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포트+] 수면 위 올라온 '단일화'..승패 결정한 '단일화'의 역사

김도균 기자 2017. 4. 25.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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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정당이 오늘(25일), 유승민 대선후보와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간의 '3자 단일화'를 제안했습니다. 3자 단일화로 바른정당은 사실상 '비문연대' 재점화에 나섰지만, 유 후보 본인은 단일화에 반대하고 있어 당내 갈등이 예상되는 상황입니다.

홍 후보는 단일화에 대해 유 후보와는 가능하지만, 안 후보와는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안 후보 역시 "정치인에 의한 인위적 연대는 거부한다"고 밝혔습니다. 19대 대통령 선거까지 2주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바른정당 측이 단일화를 제안하면서, 후보들 간 막판 ‘합종연횡’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과거 대선에서도 단일화, 후보사퇴 등이 선거 판세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오늘 리포트+에서는 역대 대선 판도를 뒤흔든 '단일화'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 단일화 성사에 실패한 13대·17대 대선

보수 정당 중심으로 단일화가 논의되는 19대 대선과 달리,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 단일화는 야권의 전유물이었습니다. 1987년 대통령 선거가 직선제로 개헌된 이후, 6번의 대선 중 14대 대선을 제외한 5번의 선거에서 대선후보 단일화가 시도됐습니다.

첫 번째 단일화 시도는 13대 대선을 앞두고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 사이에서 있었습니다. 1987년 10월 27일 국민투표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결정되면서, 당시 김영삼 후보와 김대중 후보는 출마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통일민주당이라는 같은 당 소속이던 두 후보는 단일화를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두 후보의 단일화 협상은 결렬됐고 김영삼 후보가 대통령 선거 출마를 먼저 발표했습니다. 김대중 후보가 평화민주당을 창당해 대선후보로 선출되면서, 두 후보는 단일화를 이루지 못하고 각각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습니다. 결국, 노태우 전 대통령이 역대 최소치인 36.6%의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2007년 17대 대선에서는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와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 이인제 민주당 후보 간 단일화 논의가 오갔지만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마지막까지 대세론을 유지하면서 당선됐습니다.

■ 후보 단일화로 승리 거머쥔 15대·16대 대선

1997년 15대 대선에서는 이른바 'DJP 연합'이 성사됐습니다. DJP 연합은 새정치국민회의를 이끌던 당시 김대중 총재와 자유민주연합 김종필 총재가 대선후보 단일화에 합의한 결과물입니다.

성사가 어려울 것으로 관측되던 호남과 충청, 진보와 보수 간 DJP 연합으로 김대중 후보는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를 누르고 15대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특히 15대 대선은 김대중 후보가 열세 지역이었던 대구·경북에서 14대 대선보다 5% 많은 14%의 득표를 기록해, 반(反) DJ 감정을 어느 정도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2002년 16대 대선에서는 당시 노무현 민주당 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 간 단일화가 성사됐습니다. 두 후보의 단일화는 선거의 승부를 뒤집은 대표적 사례로 꼽힙니다. 당시 두 후보의 단일화 방안으로는 노무현 후보가 제안한 '국민 경선'과 정몽준 후보가 제안한 '협상 담판'이 있었으나, 두 가지 방안을 두고 합의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결국 '여론 조사'가 단일화 방안으로 채택됐고 노무현 후보가 단일화 후보로 선출됐습니다.

하지만, 16대 대선의 단일화에는 반전이 있었습니다. 정몽준 후보가 선거 전날 노무현 후보와의 단일화를 파기하며 '지지철회'를 선언한 겁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노무현 후보의 당선이 어려울 거라는 관측이 나왔지만, 노 후보는 48.9%의 득표율로 16대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 야권 후보 단일화에도 패배한 18대 대선

단일화가 모든 대선에서 승리를 가져다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2012년 18대 대선은 야권이 후보 단일화에 성공했지만, 선거에서는 패배한 첫 사례입니다.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이견을 좁히지 못하다가 끝내 안철후 후보가 사퇴하는 형식으로 단일화를 이뤘습니다. 단일화에 성공한 문재인 후보는 막판 맹추격에 나섰지만, 18대 대선의 승리는 박근혜 한나라당 후보가 거머쥐었습니다. 때문에 두 후보 간 단일화는 선거 판세를 흔들었지만, 결과는 뒤집지는 못한 단일화로 평가됩니다.

이번 대선에서도 후보 단일화 가능성이 자주 점쳐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능성은 높지 않은 상황입니다. 5월 9일 치러지는 '장미 대선'을 앞두고 막판 단일화로 실제로 성사될지, 성사된다면 선거 판세에 위력을 발휘할지 이목이 쏠리고 있습니다.

(기획·구성: 김도균, 장아람 / 디자인: 김은정)    

김도균 기자getse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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