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는 헌법정신" 볼륨을 높여라!

입력 2017. 4. 24. 13:38 수정 2017. 4. 24.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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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정의당 대선 후보 심상정 대표가 말하는 차별금지법과 청년 불평등 해소 공약

혐오에서 연대로 <한겨레21>이 다섯 번째 대통령 후보를 만났다. 이재명 성남시장, 안희정 충남도지사, 남경필 경기도지사,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에 이어 심상정 정의당 대표를 만나 ‘인권의 바로미터’인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동반자등록법 제정, 청년사회상속제 도입 등 차별과 불평등을 없애기 위한 공약도 꼬치꼬치 캐물었다.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로 활약해온 코미디언 김미화씨가 이번에도 인터뷰를 맡았다. 심상정 후보의 대선 일정을 따라가며 찍은 ‘후보 B컷’, 공약을 검증하는 ‘반대심문’, 후보가 펴낸 책을 톺아보는 ‘대선 북리뷰’도 담았다. _편집자
심상정  약력
1959년  경기도 파주 출생 1978년  서울대 사범대학 역사교육과 입학 1980년  서울대 초대 총여학생회장 1985년  구로동맹파업 주도 1996년  전국금속노동조합 사무처장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2012년  통합진보당 원내대표 제19대 국회의원 2013년  진보정의당 원내대표 2015∼2017년  정의당 상임대표(현)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정의당이 ‘스피커’가 약해요. 정치 뉴스에서 심상정만 빠져. 유승민씨가 나보다 지지율이 낮은데 나만 빼고 대선 후보 토론하면 KBS에 가서 데모할 거야.”

4월4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원회관에서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와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누며 한 이야기다. 심 후보는 만약 KBS가 자신을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배제하면 강하게 항의하겠다고 말했다. 얼마나 억울한 일이 많았으면 첫 인사가 그러랴 싶어 나도 “꼭 항의하시라”고 거들었다. (심상정 후보가 KBS 대선 후보 토론회 참석 기준에 미달된다는 것이 알려지자 언론·시민 사회에서 큰 반발이 일었고, KBS는 4월7일 “KBS 선거방송 준칙에 있는 형평성 원칙과 최근 여론조사 동향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심 후보를 KBS 토론회에 초청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번 인터뷰를 마친 뒤 뉴스를 볼 때마다 심 후보의 말이 생각나 더 신경 써서 그가 나오는 장면을 관찰했다. 실제 심상정 후보가 등장하는 뉴스는 말없이 한 컷 스윽 지나가거나 말소리는 안 들리고 마지막에 잠깐 입만 뻥긋뻥긋하다 다른 컷으로 넘어가버렸다. 이 시점에 잠깐 다른 생각이 들었다. 북한의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뉴스에 나올 때를. 그는 항상 말없이 여기저기 손짓만 해댄다. 그의 음성을 들을 수 없으니 목소리가 어떤지 궁금했다. 그런데 도대체 왜, 북한 뉴스도 아닌데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의 대선 후보인 심상정의 카리스마 넘치는 힘찬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느냐 말이다.

생각해보면 정의당은 늘 억울했다. 개미와 베짱이처럼 정의당이 고민 고민해서 좋은 공약을 만들어놓으면 다른 당에서 날름 뺏어 쓰는 일도 허다했다. 2002년 대선 때 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교육 공약을 내놨지만 현재 이 용어는 다른 정당에서 ‘무상’으로 잘 사용하고 있다.

노동자를 대변하는 정의당은 무대 앞에서 반짝반짝해도 될 것 같은데 항상 무대 뒤에서 대기만 했던 것 같다.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 노동자고 우리가 주인공인 세상을 소망한다. 정의당은 소외당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현재 모습과 닮아 보인다. 왜 우리는 정의당을 무대 뒤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게 하는 것일까.

‘샤이 심상정’들이여, 돌아오라

인터뷰 오기 전에 트위터를 훑어봤는데 더불어민주당 경선이 끝났으니, 이재명 성남시장과 안희정 충남도지사 지지자들이 심상정 후보에게 몰려가야 하지 않냐는 트윗이 있더라고요.

민주당에서 대량 난민 사태가 나기를 학수고대 중입니다. (웃음) 우리나라 정당 체제가 노선과 정책 중심으로 지지자 구성이 되어 있지 않아요. 앞으로 정치가 변화하려면 인물과 지역 중심이기보다 정책과 비전 중심으로 지지 후보를 결정하는 문화가 자리잡아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재명 지지자들은 당연히 심상정에게 와야죠. (웃음)

제 트위터로 어떤 분이 ‘가장 서민과 가까운 생각을 하지만 지지도가 낮은 이유는 뭘까요?’라는 질문을 하셨어요.

