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0주년 특집] '방송 작가' 조인화가 바라본 스타크래프트 17년

2017. 4. 25.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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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구성원은 선수와 관중, 그리고 시청자다. 선수들의 한계를 넘는 플레이를 관중과 시청자에게 전하기 위한 방송을 만들기 위해 캐스터와 해설, 스탭들이 무대 앞뒤에서 활약하고 있다.

방송 작가 역시 무대 뒤에서 활약하는 스탭 중 한 명이다. 방송 작가는 '작가'라는 이름과는 다르게 방송 모든 분야에서 활약한다. 제작 회의부터 무대 구성, 방송 코너 제목에 VCR 영상 재생 순서 결정, 선수 연락까지 작가는 모든 곳에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한다.

아프리카 TV에서 주최하는 스타크래프트2 리그인 GSL에서 활동하는 조인화 작가는 국내 게임 방송 1호 작가다. 2000년 7월 OGN(구 온게임넷) 개국에 맞춰 입사한 조인화 작가는 박정석과 임요환이 결승에서 대결한 2002 스카이 스타리그, 2003 네오위즈 피망 프로리그 등 e스포츠 초창기부터 작가로 활동했다. 17년 동안 e스포츠와 함께해온 그의 경력은 e스포츠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모스 창간 10주년을 기념에 조인화 작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미디어나 방송을 통해 전면에 드러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그였지만, 이번 인터뷰를 통해 e스포츠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어 볼 수 있었다.

인터뷰에 앞서 소개를 부탁한다.

아프리카 TV에서 진행되는 스타크래프트2 리그인 GSL 작가를 맡고 있는 조인화라고 한다. 2000년 게임 방송 작가를 시작해 17년째 e스포츠, 그리고 스타크래프트와 함께하고 있다.
 

한국 e스포츠 초창기부터 작가 일을 진행한 셈인데, 방송 작가 일은 어떻게 시작했는지.

온게임넷 개국과 함께 게임 방송 작가 일을 시작했다. 2000년 7월 일이다. 그 전에는 iTV(현 OBS)에서 일했고, 지인의 소개로 온게임넷에서 일을 하게 됐다. 당시 박창현 PD가 진행했던 '생방송 게임 콜'이라는 프로그램이었고, 알기로는 내가 게임 방송 첫 작가라고 하더라.

e스포츠 리그 방송 작가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2002 스카이 스타리그 결승이 시작이었다. 예전과 달리 VCR 재생도 많고, 초대 가수도 생겨서 행사가 커지며 이를 전체적으로 구성할 작가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프로리그 역시 2003년 네오위즈 피망 프로리그부터 시작했다.

방송 작가 일을 맡고 있는데, 일반 작가와 어떻게 다른가.

흔히 작가라고 불리는 소설가나 시인과는 완전 다르다. 방송 작가들끼리는 우리 직업을 두고 '잡가' 라고 부른다(웃음). e스포츠 시즌이 시작되면 방송 구성 회의부터 시작해 중계 부스 위치나 전체적인 VCR 재생 순서, 코너 이름 짓기 등의 작업을 하고 시즌 중 전적 자료와 매치 포인트 체크 제공도 한다. 여기에 선수단 관리나 연락도 작가가 하는 일이다. 가끔 VCR 카메라를 잡기도 하고 방송 후 손이 부족하면 의자 치우는 일도 도와준다. 처음 작가 일을 하던 때만 하더라도 다들 담당자가 있던 일이었는데, 어느새 나에게 일이 계속 넘어오더라. 

나는 원래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었고, 교양 프로그램 방송 작가일을 했다. 게임이라고는 보글보글이나 테트리스 정도를 해봤기에 처음 e스포츠 리그를 맡았을 때 "사람들이 왜 이걸 볼까?"하는 의문도 들었다. 하지만 2002 스카이 스타리그 결승전에 임요환과 박정석을 보기 위해 방문한 2만여 명의 관중을 보자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내 전공은 연극영화다. 시나리오를 쓰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싶었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e스포츠에는 감동이 있더라. 드라마나 영화 못지않은 짜릿함에 e스포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결국 e스포츠 리그 방송 작가만 15년 넘게 맡고 있다.
 

