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베리타' 파스카 "서커스는 우리 삶의 시작"

이재훈 2017. 4. 25.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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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서커스는 굉장히 미묘하고 섬세한 것이에요. 애크러배틱한 서커스는 단지 예술이 아니라 우리 삶의 시작을 발견하게 해주죠."

【서울=뉴시스】다니엘 핀지 파스카, 아트서커스 '라 베리타' 연출가. 2017.04.25. (사진 = LG아트센터 제공) photo@newsis.com

스위스 출신의 세계적인 공연 연출가 다니엘 핀지 파스카(53)가 자신의 대표 아트 서커스 '라 베리타'를 들고 6년 만에 내한했다.

작가, 마임이스트이기도 한 파스카는 서커스를 '쇼에서 예술의 차원으로 끌어올린' 거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캐나다의 양대 서커스 단체로 손꼽히는 '태양의 서커스'와 '서크 엘루아즈'에서 모두 연출을 경험했다.

25일 오전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만난 그는 "부모님과 가족들이 함께 한 반짝이는 순간들이 애크러배틱으로 표현되는 것,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서커스의 의미"라고 말했다.

서크 엘루아즈에서 만든 '네비아'와 '레인'을 들고 2008년 세종문화회관과 2011년 LG아트센터에서 내한공연한 바 있으나 자신의 극단인 '컴퍼니 핀지 파스카'와 함께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파스카는 어렸을 때부터 애크러배틱, 즉 곡예와 같은 동작에 끌렸다고 했다. 빈 공간을 볼 때 몸이 기울어지는 현상을 보면서 '비어 있음'의 미학을 느꼈고, 높은 곳에 올라가고 싶은 욕구가 일었다고 했다.

【서울=뉴시스】아트서커스 '라 베리타'. 2017.04.25. (사진 = Viviana Cangialosi 제공) photo@newsis.com

"그럴 때마다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근데 그런 충동이 서커스랑 연결된 것 같아요. 어렸을 때 높은 곳에 올라가면 날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잠깐 날아서 바닥에 착지하는 순간, 몸의 균형을 스스로 잡을 때면 날아가고 싶은 욕구와 그것을 잡고 있는 요소가 균형을 이룬다고 생각했죠. 그 색다른 경험이 예술의 처음 순간을 추측하게 만들었습니다."

서커스라는 예술에는 행위자의 삶이 드러난다고 봤다. 저글링, 줄타기를 하는 사람에는 그 동작과 분위기가 배어 있다는 것이다. "애크러배틱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받쳐준다고 해도 저마다의 특기가 그대로 드러나죠. 그의 삶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 서커스입니다."

2013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초연된 이후 20개국을 돈 '라 베리타'가 무엇보다 특별한 지점은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의 걸작 '광란의 트리스탄'(Mad Tristan)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라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피해 당시 미국에 머물렀던 달리는 유명 안무가 레오니드 마신의 의뢰를 받는다. 1944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 발레 '광란의 트리스탄'의 배경 막을 그린 이유다.

높이 9m, 너비 15m에 달하는 이 대작은 공연 후 분실돼 한동안 자취를 감쳤다. 2009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의 창고 속에서 다시 발견됐다. 2009년 경매에 부쳐져 한 익명 수집가의 손으로 넘어갔는데 그는 이 그림의 원래 목적대로 파스카에게 사용해 줄 것을 제안했다.

【서울=뉴시스】아트서커스 '라 베리타' 속 살바도르 달리의 걸작 '광란의 트리스탄'을 사용한 장면. 2017.04.25. (사진 = Viviana Cangialosi 제공) photo@newsis.com

'라 베리타'는 초연 후 3년간 달리가 그린 '광란의 트리스탄' 오리지널 배경 막을 공연에 사용했으나, 현재는 투어를 위해 카피 본을 사용하고 있다.

"수집가는 그림에 숨겨진 이야기를 비밀스럽게 간직하신 분이셨어요. 수집가를 만난 장면을 공연에서도 사용했죠. 상상해보세요. 양탄자처럼 씨줄과 날줄이 얽히며 다양한 이야기가 만들어지듯이 실제 우리의 만남을 시작으로 이야기를 만들자고 했죠."

