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심은경이 '특별시민'·최민식을 만난 후 깨달은 '초탈'의 미학

한해선 기자 2017. 4. 25.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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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24살 심은경은 23살 때보다 또 한껏 성장해 있었다. 영화 ‘특별시민’(감독 박인제)에서 연기한 박경 캐릭터가 그간의 캐릭터와 깊이를 달리했고, 실제 갖가지의 고민과 번뇌에서도 초탈한 듯했다. 이번에 심은경이 연기한 인물은 좀 특별하다. 대한민국 선거판의 세계를 그린 ‘특별시민’에서 박경은 선거판의 젊은 피로 여당 심혁수(최민식)의 편에 서기도, 그에게 따끔하게 일침을 가하기도 한다. 똑 부러진 신념과 강단을 자랑하는 면모가 심은경에게서도 배어났다.

배우 심은경 /사진=쇼박스

최근 서울 종로구 팔판동 한 카페에서 만난 심은경은 ‘정치’라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며 성장한 자신과 ‘최민식’이라는 거물에게서 깨우친 새로운 시각을 솔직하게 밝혔다.

“박경 캐릭터를 처음 제의 받고 너무 기뻤어요. ‘나한테도 드디어 최민식 선배님, 곽도원 선배님과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순간이 오다니’ 싶었죠. 시나리오를 읽고 보니 박경이 저보다 높은 연령대에 전문성이 있는 캐릭터더라고요. 작년에 촬영하면서 ‘내가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단계에 있는 걸까’ 걱정도 됐어요. 연륜에서 묻어나야하지 않을까 고민하면서, 내가 혹여 너무 신나서 욕심을 부리지는 않을까 불안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제작진께서는 박경이 완벽한 모습보다는 정치를 향한 신념과 고집, 꿈,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 용기라는 걸 표현하길 원하셨어요.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을 깨닫고 고민하는 ‘정치미생’인 거죠.”

“박경 캐릭터만의 큰 매력이 있었어요. 기존에 볼 수 없었던 당당함과 순수함이 있는 인물이에요. 확고한 신념과 이성적인 면모가 있는데, 제가 만나지 못한 캐릭터여서 끌렸어요. 이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는 건 저에게 있어서 큰 행운이라 생각했고, 어떻게든 잘 해보고 싶었죠. 여성 캐릭터들이 자기 영역에서 밀어붙이는 모습도 흥미로웠는데 한국에서는 잘 보지 못했던 시나리오였어요. ‘이런 작품이 나에게도 들어오다니’ 싶었죠.”

이번 작품 ‘특별시민’은 현 서울시장 변종구(최민식)가 차기 대권을 노리고 최초로 3선 서울시장에 도전하는 치열한 선거전 이야기를 다룬다. 그 속에서 심은경은 겁 없이 선거판에 뛰어든 광고 전문가 박경 역을 맡았다. 첫 등장부터 공개 석상에서 변종구에게 일침을 날린 패기로 심혁수(곽도원)의 눈에 띄어 선거판에 입문하게 된다. 하지만 점차 치열해지는 네거티브 선거전 속에서 권력을 향한 끝없는 욕망을 직시, 혼란에 휩싸인다.

“그 전에는 저의 경험을 녹여내서 감성적으로 캐릭터를 만들어냈다면, 이번엔 제가 경험하지 못했던 부분인 이성적인 면을 중점으로 연기했어요. 제가 가진 톤 앤 매너를 버리려고 했죠. 다른 면모를 끄집어내면서 회의도 많이 하고 생각도 많이 했어요. 촬영 내내 모니터도 많이 했고요. 극 속에서 중심을 잃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하겠더라고요. 박경의 캐릭터가 흔들리지 않고 선배님들(최민식, 곽도원 등) 사이에서 잘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배우 심은경 /사진=쇼박스

심은경은 기존에 영화 ‘써니’, ‘수상한 그녀’, ‘걷기왕’, 드라마 ‘내일도 칸타빌레’로 보인 발랄한 이미지로부터 180도 달라진 냉철함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과거 통통 튀고 귀여운 매력으로 ‘아이’ 같은 색채가 강했다면, 이번 ‘특별시민’에서는 정반대다. 이야기를 그리는 판 자체가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 묵직한 ‘정치’ 소재를 안음과 동시에 함께 연기하는 배우도 최민식, 곽도원, 문소리 등 충무로의 ‘연기대가들’이었다.