두 가지예요. 하나는, 우선 제 ‘스피커’가 너무 약합니다. 큰 당이든 작은 당이든 공정한 경쟁 질서가 보장돼야 하는데 정말로 불공정한 곳이 정치입니다. 현재 대선 후보 5명 가운데 비교섭단체인데다 가장 규모가 작은 정당에 속한 제가 계속 대선보도에서 배제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그동안 보수정권이 한국 사회를 주도하다보니 당장의 정권 교체가 중요하다는 이유로 ‘차선의 정치’가 계속 이어져왔습니다. 그래서 심상정을 믿고 정의당 같은 진보정당이 성장하기를 바라면서도 당장의 정권 교체를 위해 민주당을 비판적으로 지지해온 시민이 많습니다. 오랜 세월 이런 비판적 지지가 고착화됐습니다.

이제 30년 동안 계속된 ‘민주 대 반민주’ 구도는 과거의 것이 되었습니다. 자유한국당이나 바른정당이 정권을 잡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야 3당 간 경쟁입니다. 미래를 놓고 하는 선거니 더 이상 심상정을 지지하는 데 장애물이 없습니다. 민주당의 한계를 알면서도 그 정당을 선택해온 비판적 지지자들에게 다시 돌아오라 얘기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는 심상정의 지지율이 높아지면 정권 교체에 지장이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에 저에게 마음이 있어도 찍지 못했습니다. 오랜 세월 비판적 지지로 인해 투표 패턴이 정해지고 거기에 익숙해졌습니다. 그래서 촛불시민들이 혁명으로 갈아엎은 대선판을 정상화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립니다. ‘샤이 진보’ ‘샤이 심상정’이 의외로 많습니다.

이번엔 단순히 대통령 하나 바꾸는 선거가 아닙니다. 반드시 정권 교체를 해야 할 필요성을 많은 시민들이 인식하고 있는데 그러려면 핵심 포인트는 심상정입니다. 이번 대선의 주요 변수는 심상정입니다. 민주당의 오른쪽에서 이번 대선의 주요 경쟁 구도가 형성되면 개혁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민주당의 왼쪽에 있는 심상정에게 어느 정도 힘이 실리느냐가 개혁의 성패를 가르는 척도입니다.

스피커가 이제 커지기 시작할까요.

대선 후보 5자 구도가 확정되면 그중 한 명인 저를 언론에서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지금부터가 저의 본격적인 레이스입니다.

어떤 가족형태도 법적 지원 차별 없어야 국회에서 10년째 표류하는 차별금지법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는 점에선 정치권에서 충분히 공감이 이뤄졌다고 봅니다. 차별금지법은 헌법정신이기도 하고 인권과 민주주의를 내세운 나라라면 갖춰야 할 기본법입니다. 성정체성, 연령, 학벌, 출신, 외모 등 모든 면에서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부 개신교에서 성 정체성 등을 문제 삼아 이 법안에 찬성하는 의원을 낙선시키겠다고 과격하게 나오니 의원들이 두손 두발 다 들었지요. 그것은 대한민국 국회가 헌법정신을 확고하게 실행하지 못하고 일부 교단의 표를 얻기 위해 꼬리를 내린 겁니다. (17~19대 국회에서 차별금지법 입법에 실패한 것은) 국회가 비겁했기 때문입니다.

성소수자 문제는 어떻게 보시나요?

성적 지향이 다르다고 해서 교육받을 권리, 실업급여 받을 권리를 차별하면 민주사회가 아닙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보장받아야 할 것을 이런저런 이유로 차별하면 안 된다는 게 차별금지법입니다. 기본적으로 민주사회에서 보장돼야 하는 것입니다. 동성결혼과 성소수자 문제는 찬반의 문제가 아닙니다. 성적 지향은 그 사람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성애자지만 이분들을 존중하는 이유가 그것에 대한 찬반을 묻는 일 자체가 잘못됐다고 보기 때문이에요. 이분들을 지지하는 건 성적 지향이 아니라 그분들의 인권과 자유를 지지하는 겁니다. 우리나라는 이 부분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워낙 크고 도덕적 잣대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성소수자들이 차별 속에서 고통받고 있습니다.

동반자등록법 제정 공약은 무엇인가요?

