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플러스] 기득권에 등 돌린 佛 유권자.. 60년 양당구도 뒤집다

정재영 2017. 4. 24.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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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7일 결선 투표 / 불확실성 해소.. 유로화 가치 최고 / "극과 극 대결 피했다" EU 안도 /"당장 투표 땐 마크롱 지지" 62%.. 안보 이슈에 르펜 호기 관측도 / 기성 정치에 국민들 불신 팽배.. 사회·공화 벌써 6월 총선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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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현지시간) 치러진 프랑스 대선 1차 투표 결과가 나오자 유로화 가치는 2%가량 급등하고, 안전자산인 금값은 내렸다. 프랑스의 유럽연합(EU) 탈퇴(프렉시트)를 주창한 극좌 정당 후보가 결선 진출에 실패하면서 불확실성이 일부 걷혔다는 평가다. 2주 후 결선 투표에서도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후보보다 새로운 중도를 표방한 ‘앙 마르슈’의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가 압승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프랑스 언론은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기성 정치에 대한 심판은 계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마크롱 60%대 득표율로 압승”

프랑스 내무부는 1차 투표에서 1·2위를 기록한 마크롱, 르펜 후보가 결선에 진출했다고 24일 밝혔다. 프랑스 언론은 “출구조사와 실제 투표 결과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면서 “극우나 극좌 후보를 뒤에서 몰래 지지한 ‘숨은 표’는 거의 없었다”고 진단했다.

선거 기간 1∼4위 후보 간 격차는 한때 3%포인트가량까지 좁혀졌다. 프렉시트를 주장한 르펜 후보와 급진 좌파인 ‘프랑스 앵수미즈’의 장뤼크 멜랑숑 후보의 동반 결선 진출 시나리오까지 제시됐다. 하지만 AP통신은 출구조사 직후 “프렉시트를 우려하던 유럽인들이 한시름 놨다”고 보도했다. 1차 투표 직후 유로화 대비 달러 환율은 1.95% 오른 1.0937달러로 약 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금값은 아시아장에서 최대 1.5% 하락했다.

환호하는 마크롱 지지자 프랑스 중도신당 ‘앙 마르슈’의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 지지자들이 23일(현지시간) 대선 1차 투표 후 출구조사에서 마크롱 후보가 1위로 결선에 진출할 것이라는 결과가 발표되자 환호하고 있다.
파리=AFP연합뉴스
프랑스는 이미 다음달 7일 대선 결선투표에서 누가 승리할지를 두고 논쟁 중이다. 다자 대결인 1차 투표와 달린 양자 대결인 결선투표에서는 모두 마크롱 후보의 압승을 내다보고 있다. 르펜 후보의 승리를 ‘이변’으로 여기는 상황이다.

두 후보는 2주간 EU 잔류 문제, 개방과 폐쇄, 자유무역과 보호무역, 문화적 다원주의와 프랑스 우선주의 등에 대해 상반된 견해로 맞붙게 됐다.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싫어하는 프랑스 국민성과 EU 잔류 여론이 강한 점 등은 마크롱 후보에게 유리하다. 반면 정치 혐오로 투표율이 매년 하락하는 상황에서 핵심 지지층이 훨씬 견고하고, 최근 총격 테러로 안보 이슈가 부각한 점은 르펜 후보에게 호기가 될 수 있다는 평가다.

두 손 번쩍 든 르펜 지지자 23일(현지시간) 치러진 프랑스 대통령 선거 1차 투표에서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후보가 결선 진출을 확정짓자 당 본부가 있는 헤닌 보몽에서 지지자들이 기뻐하고 있다.
에넹 보몽=EPA연합뉴스
◆“기성 정치 심판… 양당 체제 붕괴”

이번 대선에서 기성 양대 정당(현재 사회당과 공화당)이 결선투표 진출자를 내지 못한 데 대해 프랑스 언론은 “기성 정치 불신이 반영된 결과”라고 평가한다. 중도좌파 사회당과 중도우파 공화당으로 양분됐던 전통적인 프랑스 정치도 대변혁을 예고하고 있다.

