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대선 TV토론의 역설.. '기대치 게임'의 희생양은?

국기연 2017. 4. 25.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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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승자는 대선 패자가 될 가능성 커

5·9 대선까지 3번 남은 후보 TV 토론이 이번 선거전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막판 변수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 선거 역사를 보면 TV 토론 승자가 반드시 대선 승자가 되지는 않았다. 그 정반대로 TV 토론 승자가 대선의 패자로 전락할 위험성이 더 큰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TV 토론에서 선전하고 있는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심상정 정의당 후보와 꼴찌 다툼을 하고 있다. 지난해 11·8 미국 대선전 1, 2, 3차 TV 토론에서 전승을 기록한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본선 투표에서 도널드 트럼프에 패배했다.

지난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두 번째 대선 TV토론에 앞서 정의당 심상정(왼쪽부터), 자유한국당 홍준표, 바른정당 유승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번 대선 토론은 사상 첫 스탠딩 토론으로 진행됐다. 국회사진기자단
◆기대치 게임(Expectation game)

선거전에서 TV 토론은 흔히 ‘기대치 게임’으로 불린다. 일반적으로 후보가 유권자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고, 이와 반대로 토론에서 선전하면 지지율 상승을 기대해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미국의 정치 학자들이 연구한 바에 따르면 TV 토론으로 선거 승리를 견인할 수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후보가 토론에서 결정적인 실수를 범하거나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면 낙마의 위기에 몰릴 수 있다.

대선 TV 토론의 승패는 기대치 게임을 어떻게 이끌어가느냐에 따라 판가름이 난다. 미 CNN 방송은 1984년 이후 현재까지 대선 후보에 대한 TV 토론 기대치 조사를 하고 있다. CNN은 유권자를 대상으로 어느 후보가 TV 토론에서 승자가 될 것으로 예상하는지 사전 조사를 한다. 이때 다수가 토론의 승자가 될 것으로 기대하는 후보는 토론을 잘하든, 못하든 불리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고 경제 전문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가 최근 보도했다.

유권자가 TV 토론에서 승리할 것으로 예상하는 후보는 ‘잘해야 본전’인 게임을 하게 된다. 토론에서 승리가 예상되는 후보는 실제로 TV 토론을 잘하면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만약에 조금이라도 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유권자가 ‘패자’로 낙인을 찍을 가능성이 크다고 이 매체가 지적했다.

◆TV 토론의 승자로 지목된 후보의 수난사

CNN의 TV 토론 사전 조사에서 승자로 예측된 후보는 거의 예외없이 백악관 입성에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1996년 대선에서는 공화당의 밥 돌 공화당 후보가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보다 TV토론을 잘 할 것으로 조사됐으나 클린턴에 패배했다. 지난 2004년 대선에서는 존 케리 민주당 후보가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보다 TV 토론을 더 잘 할 것으로 조사됐다. 케리 후보 역시 부시에 고배를 마셨다. 지난 2008년 대선에서는 공화당의 백전노장 존 매케인 후보가 민주당의 신출내기 정치인 버락 오바마 후보를 압도할 것으로 조사됐으나 그를 끝내 이기지 못했다. 

지난 2016년 대선에서는 민주당의 ‘준비된 후보’ 힐러리 클린턴이 ‘아웃사이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를 상대로 TV 토론에서 일방적인 승리를 거둘 것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었다. 실제로 클린턴 후보는 3번의 TV 토론에서 모두 승리했다. CNN과 여론 조사기관 ORC가 공동으로 토론 후 실시한 조사에서 1차 TV 토론에서는 클린턴이 트럼프를 62%대 27%로 이긴 것으로 나타났다. 2차 토론에서는 67% 대 34%, 3차 토론에서는 52% 대 39%로 클린턴이 승리했다. 그러나 TV 토론에서 클린턴의 승리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이것이 득표로 이어지지 않았다. 미국 대선에서는 토론을 잘하지 못할 것이라는 인상을 주는 후보가 오히려 TV 토론에서 더 유리하다고 비즈니스 인사이더가 지적했다.

◆유승민 후보의 딜레마

유승민 후보가 지난 두 번의 TV 토론에서 모두 두각을 나타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이다. 유 후보는 2차 토론에서는 적절한 치고 빠지기식 전략으로 시종 득점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15일과 16일 한국리서치가 실시한 조사에서 토론을 가장 잘한 후보로 응답자의 28.1%가 유 후보를 꼽아 그가 1위를 차지했다. 유 후보는 3차 토론회에서도 상대를 공격할 때 예리한 질문을 던지고, 자신의 정견을 밝히는데에도 능숙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유 후보는 각종 여론 조사에서 5% 미만의 미미한 지지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유 후보는 자신을 후보로 내세운 바른정당에서 후보 사퇴 압력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TV 토론을 가장 잘한 유 후보는 이제 완주하기조차 힘겨운 상황이다.

미국식 분석 모델로 보면 유 후보는 ‘기대치 게임’의 최대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세 번의 토론회가 남아 있고, 유 후보가 남은 토론회에서도 선전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예상이다. 이 때문에 유 후보는 막판 변수라는 TV 토론을 아무리 잘해도 지지율을 끌어올리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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