차별금지법도 그렇지만, 이것에 대해서도 성소수자, 동성결혼을 위한 법으로 오해하는 것 같아요. 동반자등록법을 만들겠다는 취지는 이렇습니다. 과거에는 부모와 자식으로 구성된 가족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지금은 이런 가족형태가 20%밖에 안 됩니다. 1인 가구, 비혼 가구, 이혼 가구 등을 합치면 전체 가구 수의 40% 가까이 됩니다. 동반자등록법을 주장하는 것은 어떤 가족형태이더라도 대한민국의 법과 제도가 보장하는 지원을 모두 받을 수 있게 하자는 거예요. 모든 가족형태가 존중받고 행복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기 위한 겁니다. 그중에는 동성 가족도 있죠.

동반자등록법을 제정하면 어떻게 되나요?

예를 들어 국민연금 받을 때 남편이 죽으면 배우자인 부인에게 권리가 승계되는 게 많잖아요.

아, 국민연금이 그런가요?

몇몇 사례를 찾아봤어요. 가족으로서 세액공제도 받잖아요. 가족 중 누가 병원비를 많이 썼다면 세대주가 세액공제를 받고요. 가족으로서 도움받을 수 있는 제도가 지금 현재 부모·자식으로 구성된 가족에겐 적용되는데, 이혼 가구나 동성 가구는 못 받고 있습니다. 동반자등록법을 만들면 ‘내가 이렇게 가족을 구성하고 있다’고 행정기관에 등록하면 다양한 지원을 받는 겁니다. 예를 들어 동거 부부의 경우 혼인신고를 안 하고 사니까 건강보험 피부양자 등록이 안 됩니다. 동반자등록법에선 가족으로 등록하면 피부양자로 인정해줍니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도 가능합니다. 육아휴직 수당도 받을 수 있게 하고요.

동거하다 헤어지면?

헤어졌다고 신고하면 되죠. 동반자등록법은 가족관계일 때 누릴 수 있는 법익을 다양한 가족형태에 최대한 보장해주겠다는 게 핵심인데, 언론에선 동성결혼을 보호하는 것으로 일부만 이야기합니다.

제도대로만 되면 많은 분이 행복할 법이네요.

그럼요. 동반자등록법은 다양한 가족이 대한민국 시민으로서 법적 지원을 받도록 보장하는 법입니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안에서 비정상이라고 법적 보호에서 퇴출된 다양한 가족형태를 인정하는 겁니다. 시대에 맞게 말이죠.

심상정의  다양한  가족형태  지원  공약
동반자등록법 제정 동거 가구에 법적 권리를 부여하는 프랑스의 시민연대협약(PACS) 도입. 이성 간 혼인에 의한 가족 구성뿐만 아니라 동거 노인, 비혼모, 동성커플, 비혼커플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 구성권 보장 1인 가구 지원책 소형임대주택 및 공공원룸주택 공급 확대, 사회주택협동조합 지원, 30대 미만 단독 세대주에게도 전세자금 대출 허용 한부모 가족 보호 육아와 구직을 동시에 해결하는 한부모 종합지원프로그램 마련, 양육비 대지급 제도 개선 및 이행 강제, 자녀 간병휴가 보장, 한부모 가족복지주거센터 확충

혐오문화 원인은 극심한 차별과 불평등

지난해 정의당에서 ‘메갈리아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소녀는 왕자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메갈리아 티셔츠를 입었다고 인증샷을 올린 성우에 대해 한 게임업체가 계약을 해지했다. 이 조처를 비판하는 논평을 정의당 문화예술위원회에서 발표한 뒤 논란이 발생했다.)

메갈리아 사태와 관련해 당내 논쟁이 많았습니다. 제가 당 지도부에 있으면서 이 과정을 잘 관리하지 못한 이유는 두 가지예요. 하나는 청년 세대가 불평등과 차별 때문에 겪는 고통은 알았지만 이것이 혐오문화와 연결돼 우리 사회에 이토록 만연돼 있는지 몰랐습니다. 두 번째는, 이 친구들이 이렇게 서로 혐오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자기가 느끼는 차별과 불평등을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당이 바로 정의당입니다. 처음 논쟁 과정에서 정의당의 사명과 부합하는 해법을 만들지 못한 게 늘 마음 아팠습니다.

