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세계는 지금] 진퇴양난 빠진 트럼프의 '미국판 만리장성'

이상혁 2017. 4. 24. 20:57
음성재생 설정

이동통신망에서 음성 재생시
별도의 데이터 요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멕시코 국경장벽' 34조원 예산 확보 핵심 쟁점 / 3200km 중 고작 11km 건설비만 마련 / 멕시코에 청구하겠다더니 예산 책정 / 민주 "셧다운 불사".. 공화 속내 복잡 / 일부州 참여기업들 블랙리스트 법안 / 대형사 불참.. 중기는 수행능력 의문 / 사유지인 건설부지 소송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미국·멕시코 국경장벽’ 구상의 현실화가 임박해지고 있다. 미 연방 세관국경보호국(USCBP)이 최근 국경장벽 건설을 위한 정부계약 입찰을 마감하고 최종 입찰업체 20여 곳을 오는 6월1일 발표한다.

국경장벽 건설은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5.5∼9 높이의 장벽을 쌓아 히스패닉(스페인어를 쓰는 중남미계 이주민) 불법 입국을 봉쇄해 미국 국민 일자리를 보호하고 치안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도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은 서쪽 태평양 해안에서 동쪽 멕시코만에 이르기까지 무려 3200㎞로, 서울과 부산을 4번 왕복하는 거리다. 이 가운데 약 1049㎞에는 이미 철제 울타리가 설치돼 있으며, 나머지에 콘크리트로 신규 장벽을 건설하겠다는 목표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이후 보인 일련의 예측 불가능한 행태를 보면 ‘현대판 만리장성’ 건설은 허풍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의 야심 찬 구상은 현실적으로 진퇴양난의 처지에 빠져 있다. 불도저식으로 그저 밀어붙이기에는 넘어야 할 고개가 너무나 많다.

장벽 설치를 시행할 건설사들의 입찰이 마무리되고 일부 시험용 장벽 설치가 진행되고는 있다. 결국 돈이 문제다. 국경장벽 설치에 필요한 총 예산 규모는 300억달러(약 34조원)에 달하지만 현재 미국 정부가 마련한 건설자금은 고작 2009만달러(약 228억원)에 불과하다. 이 돈으로는 전체 국경 가운데 11㎞를 설치하면 딱 맞는다. 트럼프 행정부는 내년 예산안에 국경장벽 설치자금 예산을 책정하고 있지만 야당인 민주당이 ‘결사 반대’를 고집하고 있는 터라 갈 길이 멀다.

불법이민자들을 막고 미국 국민의 일자리를 보호하겠다며 건설을 공약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멕시코 국경장벽 프로젝트가 야당과 일부 여당의 거센 반대와 자금 부족, 건설사 참여 열기 저조 등으로 첫 삽을 뜰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론이 점차 커지고 있다.
산 이시드로=AFP연합뉴스
◆심상치 않은 예산 불안… 여당도 흔들린다

야당인 민주당 의원들과 여당인 공화당 일부 의원 등은 국경 전체에 장벽을 세우는 것은 낭비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 운동 기간 내내 멕시코 정부에게 비용을 물리겠다고 장담하고는 이제 와서 미국 납세자의 돈을 끌어다 쓰려 한다고 비난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자신의 최대 대선공약의 하나인 멕시코 접경지역의 거대 장벽설치 비용을 결국 멕시코가 부담할 것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민주당은 장벽이 마약과 매우 나쁜 ‘MS-13’(미국에서 활동 중인 엘살바도르 갱단)을 막는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국경장벽 설치에예산이 사용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그러나 우리가 먼저 매우 필요한 국경장벽 비용에 대한 예산 투입을 시작할 수 있고 멕시코가 어떤 형태로는 추후 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경장벽 비용에 미 예산을 먼저 투입한 뒤 추후 멕시코 측으로부터 다양한 형태로 받아내겠다는 게 그의 구상이다

연방정부의 ‘셧다운’(부분업무정지)을 우려하는 공화당 의원들이 2018회계연도 연방정부 예산안에 국경장벽 건설 예산을 반영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에 부담을 느끼면서 내부 결속력이 흐트러질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민주당의 국경장벽 건설 반대 의지는 ‘초강력’하다. 2018회계연도 예산안에 국경장벽 건설 자금이 포함되는 어떠한 법안도 거부하겠다는 입장이다. 공화당이 관련 법안을 밀어붙일 경우 다른 예산안을 저지해 사실상 셧다운을 불사하겠다는 게 민주당의 구상이다.

