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한국인이 범인!..아닌가?" 양치기 일본 언론

이승철 2017. 4. 24.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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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일본에서는 전대미문의 현금 강탈 사건이 발생했다. 금괴 거래를 위해 3억 8천만 엔, 우리돈 40억 원에 가까운 돈을 찾아나오던 29세 회사원에게 2명의 남자가 다가가 안면에 스프레이를 뿌리고 현금이 가득찬 여행용 돈 가방을 들고 달아났다.

현장에는 흰색 승합차가 대기하고 있었고, 범행에 걸린 시간은 불과 수십초. 그리고 아직 일본 경찰은 범인 체포는 고사하고 도주한 차의 행방조차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연일 언론을 장식하고 있는 사건에 한나절 정도 '한국'이 언급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 흐름을 보면, 일본 언론별로 가지고 있는 한국에 대한 인식차를 알 수 있다.

“한국인인가? 3억8400만엔 강탈”…1면 톱

사건 당일인 21일 저녁, 인터넷 속보를 통해 현금 강탈 사건과 관련해 한국인이 체포됐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내용은 이렇다.

(KBS 22일 아침 뉴스 중 일부)
"그리고 사건 몇 시간 뒤
후쿠오카 공항에서 거액의 현금 다발을 가지고 출국하려던
한국 남성들이 경찰에 적발됐다고 NHK가 보도했습니다.

NHK는 이 남성들이
자금 반출을 위한 신고를 하지 않은 상태였으며,
현금 강탈 사건과의 관련성을 경찰이 조사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한국 국적이라는 것 외에
붙잡힌 남성들의 정확한 신원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40억 원 가까운 돈이 강탈당했는데, 그 후 거액을 밀반출하려던 사람들이 붙잡혔다. 그런데 한국인이었다가 주 내용이다. 사건 용의자로 연관지을 수 있을 만한 솔깃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아직은 정확한 관련성을 단정짓기에는 부족한 수준이다.

그런데 산케이 신문은 그 다음날 조간 신문 1면 톱을 "한국인인가? 3억 8400만엔 강탈" 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뽑고는 기사를 전했다. 부제는 "공항에서 현금소지 확보" 이다.

이 정도면 거의 한국인이라 단정지은 수준이다. 제목이 이 정도 강한 임팩트를 가진 제목으로 시작하면 내용이 어떻게 구성되도 사람들 인식속에 남는 건 "범인은 한국인이구나..."가 되기 마련이다.


요미우리는 사회면 톱 제목으로 "은행 앞 3억 8000만엔 강탈"이라고 뽑고, 부제로 "한국인 남자들 청취(조사라는 의미)"라고 설명을 붙였다.


재밌는 건 산케이와 요미우리 모두 보수 신문들로 최근 한일 관계에서 한국 공격에 앞장섰던 신문들이라는 점이다.

중도 우파 정도로 볼 수 있는 니케이 신문은 한국인이 관련됐다는 점을 부제로 뽑으면서도 "다액현금소지 한국인 등 조사,관여부정"이라며 사실 관계를 전했다.

그래도 ‘한국인’이 붙잡혔다고!!!!

같은 사건이라도 중도이거나, 진보계열 신문들은 함부로 단정짓는 우는 범하지 않았다.

대표적 진보 신문인 도쿄 신문은 "후쿠오카에서 3억 8천만엔 강탈","공항에서 다액소지 남성들 조사"(21일 조간)라며 소식을 전했고, 중도 진보인 아사히는 "후쿠오카 도로상 3.8억엔 강탈","4억엔 넘게 소지한 다수 확보"(21일 조간)라는 제목을 달았다.


중도라 볼 수 있는 마이니치도 "다액현금소지 남성들 조사"라는 정도로 소식을 전했다.

사실 이미 사건 당일인 20일 저녁부터 후쿠오카 공항에서 붙잡힌 남성들이 범행 관련성을 부정하고 있다는 사실이 전해지고 있었고, 이후 용의자들과 인상착의가 다르고, 또 가지고 있던 돈의 액수가강탈당한 돈 보다 오히려 많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었던 만큼 공항에서 붙잡힌 한국인들을 현금 강탈 사건과 바로 연관짓기에는 무리가 있었던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런데 요미우리 신문은 관련성이 희박해지는 상황에서도 21일 오후 발행된 석간 신문에 사회면 톱 제목을 "7억엔 소지 한국인 체포","후쿠오카 강도와 관련 조사(부제)"로 뽑았다. 강탈 사건과의 관련성이 없더라도 일단 한국인이 체포됐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는 듯 제목에 '한국인'을 강조했다.


보수쪽으로 볼 수 있는 니케이신문도 "한국인 남자 4명 체포"이라는 제목을 달았다.(가장 보수적이고 한국에 비판적인 산케이 신문은 석간을 발행하지 않는다.)

중도인 마이니치는 부제로 "한국인 등(작은글씨) 7억엔 소지 관여부정(큰글씨)"로 되도록 강탈 사건과 무관한 한국인이 부각되지 않도록 했고, 진보쪽에 가까운 아사히와 도쿄 신문은 석간 보도에서도 '한국인'이 들어간 제목은 뽑지 않았다.

한국인 무관성은 ‘조그맣게’ 전하는 산케이

그럼 현금 강탈 사건과 공항에서 붙잡힌 한국 남성들의 관련성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 다음에는 어떨까.

가장 강하게 한국인 관련성을 강조했던 산케이 신문은 이후 아예 공항에서 붙잡혔던 '한국인'관련 이야기는 제목으로 뽑지 않고, 기사 말미에 "관련성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덧붙이는데 그쳤다.

요미우리의 경우 "7억 엔 '차 구입 위해'","관세법위반용의(작은 글씨) 체포 한국인(큰 글씨)"로 사건의 무관성을 명확히 했다. (공항에서 붙잡힌 한국인들은 한국에서 차량 구입 대금을 위해 돈을 가져나가려던 길이었다고 진술)

어떤 사건에 있어 국적이 중요한 팩트로 이야기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 전제는 그 사건의 진범으로 거의 특정됐을 때의 이야기다. 아직 진범으로 특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마치 한국인이 범인인 듯한 분위기를 풍기는 보도 태도는 일부 언론의 한국에 대한 인식과 이미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승철기자 (neost@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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