정말 오랜 시간 e스포츠 리그를 담당하며 많은 일이 있었을 거 같다. 방송 작가를 하며 가장 감동받은 일이 있다면.

많은 일이 있었던 만큼 감동을 받는 일도 많다. 특히 밀리던 선수들이 극적으로 이겼을 때 그런 기분을 느끼는데 최근에는 GSL 시즌1 8강에서 어윤수가 전태양을, 김대엽이 이신형을 역스윕한 경기를 보고 감동받았다.

특히 어윤수가 준우승을 반복하며 내가 어윤수의 얼굴을 보지 못할 거 같은 상황에서도 먼저 고생했다고 톡을 보내더라. 상대 기분을 헤아리지 못하고 먼저 메시지를 보내면 실례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먼저 자기가 고생했다고 이야기를 해준 걸 보고도 마음이 찡하면서 감동받았다. 준우승을 네 번 연속으로 하고도 주저앉지 않고 다시 결승에 오르는 모습을 본 모두 감동받지 않았을 수 있을까.

GSL이 곰TV에서 아프리카로 넘어갈 당시에도 오히려 현장을 찾은 팬들이 위로해준 일도 기억난다. 오래 일을 하다보니 오히려 사소한 것에 감동받게 되더라.

e스포츠 방송 작가 일을 하며 많은 선수를 만났을 거 같은데, 기억에 남는 선수가 있는지.

다들 착하고 성격이 나쁜 선수는 얼마 없다. 오래 본 선수라면 역시 전태양인데, 위메이드 창단식에서 당시 김양중 감독이 처음 보여준 게 12년 전이었다. (전)태양이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착하다. 사람이 성장하고 좋은 성적을 내면 바뀔 수도 있는데 태양이를 비롯한 선수들은 그렇지 않더라. 친하기는 강도경이나 박정석, 김동수, 박성준 같은 선수들이다. 이제 자주 보긴 힘든데, 그래도 가끔 보면 반갑다. 17년 가까이 이 일만 한 원동력이 바로 선수들이다.
 

방송 스태프들이나 캐스터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을 거 같다.

가장 재미있는 피디는 위영광이었다. 처음 스타리그를 할 때 같이 일을 했는데, 평소에 술을 마시거나 하면 바보 같은 면이 보였지만 방송에만 들어가면 차갑고 냉철한 모습을 보였다. 가부가 확실했고, 필요한 상황에서는 깊은 생각을 하기도 했다. 착하고 순수하기로는 김진환 피디가 최고였고, 까다롭기는 박창현 피디가 생각난다. 자막 폰트 하나까지 세세하게 지적해서 스탭들이 괴로워할 정도였다(웃음). 2015년 롤 캐스파 컵에서 같이 일했던 김하늘 피디도 디테일하고 세심한 편이다. 안성국 피디도 같이 일하면서 재미있었다. 지금 같이 일하는 김미정 피디는 5년 전 OGN에서 만나서 지금 같이 일하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화를 잘 안낸다. 감정 콘트롤을 정말 잘한다.

이외에도 기억나는 사람이라면 채정원 본부장이다. 말도 잘하고 게임도 잘해서 내가 들어간 프로에서는 어떤 자리든지 불러서 출연시켰다. '조작가 전용 MC' 라고 별명도 붙였는데, 이제는 본부장이 되어 그때와는 입장이 완전히 바뀌었다. 자리가 바뀌었어도 권위적이지 않고 자유로운 모습이 여전한 게 신기하다. 

선수들이 같은 일을 장기간 하는 원동력이었다고 했는데, 선수 때문에 슬펐던 일도 있다고 들었다.