파스카는 서커스에만 특화된 공연 예술가가 아니다. 세계적인 명성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과 영국 국립오페라단의 위촉을 받아 오페라 '아이다'와 '레퀴엠' 등을 연출하는 등 경계를 뛰어넘는 예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스위스 국적으로 이탈리아와 러시아의 동계 올림픽 폐막식을 연출한 화제의 인물이기도 하다. 아름답고 웅장했던 2006년 토리노 동계 올림픽과 2014년 러시아 소치 동계 올림픽 폐막식 무대는 올림픽 개폐막식을 이야기할 때마다 회자되고 있다.

이탈리아 토리노 동계올림픽 폐막식은 서커스의 대축제라는 주제로 카니발 형식의 화려함이 돋보였다.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 폐막식은 수많은 러시아의 예술가들에게서 영감을 받아 현지 정신, 문화, 전통을 표현해냈다.

【서울=뉴시스】토리노 동계올림픽 폐막식(2006·왼쪽) & 소치 동계올림픽 폐막식(2014). 2017.04.25. (사진 = Viviana Cangialosi 제공) photo@newsis.com

"토리노의 경우는 이탈리아의 시적인 표현에 힘을 썼어요. 인간이 가지는 힘을 표현하고자 했죠. 그걸 요구했고요. 러시아에서는 기술의 힘에 큰 중점을 뒀습니다. 거대한 오브제를 사용했고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 신경을 썼습니다. 올림픽이 아테네에서 출발했을 때의 정신을 생각합니다. 연대의식과 즐거움이죠. 그 안에서 사람이 영롱하게 수정처럼 채워가는 거죠."

내년 2월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한국에게 해줄 조언을 부탁했다. 현재 평창올림픽 개·폐회식 총감독은 송승환(PMC프러덕션 회장)·총연출은 양정웅(극단 여행자 내표)이 맡고 있다.

"예산과 기간의 실제적인 것에 대해 생각해야 해요. 예컨대, 이만큼의 예산으로 무엇을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서요. 러시아의 프로덕션은 후대에 남겨줄 기념할 만한 것을 만들어달라고 했어요. 그렇게 정확하게 기획하는 것이 필요하죠. 한정된 기간을 잘 분배하고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죠."

파스카가 공연 장르에 상관없이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 중 하나가 조명이다. 사진가 가족의 출신인 그는 시각적인 부분의 중심을 조명에 두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치 동계올림픽 폐막식 때도 조명이 많은 부분을 차지했어요. 이번 '라 베리타'에서 달리 그림을 보면 퍼스펙티브(원근법)이 도드라져요. 그런 부분에 신경을 쓰고자 했죠."

【서울=뉴시스】다니엘 핀지 파스카, 아트서커스 '라 베리타' 연출가. 2017.04.25. (사진 = LG아트센터 제공) photo@newsis.com

이번 작품 제목 '라 베리타'의 뜻은 진실. 파스카는 "무엇이 진실이고 우리가 어떻게 진실을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하는 것을 담았다"고 소개했다.

"예를 들어 무대 위에서 누가 죽는다고 해서 진실로 바로 연결되지는 않죠. 진짜로 배우가 죽는 게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오히려 죽음에 대해 인식하지 못해요. 진짜라는 건 이상한 것을 동반해야 합니다. '라 베리타'에서는 달리의 그림에서 악몽을 재현하면서 그의 진짜 삶이 어땠는지 찾아가는 과정을 이상한 방식으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이상한 것으로 진실을 구현하는 것이 이 작품의 전체 테마예요."

파스카의 취미는 등산을 가서 독특한 버섯을 캐는 것. 창작의 원천과 영감에 대해 묻자 "그 독특한 버섯을 어디서 캤냐고 물어보는 것과 같다"고 웃었다.

"비밀스럽게 답할 수밖에 없어요. 이쪽에서 캤으면서도 저쪽에서 캤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비슷하죠. 누군가에게 알려줄 수 없는 비밀스런 것이에요." '라 베리타' 27~30일 LG아트센터. 대부분의 좌석은 이미 매진됐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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