혐오는 하나의 증상일 뿐 원인은 결국 한국 사회 내에 존재하는 극심한 차별과 불평등입니다. 이것을 다른 방법으로 극복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서로 혐오하는 겁니다. 이 일을 겪으며 늘 생각했던 게 신영복 선생의 ‘옥중서한’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겨울 감옥에선 (따뜻한 체온 때문에) 옆 사람이 좋은데 여름 감옥에선 같은 이유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됩니다. 그 여름 감옥이 자꾸 생각납니다. 청년들을 여름 감옥으로 몰아넣은 사회 구조, 그 지배세력을 비판하고 거기에 맞서야 하는데 여름 감옥을 만든 세력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당장 내 옆에서 같이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증오심이 발현됩니다. 이것이 ‘메갈 논쟁’의 핵심입니다. 정의당은 혐오문화를 연대문화로 바꿀 것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청년, 그리고 여성과 남성은 같은 피해자입니다. 서로 연대해 불평등과 차별을 만들어낸 기득권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혐오를 반대하는 이유는 서로 연대해야 할 약자들을 갈라놓기 때문이에요. 여름 감옥 자체를 공격하는 데 힘을 합치는 게 아니라 고통받는 서로를 혐오하는 양상이 한국 사회에 갈등으로 퍼지고 있습니다. 정의당이 이들을 연대하게 해줘야 합니다. 이번 촛불이 좋은 상징입니다. 수많은 갈등과 불평등을 겪은 사람들이 광장으로 나온 겁니다. 청년들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미래를 설계할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촛불은 불의한 권력에 맞섰고 마침내 그것을 끌어내렸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불평등한 사회를 바꾸려면 더 힘을 모아야 합니다.

불평등과 혐오의 해법이 약자들의 연대라고 말하셨죠?

정의당은 불평등과 차별을 극복하기 위한 정당입니다. 사실 이 논쟁이 시작됐을 때 여성과 청년이 싸울 것이 아니라 힘을 합쳐야 우리를 차별과 불평등으로 몰아넣는 사회구조를 바꿀 수 있다고 적극적으로 밀고 나갔어야 했어요. 늦었지만 지금 이같은 주장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정의당이 정권을 잡고 한국 사회를 이끈다면 혐오가 사라질까요?

근본적으로 혐오문화의 원인이 되는 차별과 불평등을 해소해야 혐오문화가 사라집니다. 이번 대통령선거가 중요합니다. 다음 정부가 과감한 개혁을 추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대통령을 하려고 합니다.

지금 청년들은 촛불혁명 세대

‘제가 그래서 대통령 하려는 것 아닙니까’ 그 얘기를 어디서 많이 들었던 것 같네요. (웃음)

하하하. 저는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기존 보수 정당이 추진해온 정책의) ‘현상 유지’ 정도 될 거라 봅니다. 촛불이 원하는 과감한 개혁을 하려면 기득권에 휘둘리지 않는 개혁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이는 지금까지 기득권에 맞서온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요즘 청년들은 ‘88만원 세대’에서 ‘77만원 세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청년 문제가 사회적 화두입니다.

지금 청년들을 상징하는 몇 가지 지표를 살펴봤습니다. ‘88만원 세대’가 벌써 ‘77만원 세대’가 됐습니다. 대학을 졸업하면 평균 빚이 1900만원입니다. 사회에 첫발을 디디기 전에 빚쟁이가 됩니다. 청년실업률이 지난 3월 발표된 걸 보니 12% 정도입니다. 그러나 실질실업률, 즉 취직이 안 돼 학교에 남아 있는 사람과 임시 아르바이트생을 다 합치면 4명 중 1명은 실업자입니다. 그러면 실업률이 25% 가까이 됩니다. 대학에 들어가 죽기 살기로 청춘 다 바쳐서 공부하지만 미래가 없습니다. 그러니 ‘헬조선’ 얘길 하는 겁니다. 제가 촛불집회에 한 번도 안 빠지고 나갔는데, 청년들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들은 불의한 정권에 대한 분노만으로 광장에 나온 게 아닙니다. 아무리 공부하고 노력해도 미래를 설계할 수 없어서 촛불을 든 겁니다. 다음 대통령은 이런 청년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한 강연에서 ‘나를 빚쟁이로 만드는 세상을 뒤엎을 권리가 있다’고 이야기하셨는데요.

네. 그렇게 강연에서 이야기했어요.