이 일을 하면서 항상 좋은 일만 보고 웃을 일만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일이 두 번이나 있었다. 둘 다 승부조작 사건이었다. 첫 번째 사건 때는 정말 충격을 많이 받았다면, 두 번째 사건 때는 일주일 동안이나 화가 났다가 슬펐다가 아무 생각이 없다가 우는 것을 반복했다. 데뷔 때부터 본 선수고 해외에 나가면 내가 챙기고 다녔던 선수가 그런 일에 휘말렸다는 게 이해가지 않았다. 한 달 정도는 제대로 일도 못 했다.

작년 프로리그가 종료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우울했다. 이대로 스타크래프트2가 사라지는 건 아닐까 하는 조바심에 올해 첫 시즌은 의욕이 사라진 상태에서 일을 시작했다. 선수들의 전략 수립이나 연습을 도와줄 사람도 없고, 또다시 나쁜 손길이 선수들에게 뻗칠 거 같은 걱정도 들었다. 

하지만 선수들은 예전보다 더 열심히 하더라. 방송 인터뷰에서도 예전보다 더한 열정을 보였다. 그리고 예전보다 더 멋진 경기들이 나왔다. 그런 모습을 보니 내가 부끄러워졌다. 당사자인 선수들은 열심히 경기하는데 왜 나는 포기하려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요즘에는 다시 행복하게 열심히 일하고 있다.

같이 방송을 하는 문규리 아나운서는 물론이고, 다른 방송사에서 활동하는 이현경 아나운서도 본인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방송 작가 일을 하다 보면 PD나 중계진보다 아나운서들과 이야기할 일이 더 많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를 할 기회도 많고, 친해지기도 쉽다. 문규리와 이현경 아나운서 둘다 방송을 잘하고 예쁘고 일에 대한 열정도 대단한데,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둘 다 선수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엄청나서, 사석에서 이야기하면 경기나 선수 이야기만 한다. 둘과 동시에 만난 적은 없지만 통화를 시켜준 적은 있다. (이)현경이와 있는 자리에서 (문)규리에게 전화를 해서 통화를 시켜줬는데, 현경이가 남자랑 통화할 때보다 더 떨렸다고 하더라.
 

e스포츠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이쪽 분야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e스포츠 리그 방송 작가를 꿈꾸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해줄 조언이 있다면.

일반적인 작가라면 방송이 돌아가는 매커니즘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한다. 짧은 다큐를  찍더라도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끝나는지 같은 지식들이 중요하다. 하지만 게임 방송 쪽에는 게임을 좋아하고 꼼꼼한 성격에 열정적이고 대회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다면 도전해볼 만한 일이다.

물론 아이디어도 많아야 하고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좋아야 한다. 피디와 출연자의 중간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방송 제작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감독이나 선수들에게 잘 설명해서 설득해야 하고, 선수나 감독의 요구사항도 잘 전달해야 하는 게 작가의 일이다. 선수들에게 맵 순서나 도착 시간이나 대회 진행 방식도 다시 한번 상기시켜줘야 하기에 일에 정말 꼼꼼한 사람이어야 한다. 말하다 보니 조건이 까다로운 거 같다.

인터뷰를 마치며 독자들과 e스포츠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e스포츠 팬들이라기보다 내가 일하는 GSL을 찾아주는 팬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경기장에 올 때마다 인사도 먼저 해주고 이것저것 잘 챙겨줘서 스탭과 관중 사이라기보다 같은 스타크래프트2 팬이라고 느껴진다. 최고의 경기를 펼쳐주는 선수와 그런 선수를 응원하는 팬들 덕분에 나 같은 사람도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선수들에게 응원 많이 해주셨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스타크래프트2 팬들과 스타크래프트 팬들이 그만 싸웠으면 좋겠다(웃음).

박상진 기자 Vallen@fom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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