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밖에 모르던 남편 미워.. 선생 그림을 땔감으로 썼죠"

김윤덕 기자 입력 2017. 4. 25. 03:02 수정 2017. 4. 25.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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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 그리는 화가' 박고석 아내 김순자]
"외국서 온 사람처럼 물정 모르고 살림 어려운데 동료 화가만 챙겨
10장 그리면 9장은 찢던 사람.. 평생 그린 게 300점도 안되네요"
현대화랑서 탄생 100주년 특별전

"이중섭 선생이 전쟁 때 부산 저희 집에 와 계셨어요. 추워도 땔감이 없어 불을 못 때는데, 박(고석) 선생이 '양심 있는 인간이면 중섭이 방에 연기라도 내보라우' 하며 버럭 화를 내요. 형편도 모르고 화부터 내는 남편이 미워 이 선생 먹다 버린 땅콩껍질, 가족에게 쓰다 구긴 편지, 은박지 그림들을 쓸어모아 아궁이에 넣고 불을 지폈지요. 그림까지 태우는 건 아니었는데, 지금도 그게 늘 죄스러워요."

화가 박고석(1917~2002)의 아내 김순자(89)는 남편을 "몽골에서 온 손님"이라고 했다. 살림 쪼들리는 줄 모르고 동료 화가들만 챙기니, "태생은 평양인데 먼 나라에서 온 사람마냥 물정 모르는 남자"였다는 뜻이다. "장욱진, 한묵, 이중섭 선생까지 다 모이면 남편이 '술 받아오라우!' 해요. 외상값이 많아 겨우 사정해서 노란 알루미늄 주전자에 막걸리를 받아오면 내 고무신에 술을 따라서는 취하도록 마셨지요. 오드리 헵번 타령들을 하면서요. 얼마나 약이 오르는지. 지금 생각하면 별세계에서 살았던가 싶어요(웃음)."

강운구가 찍은 박고석 사진 앞에 김순자 여사가 서 있다. 오른쪽 사진은 이중섭 1주기(1957년)에 모인 시인 고은(당시 승려), 소설가 박경리, 화가 박고석. /현대화랑

열한 살 어린 아내를 고생만 시키다 떠난 박고석 화가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서울 사간동 현대화랑에서 특별전이 열린다. 미술평론가 오광수, 서성록이 기획하고 현대·샘터·가람·부산공간 화랑이 합심해 뿔뿔이 흩어져 있는 작품들을 한데 모았다. "10장 그리면 9장은 찢어버리던 사람이라 평생 그린 유화가 300점이 안 돼요. 산다는 사람 많으니 그림 좀 그려달래도 들은 척 안 하던 화가가 야속할 텐데도 이토록 귀한 전시 열어주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이번 전시엔 박고석이 피란 시절 그린 걸작 '범일동 풍경'(1951)을 비롯해 1950~90년대 그린 40여 점의 유화와 수채화, 드로잉을 선보인다. '범일동 풍경'은 1952년 부산 휘가로다방에서 열린 박고석 첫 개인전에 걸린 작품. 아련히 그림을 바라보던 김순자씨가 "제가 이중섭 선생의 유골도 먹어본 사람"이라며 웃었다. "선생님 떠나 보낸 날 남편이 약봉지로 싼 물건을 주면서 '잘 두라우!' 해요. 이튿날 궁금해서 열어보니 허연 가루인데, 찍어서 먹어보니 물감도 아니고 약도 아니에요. 그러고 1주기 되던 날 남편이 그 약봉지를 찾길래 대체 뭐냐고 물으니 '그거, 중섭이야' 그래요. 화장한 유골의 일부였던 거지. 기절초풍할 일인데 이상하게도 아무렇지 않아요. 제가 이 선생을 귀찮아하면서도 좋아했었나 봐요."

박고석이 1982년에 그린 ‘쌍계사 길’. 벚꽃 화사한 그림에 아내 김순자씨는 “누가 산에 가자고 부르면 제사 지내다 말고 뛰어나갈 만큼 산을 좋아하던 양반”이라며 웃었다. 이번 전시에는 산 그림을 비롯해 ‘소’ ‘장마 뒤’ 등 1960년대 추상작품도 선보인다. 100주년을 맞아 작품 200점이 수록된 화집도 출간됐다. /현대화랑

박고석이 '산을 그리는 화가'로 불린 건 1967년 '구상전(具象展)'을 창립하고서다. 아카데미즘과 전위운동뿐인 당시 화단에 새로운 구상운동을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한 그는 추상화풍에서 벗어나 산, 항구, 자연을 모티프로 삼은 구상에 매진했다. 도봉산, 설악산, 백암산 등 힘이 넘치는 필치와 강렬한 색채로 묘사한 박고석의 명산(名山)들은 폭설에 조난하고 바위에서 떨어져 척추를 다치는 사고를 겪으면서 완성한 것들이다. 오광수 뮤지엄 산 관장은 "산을 그리는 사람은 많지만 박고석만큼 산이 사람이 되고 사람이 산이 되는 경지는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서성록 안동대 교수는 "10호 남짓한 캔버스에 웅혼한 자연의 자태를 담아내는 솜씨에 그저 놀라울 뿐"이라고 했다.

건축가 김수근의 누나로, 이화여대를 나오고도 그림 그리는 남편을 위해 도시락 장사도 마다하지 않던 아내 김순자는 "생애 가장 행복했던 날도 산에서 살던 때"라고 했다. "남편 말년에 설악산 들어가 2년 살았어요. 평생 살면서도 손님이지 내 남편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는데 그땐 정말 행복했어요. 온전히 내 사람이었으니까요." 5월 23일까지. (02)2287-3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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