마크롱 후보도 출구조사 발표 직후 “우리는 1년 만에 프랑스 정치의 얼굴을 바꿨다”며 “프랑스와 유럽의 희망의 목소리가 되겠다”고 강조했다. 르펜 후보도 집회에서 “이번 투표 결과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우리가 첫걸음을 내디뎠다”며 프랑스 국민을 해방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회당과 공화당은 6월 총선에서 제1당과 2당 자리를 지켜내야 하는 난제를 안게 됐다. AFP통신은 결선 진출에 실패한 프랑수아 피용(공화당) 후보와 브누아 아몽(사회당) 후보가 마크롱 후보를 지지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소개했다. 당장 민심을 잃었지만 극우세력 집권만은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 에마뉘엘 마크롱은… 親기업·중도… ‘젊은 피의 돌풍’

중도신당 ‘앙 마르슈’의 에마뉘엘 마크롱의 프랑스 대선 1차 투표 승리는 프랑스 정치사에서 ‘사건’이라고 할 만하다. 선거에 나간 경력이 없고, 사회당이나 공화당과 같은 대중 정당에 소속되지 않은 상황에서 40세로는 역사상 처음으로 프랑스 대선 결선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의사 부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프랑스 최고 명문 파리정치대학과 대통령 3명을 배출한 국립행정학교(ENA)를 졸업하는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이후 경제부처에서 금융조사관으로 일하다 로스차일드은행에 입사해 인수합병 전문가로 활동했다. 2012년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정부 출범과 함께 대통령 경제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한 그는 36세에 경제부장관을 맡으며 주목받았다. 기업 친화적인 정책을 주도했던 그는 2016년 좌·우 진영 정치를 뛰어넘는 새로운 정치를 추진하겠다며 ‘전진’이라는 의미의 앙 마르슈를 창당했다.

친기업 정책을 내세우면서도 무슬림 복장 착용을 반대하지 않는 등 사회적으로는 진보에 가까운 그는 경선 기간 내내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더 많은 여성과 시민사회 인사들을 의회에 입성시키겠다고 밝히며 온라인을 통해 사회당보다 많은 당원을 모집하는 등 젊고 자유분방한 이미지로 표심을 흔들었다. 고교 시절 스승인 24세 연상 아내와의 러브스토리도 화제가 됐다. 중도 우파 프랑수아 피용의 부패 추문 등 경쟁 후보의 ‘자책골’ 역시 그의 결선 진출에 도움을 줬다. 마크롱은 정치적 기반이 없어 집권했을 때 약점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국 BBC방송은 “그가 의석 확보에 실패할 경우 의회 협상력이 강해져 대통령보다 총리 권한이 커질 수 있다”고 전했다.

◆마린 르펜은… 反EU·극우… ‘프랑스의 트럼프’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은 이번 대선에 나선 정치인 중 극우 성향이 가장 강한 인물로 꼽히지만 선거운동 기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항상 결선 진출 1순위로 꼽히는 등 탄탄한 대중적 기반을 자랑했다.
그는 아버지 장 마리 르펜을 통해 정치에 입문했지만 아버지와 결별하면서 정치적으로 도약한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1968년 뇌이쉬르센에서 태어난 르펜은 파리2대학을 졸업한 뒤 형법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6년간 변호사로 활동하다 1986년 FN에 가입하며 정계에 입문했다. 1998년 국회의원 당선, 2004년 유럽의회 의원 등으로 정치 경력을 쌓은 그는 2011년 1월부터 FN의 대표를 맡았다. 이후 2002년 결선에 진출하기도 했던 아버지와 정치적으로 결별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장 마리 르펜은 나치의 유대인 집단학살 당시 가스실을 인정하지 않고 공공연하게 인종차별 발언을 하는 등 문제를 일으켰다. 2015년 8월 르펜은 아버지에 대해 출당조치를 내린 뒤 한 마디도 나누지 않을 정도로 철저하게 선을 그었다. 

그는 대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처럼 경제적 박탈감에 빠진 서민을 공략했고, 안보 불안을 느끼는 유권자를 사로잡기 위해 반(反)이민 정책을 전면에 내세웠다. 실제 그는 경선 기간 내내 유럽연합(EU) 때문에 프랑스의 경제와 안보가 약해졌다고 주장했고, 파리가 아니라 쇠락한 공업도시인 에넹-보몽을 찾아 승리 연설을 하는 등 정치·경제 엘리트를 비판했다. 영국 인디펜던트는 “그가 집권할 경우 서류가 없는 이민자는 모두 추방되고, 감옥에 가는 이들이 수만명 늘어나게 될 것”이라며 “프랑스의 EU 탈퇴를 위한 국민투표가 임기 내 진행될 확률이 높다”고 예상했다.

정재영·이희경 기자 sisley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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