젊은 세대들이 정치 참여를 활발하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내세운 첫 번째 공약의 주안점이 뭐냐면, 우리 아들딸들이 자기의 존엄을 찾고 인생을 개척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럽처럼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자기 개성에 맞는 좋은 직업을 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학에 굳이 안 가더라도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사는 데 지장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나중에 대학 가서 공부하고 싶으면 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자기가 만족할 직업을 갖고 높은 수입을 얻으면서 일찍 결혼해 여행 다닐 수 있는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청년들의 삶이 피어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젊은 대한민국을 만들겠습니다.

저는 상업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어릴 때 ‘난 왜 대학도 못 가고, 우리 집은 왜 이렇게 가난할까’라는 생각에 마음속 깊이 패배감을 감추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개그맨이 되고 싶었고 빨리 사회에 나가 꿈을 이루고 싶었습니다. 코미디언이 되고 보니 친구들보다 4년 먼저 사회에 나와서 부딪힌 게 훨씬 인생에 도움이 됐습니다.

김미화씨의 멘트를 우리 교육 공약의 홍보 문구로 삼아야겠네요. 자기가 원하는 직업을 갖게 해주고 나중에 공부하길 원하면 언제든 하게 하고. 제가 청년 얘기를 많이 하는 게 지난번 정의당 대선승리 결의대회를 할 때도 이번 대선을 계기로 삼아 정의당을 청년들한테 내주자고 했습니다. 제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인간에겐 그 시기가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서는 때입니다. 그 무렵 어떤 사회·정치적 경험을 쌓느냐가 중요합니다. 제가 78학번인데 1979년에 박정희가 피살되고 1980년에 광주항쟁(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있었습니다. 그때 ‘대학의 봄’이라고 해서 대학생들이 전부 사회참여를 했습니다. 다들 사회문제에 몰입했던 시기입니다. 그 세대를 후세가 ‘386’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청년들이 매주 토요일 광장에 나와서 겪는 경험에 대해 지금 단계에선 역사적 의미를 정리하지 못할 겁니다. 그러나 지금 청년 세대는 부조리와 불평등을 온몸으로 겪는 세대입니다. 광장에 나가서 평화·민주적 방법으로 정권을 끌어내린 세대이기도 합니다. 이 세대는 앞으로 대한민국을 바꿔나가는 데 가장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세대가 될 겁니다. 후세가 ‘촛불혁명 세대’로 부르지 않을까요.

정의당 같은 진보정당은 촛불혁명 세대, 이 청년들과 함께 파트너십을 형성해야 한국의 미래를 열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예비후보 등록을 하자마자 대학을 순회 방문하고 있습니다. 강연 분위기도 굉장히 뜨겁습니다.

‘청년상속제’ 도입은 ‘수저 신분사회’ 척결 의지

상속세를 걷어 청년에게 나눠주는 ‘청년사회상속제’를 도입하겠다는 공약이 눈길을 끕니다.

사람들이 이 제도가 황당한가봅니다. 어떤 분들은 국민의 세금을 20대에게 나눠준다는 건 포퓰리즘이라고 합니다. 오해입니다. 상속증여세가 생길 때, 기회균등의 원리에 따라 많이 상속받는 사람은 상속세를 내라는 거였죠. 그래서 그 취지에 맞게 쓰자는 겁니다. 어떤 집의 자녀들은 평생을 써도 못 쓸만큼 많은 돈을 물려받고, 어떤 청년들은 가난만 되물림받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신분과 재산이 내 인생을 결정하니까 ‘수저론’도 나오는 거고요. 적어도 민주국가라면 출발선을 동일하게 만들어줘야 합니다. 상속증여세의 입법 취지에 맞게 일부 고액 상속자를 제외한 모든 이가 성인이 되는 20살에 균등하게 상속해주자는 겁니다. 보육원에서 큰 친구들은 사회에 나갈 때 2천만원을, 나머지 청년에게는 1천만원을 주고요.

상속세 취지에 맞게 쓰자는 거네요.

올해 상속증여세 세입예산 5조4천억원으로 고액 상속을 받는 청년 몇 명을 걸러내고 나머지에게 일괄 지급하면 1인당 1천만원 정도 지급할 수 있습니다. 여기엔 굉장히 중요한 철학적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수저’, 즉 신분사회를 척결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입니다. 청년들에게 동일한 출발선을 만들어주자는 국민적 의지를 이런 방식으로 구체화하겠다는 거죠. 또 하나는 세목과 관련해 취지에 맞는 용도로 사용하자는 겁니다. 청년기본소득제의 일환으로 제시한 공약입니다.

좋은 공약인데 그런 걸 내놓을 때마다 다른 정당에 많이 뺏겼습니다. 이번에도 누가 뺏어가면 어떡하죠?

