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업 스트레스' 꽉 찬 교실, 자유학기제 시행에도 '시험 노이로제' 여전

손현경 조선에듀 기자 2017. 4. 25.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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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일반학기 시험, 후폭풍 다가올까 두려워"..사교육 놓지 못해
-교사 "연수 한 번 받은 적 없는데 왜 하필 내가?"..낯설고 당황스러워
학생들의 진로를 찾기위해 교육부가 추진한 자유학기제가 '학업 부담' 경감에는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조선일보 DB

“당장 시험은 안 보니까 좋죠. 사진반에서는 스마트폰도 사용할 수 있어요. 그래서 선생님 몰래 게임을 하는 애들이 있기도 해요. 그러면 뭐해요. 학교에서는 공부하지 않아도 학원에서는 시험공부를 시켜요. 다음 학기 시험 대비를 하지 않았다가 '폭망'(폭삭 망하다의 준말)할 수도 있으니까….” (성적 중상위권의 A 학생·자유학기제 참여 중)

진로·체험 교육을 강화한 ‘자유학기제’에 대해 청소년들은 프로그램 자체에 대해 만족을 느끼면서도 이후에 치르게 될 시험과 입시에 대한 부담이 여전히 큰 것으로 나타났다.

◇자유학기제? “꿈 찾는 건 좋지만, 공부는 언제 해요?”

최근 ‘학업 노이로제’에 걸린 우리나라 교육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발표가 있었다. 지난 21일 OECD는 우리나라 학생들의 ‘성적 스트레스’가 최고치에 올랐다고 분석했다. OECD가 전 세계 15세 학생 54만명을 대상으로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와 성취동기, 신체활동 등을 설문 조사한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2015학생 웰빙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은 주관적 삶의 만족도가 최하위권이었을 뿐만 아니라 시험이나 점수로 인한 스트레스 수준이 OECD 평균보다 훨씬 높았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2015년 이전의 결과라며 설명 자료를 내고 “자유학기제 적용 이전에 학생들의 학업에 대한 부담감이 기록된 것이다. 청소년들은 현재 자유학기제를 통해 ‘행복한 교육’을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자유학기제가 학생들의 ‘학업 스트레스’를 줄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25일 서울시교육청교육연구정보원이 의뢰해 분석한 이상오 연세대 교육대학원 교수팀의 ‘서울형자유학기제 연계 확산 방안 모색’ 보고서를 보면 “자유학기제 도입 이후에도 여전히 중학생들은 학업 부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부모는 (자유학기제를) 기초교육을 학교에서 덜 시킨다는 개념으로 인지하고 사교육에 계속해서 의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보고서는 자유학기제에 대한 인식 조사로 학생과 교사들을 대상으로 심층 면담한 내용을 담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상위권 중학생 B는 “학원에서 (일반학기였던) 1학기 때보다 더 심하게 가르치는 것 같다. 학교에서 시험을 안 보니 학원에서 모의고사를 계속 본다”고 말했다.

자유학기제의 특성을 이용한 사교육도 등장했다. 또 다른 학생 C는 “이전보다 모둠 활동이랑 수행 평가가 조금 더 많아졌다. 이 때문인지 학원에서도 ‘마인드맵’, '브레인스토밍’ 이라는 새로운 강의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11일 교육부와 한국인터넷광고재단은 자유학기제와 선행학습 등 ‘학부모 불안마케팅’을 이용한 광고를 조사해 88개 학원을 적발했다. 광고문구들은 ‘자유학기제 기간 시험 부재로 인한 학습 공백 최소화’ 또는 ‘자유학기제 대비 학원 자체시험 실시’ 등이 주를 이뤘다.

일부 학생들은 자유학기 연장에 대해서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면담 학생 D는 “(학교에서) 교과 공부하는 비중이 줄면 자연스레 따로 시간을 내거나 학원에 다녀서 교과 시험 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이외에도 ‘자유학기제 프로그램이 학교마다 다르다’ ‘단순 직업 찾기 제도 아니냐’라는 지적도 있었다. 이를테면 그 직업 중심으로 학생들을 모아 반을 편성하기 때문에 ‘진로 찾기’라는 큰 그림보다는 ‘직업 정하기 프로그램’이라는 비난을 받는 것이다.

◇교사도 낯설어…“왜 하필 연수도 받지 못한 내가 자유학기를”

교사들에게도 자유학기제는 낯설긴 마찬가지였다. 보직을 맡았기 때문에 의무감에 활동하는 교사들이 있는가 하면 귀찮고 번거로워하는 교사들도 일부 있었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니까 새로운 면을 보게 되는 점은 좋아요. 그런데 ‘왜 하필 내 교과가 희생해야 해?’라는 생각도 일부는 있어요. 진로 등 확대된 수행평가, 하다못해 체험활동에 필요한 교통비까지 신경 써줘야 하는 부분이 한둘이 아니니까요….”(15년차 부장교사 E씨)

연수 한 번 받지 못했는데 자유학기제 수업을 맡은 교사의 불만도 있었다. “학기 초에 갑자기 자유학기를 맡게 됐어요. 발령 전까지는 원래 하던 보직을 계속 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사전에 얘기도 없이 갑자기 2월말에 발령을 받았죠.” (15년차 부장교사 F씨)

이에 대해 이상오 교수팀은 교사양성시스템 개선과 체험학습 위주의 학제개편 등 자유학기제가 개선해야 할 방안을 제시했다. 또 체험학습에 익숙해지는 연령단계를 조정하기 위해 ▲유치원 1년 ▲초등학교 5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4년(진로준비 과정 1년 포함)으로 학제를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자유학기제는 학교와 교육 당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체와의 유기적인 협력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며 ‘산·관·학 네트워크 시스템’을 수립·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자유학기제는 중학교 1학년 1학기나 2학기, 2학년 1학기 중 한 학기 동안 중간·기말고사를 보지 않고 진로·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적성과 꿈을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제도다. 전면 시행 2년차를 맞는 올해에는 전체 중학교 3208곳(약 45만명)에서 자유학기제가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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