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사회의 그림자 '쇼핑·의료 난민' 는다

박용하 기자 2017. 4. 24.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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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혼자 사는 노인들이 유독 많은 것으로 알려진 서울 금천구의 한 노인종합복지관은 요즘 관내 독거노인들을 위해 밑반찬을 배달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 독거노인들 대부분이 “쌀이나 라면 등 기본적 생활필수품을 사기 힘들다”는 고충을 토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거노인들이 생필품을 사기 힘든 이유는 부족한 재정 탓만은 아니다. 재산은 어느 정도 있지만 고령으로 신체활동에 지장이 생겼고, 장보기 등 외부활동이 힘든 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금천노인종합복지관 관계자는 “고령인구가 늘어나다 보니 활동상의 문제를 토로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현재는 지방자치단체나 복지관에서 큰 무리 없이 보살피고 있지만, 고령인구는 갈수록 늘어나는 반면 재정은 한정돼 있어 향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의 고령화가 심각한 단계로 접어들면서 일상생활이나 외부활동에 제약을 겪는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24일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 표본 집계’를 보면, ‘장보기나 병원 가기 등 기본적인 외부활동이 힘들다’고 대답한 인구는 2015년 기준 135만3000여명으로 2010년 72만6000여명에 비해 1.9배로 증가했다. 이들 중 78%는 60세 이상의 고령자였다.

문제는 이들 중 1인 가구가 크게 증가했다는 점이다. 장보기나 병원 가기가 어려운 1인 가구는 2010년 13만명에서 2015년 33만7000여명으로 2.5배 증가했다. 장보기나 병원 가기는 생계를 지속하기 위해 필수적인 외부활동이지만, 이들은 가족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지자체나 사회단체의 도움이 없다면 사실상 ‘난민’의 처지에 놓이는 것이다.

활동제약 인구는 동이나 읍·면 지역 모두 증가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여건이 낙후된 읍·면 지역 거주민들의 불편은 더욱 심할 것으로 보인다. 농어촌 지역에서 의료기관이나 소매점의 수는 감소 추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통시장이 있는 행정구역은 2010년 1855곳에서 2015년 1131곳으로 줄었다. 병원의 경우도 일반 병원에 10분 안에 갈 수 있는 마을은 5년 사이 700여곳 감소했다. 이들 마을에 사는 독거노인은 누가 대신 장을 보거나, 병원에 데려가 주기도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

이웃 나라 일본의 사례를 보면, 이 같은 인구는 향후 더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보다 고령화가 빠른 일본에서는 저출산 고령화로 활동제약 인구는 늘어나는 반면, 소매점의 경쟁 격화와 땅값 상승, 인터넷 쇼핑몰 증가로 도심지의 슈퍼마켓들은 다수 사라졌다. 이에 따라 일본에서는 장보기가 힘든 고령인구를 가리키는 ‘쇼핑난민’이란 신조어도 생겼다. 쇼핑난민은 현재 700만명가량으로 추산되며, 일본 지자체들은 이들을 위해 유통매장까지의 무료 버스를 운행하고 이동 판매 차량을 투입하기도 한다.

국내 사회복지단체의 한 관계자는 “현재 중증질환을 가진 일부 독거노인들은 국가 지원으로 일대일 요양보호 서비스를 받을 수 있지만, 활동이 다소 불편한 정도로는 이 같은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면서 “점점 늘어나는 활동제약자들을 위해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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