트럼프 정부는 2018회계연도 예산안을 통해 국경장벽 건설을 위한 자금으로 내년도에 1차분으로 41억달러(약 4조6000억원)를 의회에 요청했다. 같은 편이어야 할 공화당의 반응도 일단 호의적이지 않다. 국경장벽 건설 자금이 걸림돌이 돼 2018회계연도 예산안 처리가 지장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게 공화당의 판단이다. 공화당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는 방안으로 연방정부 예산안과 국경장벽 건설 자금의 처리를 분리하는 방안도 거론하고 있다. 다만 이럴 경우 예산안과 분리된 국경장벽 건설 자금이 과연 처리될 수 있을지, 더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이 염두에 둔 규모의 자금이 확보될 수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그의 야심 찬 구상이 포함된 중요한 입법이 후퇴하게 된다면 향후 대통령직 수행에 큰 타격을 볼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결국, 의회가 트럼프 대통령이 신청한 국경장벽 예산을 얼마나 빨리 통과시켜 줄지, 통과시켜주더라도 얼마의 예산을 승인할지는 현재로서는 예상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대형 건설업체들 입찰 불참… 후환이 두렵다

국경장벽이 제대로 건설되려면 예산만큼 중요한 게 기술력이다. 벽만 쌓는 데 무슨 엄청난 기술력이 필요하겠냐 싶지만 국경장벽 건설은 생각 이상으로 거대하고 복잡한 프로젝트이다.

문제는 정부 계약 입찰에 대형 건설·엔지니어링 기업 대부분이 불참했다는 점이다. 마감된 제안서 접수에는 미국 내 최고 건설사 20여곳 가운데 단 3곳만 입찰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거대 건설사인 벡텔, 플루어, 터너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들은 연방정부 계약의 3대 수주처이자 국경장벽 같은 거대하고 복잡한 프로젝트를 수행할 만큼 풍부한 자원과 경험을 지닌 기업들이다.

벡텔은 국경장벽 건설에 관심이 없다고 했으며, 플루어는 “회사의 구체적인 계약을 공개적으로 논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터너는 경기장과 공항 건설 등 다른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이들이 ‘정치적인 후환’을 두려워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캘리포니아주와 뉴욕주에서는 국경장벽 건설에 참여한 기업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리는 법안이 발의됐다. 미국 건설·엔지니어링기업협회 측은 이 법이 통과될 경우 기업들이 해당 지역에서 수억달러의 잠재적 거래 수익을 잃을 것으로 내다봤다. 건설사 관계자는 “국경장벽 건설 프로젝트는 정치적 측면부터 자금 지원까지 많은 장애물을 안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들이 입찰에 불참하면서 국경장벽 건설은 중소기업들에 맡겨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중소기업들은 자신들이 이런 대규모 프로젝트를 완수할 능력이 있을지에 스스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10년 전 금융위기 이후로 주택경기가 나빠져 수많은 숙련 건설노동자들이 떠나버렸기 때문에 유능한 인력을 구하기 어렵다. 기업들은 필요한 인력을 구하기 위해서는 인건비를 더 올릴 수밖에 없는 부담을 안게 된다.

국경장벽 건설 부지와 관련한 갈등도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경장벽 건설을 완수하려면 미국인 수천명의 사유지를 압수해야 하는데, 이 경우 소송 규모는 천문학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 사업의 목적으로 토지수용을 하는 과정에서 민간인 지주들과 대결을 벌이야 하는 게 절대 만만한 게임이 아니다. 트럼프 정부는 최근 토지매입 문제를 해결할 변호사 20여명을 고용하는 특별 예산을 신청하기도 했다.

◆까다로운 조건에도 아이디어는 쏟아진다

실현 가능성에 의문도 제기되지만 국경장벽 건설 입찰 기업들의 갖가지 아이디어는 눈길을 끈다. 국경장벽에 태양열 집열판을 설치해 전기를 생산하는가 하면 장벽 폭을 넓혀서 관광객들이 사막을 구경하는 전망대로 활용할 것을 제안하는 등 전통적인 건설설계 외에도 여러 가지 새로운 발상이 나오고 있다. 특수 에나멜로 광택을 낸 장벽에 각종 돌과 인공재료 장식으로 국경장벽을 구간별로 치장하는 안도 있고 장벽 전체를 미술 작품으로 만드는 계획도 있다.

정부 규정상 장벽의 높이는 5.5∼9m, 보행자와 차량 통과용 자동 게이트 설치, 땅속으로 깊이 18m, 어떤 공구로도 깨뜨릴 수 없는 3m 이상 두께의 벽을 요구한다. 미국 쪽 벽면은 색깔도 미학적 만족감을 주도록 설계하라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주문이다.

입찰사는 지난 5년간 2500만달러(약 284억원) 이상의 국경안전시설이나 그와 비슷한 다른 시설의 건설 실적이 있어야 한다. 국경장벽 건설 입찰사는 20만~50만달러(약 2억3000만∼5억7000만원)를 들여 설계 모델의 원형을 제작해야 한다. 이 원형 모델은 샌디에이고의 국경 부근 연방 공유지에 길이 37m로 세워야 한다.

이상혁 선임기자 next@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