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접근법, 정부 주도 틀 못 벗었다
문, 전기차 포함 분야별 육성책 제시
홍, 창업 활성화 특별법 제정 약속
안, 학제 개편 통한 인재 양성에 초점
유, 벤처 지원안 빼곤 공약 가장 부실
심, 사람 중심 과학기술 정책 내세워
‘컴퓨터나 인터넷의 등장과는 차원이 다른 기술이 산업계에 일으킬 혁명적 변화.’
2016년 1월 세계경제포럼(WEF, 다보스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을 주창한 클라우스 슈바프 WEF 회장이 내린 정의다. 슈바프 회장은 이후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가 대화하는 방식, 물건을 만들고 사고파는 방식, 공간을 이동하는 패턴까지 통째로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속도나 변화의 폭, 파급력 등 여러 면에서 이전과는 차이가 클 것이란 의미다. 대선 후보들도 4차 산업혁명을 향해 빠르게 뛰는 세계의 움직임을 짚어냈다. 예외 없이 10대 공약에 4차 산업혁명이란 키워드를 포함했다.
이젬마 경희대 국제학부 교수의 일침이다. 한국경제학회와 중앙일보가 유권자의 선택을 돕기 위해 마련한 대선후보 경제공약 심층 분석 시리즈의 세 번째 주제는 ‘4차 산업혁명’이다. 경제학회 평가팀은 주요 대선 후보의 4차 산업혁명 관련 공약을 분석했다. 대표 집필을 맡은 이 교수는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는데 접근법은 정부가 주도하는 20세기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후보들이 공통적으로 내세운 중소기업청의 중소기업부 승격, (불가능한 행위만 나열하는) 네거티브 규제로의 전환 등을 꼬집은 것이다. 중소기업 주도의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공약도 마찬가지다. 이 교수는 “박근혜 정부의 창업 지원 정책과 별로 다를 바가 없고, 인프라 구축과 외형적 확장은 이미 상당부분 진행됐다”며 “핵심은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기술 중소기업을 양성할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라고 말했다.
후보들이 4차 산업혁명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 교수는 “1차~3차 산업혁명의 특징이 경제 성장에 따른 고용 확대라면 4차 산업혁명은 필연적으로 일자리의 파괴와 이동을 수반한다”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어떤 일자리가 생성·소멸되고, 일하는 방식과 고용관계가 어떻게 바뀔지, 이에 따라 교육 방식이나 사회안전망, 관련 제도는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 등에 관한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누가 당선되더라도 세 가지를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첫째는 백화점식 정책 열거가 아닌 일관성 있는 실행 계획 수립이다. 둘째는 인위적 조직 개편이 아닌 부처 간 유기적 협력 체계 구축이다. 마지막은 실현 가능한 자금 조달방안 마련이다. 이 교수는 “자본시장을 활용해 민간의 여유 재원을 모험자본으로 끌어들일 구체적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음은 주요 대선후보 5명의 공약에 대한 한국경제학회의 평가 및 분석이다.
혁신적 4차 산업혁명 생태계 구축을 10대 공약 1순위에 배치했다. 그만큼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주요 후보 중 유일하게 4차 산업혁명과 일자리 문제를 직접 연결시켰다. 일반 국민과의 거리를 좁히고, 현실성 있는 정책수립에 주력하겠다는 인상을 준다. 전기차·사물인터넷·신재생에너지 등 분야별 육성책을 언급한 것도 눈에 띈다. 정부가 혁신 창업기업을 적극 지원한다는 공약도 상대적으로 구체적이다.
재원 조달방안은 재정지출 개혁과 세입 확대라는 비교적 현실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재정의 역할만 강조하는 건 문제다. 금융시장과의 연계 방안을 함께 보여주는 게 맞다. 컨트롤타워로서 대통령직속 ‘4차 산업혁명위원회’를 설치를 약속했다. 이를 통해 민·관 협업체계를 구축해 4차 산업혁명 속도를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민간 주도 생태계로 자연스럽게 전환시킬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특화된 교육정책이나 산업 구조조정에 따른 재교육 방안도 없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4차 산업 육성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약속했다. 동시에 이를 추진할 효율적인 정부를 실현한다는 전략이다. 과학·정보통신 분야와 재정·경제 분야를 아울렀고,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와 중소기업과 창업 활성화를 연결해 전반적인 비전을 제시한 점은 눈에 띈다.
