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배구' 바람난 교사들, 지침위반 논란까지

윤근혁 2017. 4. 25.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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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근무시간에 학교 옮겨다니며 배구하는 교사들

[오마이뉴스 글:윤근혁, 편집:최유진]

 대구교총이 이 지역 초등학교에 보낸 공문.
ⓒ 대구교총
대구지역을 비롯한 전국 상당수 시도의 초등교원들이 근무시간에 학교를 옮겨 다니며 배구(연습)경기에 몰입하고 있어 '학교업무에 소홀한 것 아니냐'는 눈총을 받고 있다. 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과 교육장배 배구대회 등에 대비하기 위해서라지만 관련 법규 위반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출장 금지' 지침 보냈던 대구교육청, 교총 '배구'만 허락

특히 대구교육청은 이 같은 몰려다니기 식 배구(연습)경기에 대해 '출장조치와 출장비 지급이 가능하다'는 내용이 담긴 대구교원단체총연합회(대구교총) 공문 발송을 허가해 지침 위반 논란이 일고 있다.

25일, 대구교총이 이 지역 초등학교에 보낸 공문 '제15회 대구교총회장배 초등배구대회 개최 안내'(3월 21일자)를 입수해 살펴봤더니, 이 단체는 오는 5월 17일 오후 1시부터 대구체육관에서 초등교사 배구대회를 연다. 평일 근무도 끝나지 않은 시각에 자체 배구대회를 열기로 한 것이다.

이달 17일부터 27일까지는 대구지역 22개 초등학교 경기장에서 예선전을 치르고 있다. 이 또한 '근무시간 중에 대회를 치른다'는 게 대구교총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공문에서 대구교총은 "위 대회는 대구교육청 후원 행사로 출장 조치 및 출장비 지급이 가능하오니 대회를 성황리에 개최할 수 있도록 많은 참가 부탁드린다"고 적었다. 이 공문은 대구교육청 초등교육과가 미리 검토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대구교육청은 올해 1월 학교에 보낸 지침인 <학교경영 가이드북>에서 다음처럼 체육행사 출장 금지를 규정했다.

"교원단체 주최 체육행사에 교원이 선수로 참여하는 경우, 체육행사의 주체가 행정기관이 아닐 뿐만 아니라 교원본연의 직무수행과 무관한 활동이므로 출장 조치 불가."

 출장 관련 올해 대구교육청이 만들어 학교에 보낸 지침.
ⓒ 제보자
대구지역 한 초등교사는 "대구교육청이 스스로 만든 출장 지침까지 교총이 주최하는 배구대회를 위해 어긴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대구교육청 초등교육과 관계자는 처음에는 "그런 출장 불가 지침이 있는 줄 미리 살펴보지 못했다"고 잘못을 시인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다시 전화를 걸어와 "확인해봤는데 그 지침은 원칙적으로 맞는 내용"이라면서도 "이번 출장 허가는 조례에 의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단체의 행사이고 스승의 날 행사에 포함시켜 교육감이 결재를 한 것이기 때문에 출장이 가능해진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자신들이 전체 학교에 보낸 기존의 지침을 어겼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 같은 '지침 위반'성 특혜 공문에 따라 대구지역 초등교사들이 근무시간을 빼 먹으며 '배구' 바람에 무더기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

이번 대회에 참여하는 대구지역 교사들은 85개교에 68팀(2개교 연합팀 포함)이다. 후보 선수까지 포함해 한 팀 12명으로 계산하면 1020명이 평일 근무시간에 22개교에서 치르는 예선전과 본선전에 참여해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경기에 대비하기 위한 연습경기를 5~10차례 치른다는 게 이 지역 교사들의 증언이다.

이를 종합하면 대구교육청의 부적절한 공문 허가 때문에 1만1424시간(평균 하루 2시간씩 7일간의 연습과 경기시간)의 '근무지 이탈' 행위가 벌어진 셈이다. 이 수치는 응원에 나선 일반교사들은 뺀 것이다.

임성무 대구 강림초 교사는 "교사들이 근무시간에 모여서 배구를 하거나, 이웃 학교와 친선경기를 한다고 출장을 달고 몰려다니는 행태에 대해 학부모들이 어떻게 볼지 우려된다"면서 "배구대회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근무시간 중에 한두 번도 아닌 한 달여의 시간을 사용하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업시간이 끝나지 않은 시각'에 배구연습을 하자고 요구하는 충남 천안지역 한 교장의 공문.
ⓒ 제보자
충남 천안지역 J초등학교 교장도 최근 배구대회 남녀 합동연습을 위해 평일인 4월 26일, 5월 1일, 5월 11일 사흘에 걸쳐 오후 2시 30분부터 동부지구 선수들이 참여할 것을 요구하는 공문을 이 지역 초등학교에 보냈다. 수업이 오후 3시 20분에 끝나는데 수업까지 빼먹고 연습을 강행하겠다는 것이다. 오는 5월 13일 여는 천안교육장배 초등교원 배구대회에 참가해 우수한 성과를 내기 위해서다.

천안지역 한 초등교사는 "교장, 교감, 교무와 젊은 교사 3명이 배구대회 연습을 위해 밖으로 나가 매주 수요일에 열었던 교사학습 공동체 행사를 취소했다"고 전했다.

"수업시간에도 배구경기? 초등교육은 배구 땜에 망한다"

최근 페이스북에서는 '배구'바람 난 초등교사들에 대한 자성 촉구와 질타의 글이 줄을 잇고 있다. 지난 18일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해 논란에 불을 지핀 이성우 교사(경북 도량초)의 글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이 나라 초등교육은 배구 땜에 망합니다. 우리 관내 초등학교에 번지고 있는 과도한 배구 몰입 풍조에 대한 시정조치와 함께, 이 기형적인 풍조의 원인이 되고 있는 교육지원청 주관 교직원배구대회의 철회를 요청하는 바입니다. 교육자라는 사람들이 자기 직분인 '학생교육'과 무관한 여가활동에 과도한 시간과 에너지를 근무 시간에 소진하는 자체가 심각한 직무유기를 구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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