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방망이 드니까 눈물이 멈추더라, LG 이형종 얘기다

김동훈 입력 2017. 4. 24. 17:36 수정 2017. 4. 25.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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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통 스타] 이형종의 파란만장 야구인생

10년 전 우는 모습 '눈물왕자' 별명
기대 속 특급대우 프로 입단했지만
부상·재활..항명 파동으로 임의탈퇴

3년 전 타자로 전향하며 '광토마'로
지난 주말 3경기서 8안타..타율 3위
"지금 모습대로 시즌 마치는 게 목표"

[한겨레]

엘지(LG) 트윈스 이형종이 지난 21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기아와의 경기에 앞서 훈련을 마친 뒤 자세를 잡아 보이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오늘 홈런 한 방 날리라”고 덕담을 했더니, “타석에 들어서면 그 말씀이 생각날 것 같다”며 웃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첫 타석부터 홈런을 날렸다. 프로야구 기아(KIA) 타이거즈와의 3연전을 앞둔 지난 21일 엘지(LG) 트윈스 이형종(28)을 서울 잠실구장에서 만났다. 그는 3연전에서 10타수 8안타(1홈런) 3타점 4득점 3도루로 그라운드를 집어삼켰다.

■ 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버지

딱 10년 전이다. 2007년 5월3일, 서울 동대문야구장에서 열린 대통령배 고교야구 서울고와 광주일고의 결승. 서울고는 9회말 투아웃까지 9-8로 앞서 있었다. 그러나 광주일고는 9회말 2사 1·3루에서 동점타를 터뜨렸다. 서울고 에이스 이형종은 마운드에서 눈물을 흘리며 던졌다. 연투에 연투를 거듭해 몸상태가 좋지 않았다. 결국 역전타를 맞았고, 이형종은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그때 붙은 별명이 ‘눈물 왕자’. 이 장면을 본 야구팬들은 “꼭 이기고 싶었을 텐데 너무 안타깝다”, “고교야구만의 순수한 열정이 아름답다”는 등의 댓글을 올렸다. 이형종은 당시를 떠올리며 “꼭 이기고 싶었는데 ‘나 때문에 지는구나’ 싶어서 서러웠다”고 했다.

어린 시절 이형종은 ‘야구광’ 아버지를 따라 야구장도 자주 갔다. 7살 때부터 야구 배트와 글러브를 끼고 살았다. 서울 화곡초등학교 2학년 말에 멋진 야구 유니폼을 입었다. 아버지는 그의 가장 큰 후원자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야구를 시작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저에게 부담 주지 않으려고 경기장에 잘 안 오신다”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 몰래 야구장에 다녀가곤 했단다. 요즘 이형종의 맹활약을 보면서 가장 기뻐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아버지다.

■ 재활, 재활, 그리고 또 재활

2008년 큰 기대를 받고 엘지에 1차 지명으로 입단했다. 계약금 4억3000만원으로 특급 대우를 받았다. 하지만 팔꿈치 수술을 받고 힘겨운 재활을 거듭했다. 2010년 5월, 꿈에 그리던 프로 데뷔전에서 첫승을 따냈다. 그러나 행복한 순간은 너무 짧았다. 두번째 등판에서 팔꿈치 부상이 재발됐다. 에스엔에스(SNS)에 일기처럼 쓴 글이 외부로 유출되는 바람에 초유의 감독 항명 사태도 겪었다. 넘치는 승부욕이 화를 불렀다. 재활의 고통보다 훨씬 더 큰 시련이 닥쳤다. 이제 갓 스무살을 넘긴 청년이 감당하기엔 엄청난 고통이었다. 은퇴를 결정했고, 그해 8월 임의탈퇴가 공시돼 그라운드를 떠났다.

골프 선수로 제2의 인생을 설계했다. “한때 70타까지 쳤어요. 어릴 때부터 공으로 하는 건 자신있었거든요. 그런데 골프선수들도 야구 이야기를 하는 걸 듣고 다시 야구를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죠.” 2년 가까운 ‘외도’를 끝냈고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복무도 마쳤다. 그리고 2013년 6월, 다시 엘지 유니폼을 입었다. 그런데 이번엔 어깨 수술을 받아야 할 처지가 됐다. “재활만 하다가 잊히는 선수가 될 것 같았어요. 나이는 이미 스물여섯을 넘어가고 있었고요.” 다시는 야구를 못 할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의 마지막 승부수는 타자 전향. 어릴 때부터 타격에도 재능이 있었던 그였다. “최정우 코치님이 정말 많이 도와주셨어요. 가장 고마운 분이죠.”

■ 안타, 안타, 또 안타

타자 전향 3년째. 그의 방망이에 꽃이 피기 시작했다. 그는 “야구하면서 요즘이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성적은 눈부시다. 24일 현재 이대호(롯데·0.438), 김태균(한화·0.394)에 이어 타율 3위(0.391), 안타 공동 6위(27개)다.

과감한 주루플레이로 도루도 5개(공동 3위)나 성공했고, 무엇보다 장타력이 부쩍 성장했다. 지난해 홈런 1개에 그쳤지만 올해는 벌써 3개다. 장타율은 지난해 0.371에서 올해 0.580으로 크게 올랐다. 비결을 묻자 “여기서 멈출까봐 걱정”이라며 크게 웃는다. 그는 “작년엔 컨택 위주로 생각하고 타석에 들어섰는데, 올해는 컨택도 하지만 유리한 볼카운트에서는 적극적으로 강한 스윙을 생각한다”고 했다. 비시즌 레그킥 동작을 잘 익힌 것과 꾸준한 웨이트트레이닝도 도움이 됐다고 했다.

타자 전향에 성공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고개를 가로젓는다. “가능성만 조금 보여줬을 뿐 성공했다고 말하기엔 아직 이르죠.” 올 시즌 목표를 묻자 “(지난해까지) 해놓은 게 없으니 목표를 정할 수도 없다”며 겸손해했다. 그는 “체력관리 잘해서 지금 이 모습 그대로 시즌을 마치는 게 목표”라고 소박하게 말했다. 하지만 꿈은 원대하다. “이병규 선배님이나 박용택 선배님처럼 엘지의 프랜차이즈가 되고 싶습니다.” 얼굴에 맺힌 땀방울처럼 그의 꿈도 송골송골 영글어가고 있었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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