현재 주요 정당들이 내놓은 공약 대부분의 저작권은 정의당에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 지적재산권 보장도 안 되고. 그래도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양심이 있어서 ‘칼퇴근법’ 이런 건 제목까지 가져가면서 공약할 때 심상정을 언급하더라고요. 공약에 대한 ‘팩트체크’가 필요한 것 같아요. 안철수 후보가 ‘박근혜 퇴진’을 자기가 제일 먼저 이야기했다는데 <한겨레21>이 그에 대한 팩트체크를 해주세요.(웃음) 제가 2016년 10월28일 박근혜 퇴진을 촉구했을 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공식 입장이 무언지 아십니까. “우리는 정의당과 다르다, 함께하지 않겠다”였습니다.

심 후보는 ‘재벌 뒷배 안 봐주겠다’고 했잖아요. 화끈하십니다. 말 그대로 뒷배 안 봐주면 되는 거 아닌가요?

재벌 3세 경영 세습을 금지하겠다고 하니, 다른 의원들이 처음에는 ‘그럼 시장경제를 부정하겠다는 거냐’고 반응했는데, 이제 그런 얘기는 안 합니다. 왜냐면 제 얘기가 옳기 때문입니다. (웃음) 재벌 3세의 탈법을 정권이 도와주지 않으면 현행법으로도 절대 경영권을 세습할 수 없습니다. 지금 대통령이 할 일 중 제일 중요한 건 ‘이재용 사면 안 하겠다, 박근혜 사면 안 하겠다, 재벌 탈법 용납 않겠다’고 약속하는 겁니다.

대통령이 되면 무엇을 가장 최우선으로 생각할 겁니까?

사람을 살려야죠. 지금 한국 사회에선 ‘비정규직’이 고용형태 중 하나가 아니라 사회경제적 신분이 되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차별받는 것도 억울한데 말이죠. 똑같이 공부하고 직장에 들어와서 ‘반값 인생’ 취급받고. 그러면 자기 미래나 사회에 대해 긍정적 사고를 하기 어렵습니다. 빨리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경제성장을 앞세우고 돈 많이 버는 출세만을 더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행복지수 같은 게 낮습니다. 어떤 분이 대통령이 되든 국민 행복지수를 가장 최우선적으로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게 바로 저입니다.(웃음) 상대적 박탈감이나 차별은 국민을 피폐하게 만듭니다. 결국엔 절대다수가 행복하지 않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공부하고 일하고 연애하고 결혼해서 아기 낳고 사는, 인간이면 누구나 꿈꾸는 일상적인 삶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너무 안타깝고 마음이 아픕니다.

‘스피커 약한’ 심상정, 국민의 평가는

김미화 제공

인터뷰 도중 심상정 후보는 자신이 강조해야 할 부분에선 주먹을 불끈 쥐어 힘있게 내밀었다. 나는 예전부터 파면당한 박근혜씨의 손동작이 영 맘에 들지 않았다. TV 뉴스에 나오는 그녀는 “에~” “저~” “이렇게 해가지고~”라고 말하면서 두 손목을 마구 휘휘 돌리며 이야기했다. 하지만 심 후보가 주먹을 쥐고 앞으로 쭈욱 내미는 모습에선 박근혜씨에게 느낄 수 없었던 건강한 신뢰감이 느껴졌다.

심 후보는 “스피커가 약하다”는 이야기를 인터뷰 도중에 몇 번이고 했다. 나는 궁금하다. 언론이 마구 띄워주면 정의당이 살아날까. 과연 언론에 많이 노출되는 것이 대통령으로 뽑히는 데 결정적 한 방일까. 얼마 남지 않은 대선 정국이 흘러가는 분위기를 보면 오히려 편파적 언론이 마구 칭찬하는 대선 후보들을 여론이 외면하는 현상도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광화문광장에 촛불 들고 모인 시민의 힘으로 만든 ‘촛불 대선’에서 언론에 많이 노출되지 않아 스피커가 약하다는 말은 지금 시대와 어울리는 말일까.

촛불집회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는 심상정 후보를 국민은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촛불 대선, 그에 대한 평가가 자못 궁금하다.

글 김미화 코미디언 정리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김서진 객원기자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인터뷰 알짬만 뽑은 영상을 <한겨레21> 페이스북 페이지(facebook.com/hankyoreh21), <한겨레TV> 유튜브 계정(youtube.com/user/hanitv)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박상현 교육연수수료생·김현빈 객원 PD가 기획·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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