하지만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지향한다면서 미래전략위원회, 청년고용촉진위원회 등 대통령직속 위원회 설치를 내세우고 있다. 중소기업부를 신설하고, 미래창조과학부를 개편해 정보과학부기술부를 만든다는 구상도 담겼다. 심지어 여성가족청년부 신설, 국가보훈처 장관급 격상, 해양경찰청 부활 등도 포함됐다. 이런 수많은 조직개편이 정부의 효율성, 4차 산업혁명 추진체계 구축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의문이다.
차라리 4차 산업혁명 대응을 위한 정부 조직 개편에 이스라엘 요즈마펀드나 실리콘밸리의 실리콘뱅크처럼 혁신 기업을 선별할 역량을 가진 수준 높은 정책금융기관 육성 방안을 담았어야 했다. 정부와 공기업을 중심으로 5년 간 20조원 규모의 창업투자펀드를 조성하겠다는 내용에선 관(官)이 주도한 현 정부의 창조경제가 연상된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안철수 후보의 4차 산업혁명 대응은 교육개혁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학제 개편으로 4차 산업혁명 대비 창의 인재를 양성한다는 포부와 함께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린다는 큰 그림을 보여줬다는 점이 돋보인다. 정부 주도의 국가발전 패러다임을 벗어나 민간의 과학기술 혁명 및 창업 혁명으로 미래형 창업국가를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집중양성산업 지정, 과학기술인력 양성, 물류허브 인프라 구축, 맞춤형 금융정책 등 종합적 대책을 망라했다. 하지만 민간 주도라는 안 후보의 주장과 달리 구체적 내용은 모두 정부 주도형이다. 또 R&D 자금지원 계획을 제외하고 사업의 재원을 민간에서 조달한다는 구상인데 이는 정책 이행과 자금조달 주체의 모순이다. 위험이 큰 신산업에 수요와 공급에 입각한 자금 조달이 가능할 것이란 기대는 막연해 보이고, 그 실현 가능성에도 의구심이 든다. 관련 공약의 실천 계획을 대부분 ‘관련 법령 제·개정’으로 일관하고 있는데 국회에서 국민의당의 위치를 감안하면 공감이 쉽지 않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다섯 후보 중 관련 공약이 가장 적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어 갈 인재 양성’이란 내용을 빼면 10대 공약에서 ‘4차 산업혁명’ 키워드를 찾아보기조차 힘들다. 기존의 금융 지원을 ‘융자’에서 ‘투자’로 전환해 창업 환경을 조성하고, 벤처투자를 활성화하는 방안 등이 담겨 있지만 박근혜정부가 추진한 ‘창조경제 활성화 방안’과 뭐가 다른지 가늠하기 어렵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
사람 중심의 과학기술 정책 혁신으로 요약된다. 공약 전반에 걸쳐 R&D 활성화와 연구자 근로환경을 개선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창조경제센터를 중기지원센터에 통합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를 무조건 지우는 게 아니라 그 인프라를 활용하겠다는 것이어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출연연구기관 출연금의 포괄예산 전환, 연구인력 임금 피크제 취소 및 정년 65세 환원, 상설 연구윤리위원회 설치, 비리 처벌규정 강화 등 세부 공약은 4차 산업혁명과의 뚜렷한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4차 산업혁명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기술집약적 창업 및 신기술 중소기업의 포괄적 지원 방안도 없다.
이젬마 경희대 국제학부 교수,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 ‘백화점형’ 문재인, 안철수는? 후보 5인 뇌구조 보니
▶ 安 지지층이 洪으로, 文은···가장 큰 격차 벌어진 세대는
▶ "토론 후 지지후보 바꿨다" 20% 넘어···평가는 유 1위
▶ '절대 안 찍겠다' 비호감도 1위는 홍준표, 2위는?
▶ "文 아들 같은 특혜 '권양숙 친척' 등 10명 더 있다"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롯데, 스펙 안보고 '4차 산업혁명형 인재' 뽑는다
- 성공한 벤처는 죄다 중·미 기업..4차 산업혁명에서 뒤처지는 한국
- [산업연구원 리포트]4차 산업혁명 시대 새로운 일자리 창출 전략
-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4차 산업혁명 M&A 추진"
- 한국노동경제학회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청년일자리 정책' 토론회 개최
- "오빠폰에 몰카" 與의원실 비서 여동생이 신고
- 김환기에 이우환까지···300억 경매 나온다
- 은지원, 제주 카페서 6명 모임 논란···"반성"
- '슬의생'이 '슬의생' 했나···장기기증 등록 11배로
- 26살 아이콘 바비 다음달 아빠 된다,깜짝 결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