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보들의 '젠더 감수성', 이대로 괜찮나

김유진 기자 2017. 4. 26.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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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런치리포트-19대 대선 여성 공약8]② '공약' 아닌 '언행'이 진짜 젠더 인식 보여준다

[머니투데이 김유진 기자] [[the300][런치리포트-19대 대선 여성 공약8]② '공약' 아닌 '언행'이 진짜 젠더 인식 보여준다]

'돼지 발정제(흥분제)'가 2017년 대선 중반 주요 키워드가 될 줄 상상이나 했을까. 대선을 2주 앞두고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자서전 '나 돌아가고 싶다'에 하숙집 친구들과 함께 강간을 모의했던 과거를 서술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그가 ‘고백’ ‘고해성사’ 등의 표현을 쓰며 용서를 구하고 있지만 정작 그의 발언에 ‘여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젠더 감수성(gender sensitivity, '성인지'라고 번역되기도 함)'이 매우 낮은 정치인이란 얘기다. 홍 후보의 이런 문제는 자서전 내용 외 언행에서도 꾸준히 지적돼 왔다.

홍 후보는 지난 17일 한 방송에 출연해 '집에서 설거지를 하느냐'는 질문에 "설거지를 어떻게…. 남자가 하는 일이 있고, 여자가 하는 일이 있다. 그건 하늘이 정한 것"이라고 답하며 성차별적 사고를 드러냈다. 홍 후보의 발언뿐만 아니라 공약에서도 그의 인식은 확인된다. 성평등 공약은 물론 언급도 없다. 여성가족청년부 신설 계획이 전부다.

그가 도지사로 재직했던 경남에선 재정 효율화를 이유로 2015년 '양성평등기금'을 폐지하기도 했다. 경남여성단체연합은 지난 24일 논평을 통해 "홍 후보는 대통령 후보 자격이 없다. 그는 뿌리 깊은 성차별 의식에 빠져 있는 사람"이라며 "홍 후보의 낮은 윤리의식과 형편없는 젠더 감수성은 뿌리 깊은 성차별과 폭력의 정당화, 승자독식과 오만한 정치로 이끌 위험이 크다"고 비판했다.

젠더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는 것은 홍 후보뿐만이 아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지난 20일 최문순 강원도지사를 만난 자리에서 북한 여성응원단 관련 얘기를 하던 도중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 참여했을 때는) 완전히 자연미인이었는데, 요즘은 북한에서도 성형수술을 한다더라"는 농담을 해 여성을 대상화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문 후보는 몇 시간 뒤 보도자료를 통해 "오늘 최 지사와의 간담회 중 북한 응원단 관련 발언은 북한에서도 세태가 변하고 있다는 취지였다"며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살피는 계기로 삼겠다"고 곧바로 진화해 나섰다. 하지만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는 그의 선언이 빛바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역시 '대머리 희화화'를 통해 남성은 놀림의 대상으로 삼아도 된다는 인식을 보였다. 안 후보는 지난 11일 '2017 사립유치원 유아교육자대회'에 참석해 "대머리의 매력이 뭔지 아냐"며 "헤어(hair)날 수 없는 매력"이라는 발언을 했다. 이후 웃으며 "예. 다 분위기 좋자고 한 말씀들입니다. 앞으로 좀 더 세심하게 신경쓰겠습니다."라고 말해 건성 해명 논란까지 이어졌다.

안 후보는 또 부인 김미경 서울대 교수와 관련, '1+1 채용' 의혹이 일자 "전문직 여성에 대한 모독"이라며 '갑질 논란'이라는 문제의 본질을 ‘성차별 이슈’로 돌린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 누리꾼들은 "이 발언이 오히려 여성에 대한 모독"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생활' 운운하며 여성 비하라고 했던 것이 생각난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와 이번 대선 유일한 여성 후보인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젠더 감수성' 논란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그러나 유 후보의 경우 '여성가족부 폐지', 심 후보의 경우 '클레어법(여성이 교제 남성의 전과를 경찰에 문의할 수 있는 가정폭력전과제도)' 등 공약으로 각각 논쟁을 불러온 바 있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부대표는 "정치권의 '젠더 감수성' 부족 문제가 하루 이틀 된 이슈가 아닌 만큼, 비단 후보들의 문제라고만 보기 어려운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라면서도 "그에 대한 저항의 목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는 만큼 정치권과 대선 후보들도 더욱 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수희 한국여성단체연합 부장은 "최근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페미니즘이 하나의 흐름이 됐고 그 흐름을 모든 후보들이 선거 공약이나 캠페인에 차용했지만 충분히 체화하지는 못해 발생하는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며 "공약은 반가우나 실제 얼마나 이행할 것인가에 대해 우려가 나오는 이유"라고 말했다.

김유진 기자 yooji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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