“처음엔 진짜 벌벌 떨면서 인사드렸어요. 꿈에 그리던 선배님을 뵌 거니까요. (최)민식 선배님은 제 인사에 흔쾌히 손 인사까지 해주시면서 ‘오오!’, ‘오오 그래, 앉아’(성대모사 톤으로)라고 많이 챙겨주시더라고요. 제가 좀 더 살갑게 대했어야하는데 워낙 낯을 가리느라 대답을 잘 못했던 것 같아요. 더듬거리기도 많이 해서 선배님이 답답해하셨을 거예요. 선배님과 초반에 리딩을 할 때였는데, 전날 연습을 정말 많이 했음에도 역시나 제 생각대로 나오지 않더라고요. 그 때 선배님께서 ‘당당하게 해, 소심해보여’라고 말씀해주셔서 덕분에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됐죠. 선배님께서 많이 이해해주셨어요. 선배님이 진짜 대단하신 게, 그 열정은 정말 어느 누구도 따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집중력도 대단하시고 한 장면 한 장면을 예사로 안 넘어가시더라고요. 사실 그 기에 많이 눌려서 제가 캐릭터를 갈팡질팡하기도 했는데, 선배님께서 ‘연기하는 순간은 선배, 후배 없다’고 해주셨어요. 충고 겸 격려를 많이 해주셨죠.”

심은경은 최민식이 무려 자신의 어머니보다 한 살 많은 대선배라 밝히면서 아버지 같은 최민식이 없었다면 박경을 끝까지 연기할 수 있었을까 싶었다고 거듭 감사함을 표했다. 심지어 촬영이 없는 날에도 최민식은 촬영장에 나와 심은경의 연기 모니터링을 해주는가 하면, 심은경이 군것질로 가져온 과일맛 카라멜도 나눠먹으면서 이후에는 장난도 맞받아칠 만큼 훈훈한 친분을 자랑하게 됐다. 심은경이 극 중 또 다르게 호흡을 맞추는 인물은 선거대책본부장 심혁수. “선거는 말이야, 똥물에서 진주 꺼내는 거야. 손에 똥 안 묻히고 진주를 꺼낼 수 있겠어? 없겠어?”라고 냉정한 세계를 언급하며 박경을 선거판에 끌어들인다. 해당 역의 곽도원과는 어떤 케미를 그렸을까.

“곽도원 선배는 예전에 ‘범죄와의 전쟁’을 보고서 진짜 검사를 캐스팅했나 싶을 정도로 자연스런 연기에 매료됐던 분이에요. 선배님 또한 촬영하면서 박경 캐릭터에 대해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어요. 선배님과는 대립하는 장면을 그리면서 연기적인 희열을 느꼈죠. 박경 입장에서 소신을 밝히면서 본능끼리 충돌하는 장면이었는데, 무언가 솟구치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 에너지를 잘 이끌어내 주셔서 감사드려요.”

‘특별시민’에서 변종구와 심혁수에게 있는 노련미가 박경에게는 없다. 실제 심은경도 아직은 한창 연기를 깨우치는 입장에서 최민식, 곽도원으로부터 적잖이 깨우친 부분이 있었다. 이번 작품에 참여함으로써 심은경은 연기 스펙트럼 확장의 성과도 거둘 수 있었지만, 무엇보다 내면의 불안과 강박을 타파하도록 이끈 기회가 됐다.

“항상 제가 가진 에너지를 중요한 장면에서 쏟아 부으려 했는데, ‘특별시민’ 때는 더욱 특별했던 것 같아요. 거짓말 안 하고 연기할 때는 아무 것도 안 들릴 정도로 초 집중했어요. 이런 경험은 정말 처음이었죠. 항상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고, 감을 잃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게 뭔지 절실하게 느낄 수 있던 작품이었어요. 앞으로의 행보에 대한 고민도 타파할 수 있었죠. 저를 정말 많이 성장시켜준 작품이에요. 제가 할 수 있는 한은 최선을 다 했어요. 제 자신을 많이 내려놓게 되더라고요. 그 전에는 연기를 잘 하는 걸 단지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매번 다른 모습, 새로운 걸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어요. 연기를 잘 하는 배우로 인식되고 싶었던 거죠. 근데 그게 저의 욕심이었더라고요. 제 자신을 내려놓는다는 게 정말 많이 힘든 것이고,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깨닫게 됐어요. ‘특별시민’은 연기 하나만 파고드는 감성을 되찾아준 작품이에요.”

