킬 수 있지만 그렇지 않는 곳들이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 “항공권, 면세품 구매한 뒤에 취소”
 

빼돌려지는 면세품

면세품 사재기에 동원되는 외국인은 두 가지 부류라고 합니다. 수당을 얼마 받기로 하고 아예 중국에서 모집해서 온 사람들, 아니면 한국 체류 외국인입니다. 면세품은 외국인도 마찬가지로 항공권 등을 보여주며 곧 출국한다는 것을 입증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 체류 외국인들은 항공권을 구매한 뒤 면세품을 사고 항공권을 취소하는 방식을 쓰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최근 감사원 감사에서도 지적이 됐습니다. 2014년부터 지난해 10월 31일까지 시내면세점에서 국산면세품을 구매해 현장 인도를 받은 외국인 32만7361명을 대상으로 탑승권 등의 출국 예정일과 실제 출국일이 다른 외국인 3만6246명을 조사한 결과 모두 8129명의 외국인이 면세품 구매후 출국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탑승권의 예약과 취소를 반복하면서 180일 이상 출국하지 않고 상습적으로 국산면세품을 구매하고 있는 경우가 7322명에 달했고, 이 가운데 1556명이 5회 이상 시내면세점에서 모두 245억여원 상당의 국산면세품을 구매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런 면세품 사재기로 인해 일차적으로는 다른 외국인 관광객들이 손해를 봅니다. 모처럼 큰맘 먹고 한국 화장품 사려고 했는데 사재기로 이미 동났다면 한국 면세점에 대한 이미지가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더 큰 문제들이 있습니다. 해외로 밀반출돼 정상가보다 싼값에 팔리면, 그곳에 진출한 기업들이 손해를 보게 됩니다. 면세품을 국내에서 파는 행위는 유통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시내 면세점에서 파는 국산 화장품에는 ‘면세’나 ‘Duty Free’라는 표식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국내로 유통되는 제품을 찾아내기도 힘듭니다.
 
그런데 최근 중국 통관이 강화됐습니다. 예전에는 보따리상들이 면세품을 모아 엄청나게 들고 가도, 택배로 보내도 걸리는 경우가 많지 않았지만 이제는 통관을 깐깐하게 하면서 세금을 내야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국내로 유통되는 물량이 늘었다는 게 여행업계 관계자의 전언입니다. 실제로 SNS로 면세 화장품을 팔고 있는 사람과 통화를 했습니다. 그 사람은 면세품이 맞으니 걱정 놓으라며 면세 가격에서도 또 할인을 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정상 가격에서 30% 정도 싸게 샀으니 마진이 남는 한도 내에서 처분을 하는 것입니다.
 
관세청은 지난해 처음으로 이런 면세품 사재기에 대해 단속을 해서 화장품 수천 개를 해외로 보낸 중국인 등을 적발했습니다. 하지만 관련 법이 미비하다 보니 면세점 밖으로 빼돌린 행위에 대해서가 아니라 고액으로 택배를 보낼 때 신고를 하지 않은 점, 물품명을 제대로 기재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아 처벌했습니다. 그리고 국내 불법 유통 부분에 대해서는 국세청 소관이라며 이첩했습니다. 관세청은 면세품을 빼돌린 사람을 처벌할 수 있는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상위 기관인 기획재정부와 협의해야 되는 등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사이 ‘대놓고 하는 면세품 빼돌리기’는 계속 되고 있습니다. 

송욱 기자songxu@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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