배우 심은경 /사진=쇼박스

“저에 대한 비판을 들으면, 예전 같았으면 ‘어떡하지? 열심히 준비했는데 나는 뭘까’, ‘재능이 있는 걸까’라는 생각을 했을 텐데, 이 작품을 한 이후로는 ‘아직도 내가 쌓아야 할 게 많다는 증거구나’라고 느껴지더라고요. ‘그럼 해보자’라고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어요. 그 중심에는 최민식 선배님이 계셨고요. 인간 심은경으로서도 많이 자라게 해준 작품이에요. 과거엔 부족한 제 모습에 인정하지 못했던 것도 있어요. 이제는 인정이 되거든요. 진짜 저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됐어요. 저의 연기적인 단점을 바꾸려고 시도를 많이 하고 고민도 많았는데, 그게 결국 저인 거더라고요. 내가 가진 톤을 바꿀 수 없는 거라는 걸 알았어요. 이제 마음이 편해요. 더 마음껏 작품을 즐길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기더라고요. 언젠가 고민의 순간이 또 한 번 분명 찾아 올 테지만, 제가 생각을 깨우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해요.”

2004년 아역부터 배우 생활을 시작해 14년차 연기 생활을 지속해온 심은경. ‘헨젤과 그레텔’(2007)에서 신비로운 아이 역을 시작으로 ‘불신지옥’(2009)에서 신들린 소녀, ‘써니’(2011)에서 독특하고 쾌활한 소녀, ‘수상한 그녀’(2014)에서 할머니로 빙의한 손녀, ‘로봇, 소리’(2016)에서 로봇 목소리, ‘널 기다리며’(2016)에서 아버지의 복수를 갚으려는 소녀, ‘서울역’(2016)에서 가출 소녀의 목소리, ‘걷기왕’(2016)에서 천하태평 소녀, ‘조작된 도시’(2017)에서 은둔형 해커 등 매 작품마다 천차만별의 연기 변신을 꾀한 바다. 하지만 드라마 ‘내일도 칸타빌레’(2014)로 과한 연기변신을 지적 받기도 했다. 아직 충분히 젊은 나이이고 조급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단기간에 스펙트럼 확장 욕심을 부린 역효과였던 셈. 그 무렵부터 심은경은 깊은 고뇌에 빠졌다. 그리고 머지않은 시기에 ‘특별시민’과 최민식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그의 작품 중 하나인 ‘걷기왕’의 철학을 연기에 실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연기를 잘 하는 배우로 보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작년에 힘든 시기에서 ‘특별시민’을 촬영하게 됐을 때는 이 작품을 ‘반등’의 기회로도 생각했던 게 사실이에요. 그런데 이제는 그게 아무것도 의미 없다고 느껴지더라고요. 물론 ‘연기 잘하는 배우’로 불리면 좋지만, 그것보다 내가 하고 싶은 작품이 뭔지, 본질을 따라가는 게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매 작품마다 물론 최선을 다 해서 연기하는 게 중요하지만, 진정으로 즐길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데뷔 초에는 연기를 즐기는 순간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그걸 즐기지 못하고 있더라고요. ‘왜 내가 좋아하는 걸 즐기지 못하고 모순되어있는 걸까’ 고민했죠. 지금도 물론 의식은 되는데, 그걸 제가 어떻게 넘겨들을 수 있는지에 대한 자세가 중요하겠더라고요. 이제는 최고가 되고 잘한다는 말을 들으려하기보다 재미있게 일 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관객 분들도 제 연기를 즐겨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최고’만이 중요하지 않게 됐어요.”

배우 심은경 /사진=쇼박스

/서경스타 한해선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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