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역사 2cm] 유대인 제비뽑기 몰살 후 2천 년 떠돌이

2017. 4. 24.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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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황대일 기자 = 대선 후보들은 하나같이 튼튼한 안보를 약속한다.

북한 핵실험과 미국 무력시위로 안보가 불안해졌다는 판단에서다.

한반도 평화 해법은 제각각이지만 전쟁을 막자는 데는 모두 공감한다.

후보들은 자주국방의 중요성도 역설한다.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겪은 식민지배와 동족상잔의 비극을 생생하게 기억하기 때문이다.

안보를 최우선 정책 과제로 삼는 국가는 대부분 전쟁 피해를 본 나라다.

이들 국가는 전쟁기념관도 만들어 참상을 오랫동안 기억하려고 한다.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에 세워진 갑오전쟁 기념관 모습

인천과 마주하는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에 세워진 갑오전쟁(청일전쟁)기념관이 대표 사례다.

웨이하이는 1895년 청나라 최정예 함대가 일본 해군의 공격으로 궤멸한 곳이다.

부둣가에 가라앉을 듯한 시커먼 조형물은 침몰하는 청나라 전함을 상징한다.

패전 기억을 국가 안보에 가장 잘 활용한 나라는 이스라엘이다.

나라 잃은 설움을 약 2천 년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유대인 마지막 영토는 예루살렘 남쪽 100km 지점의 마사다이다.

사해 연안의 마사다는 450m 고지대에 세워진 철옹성이다.

사방이 절벽이고 통로는 좁고 꼬불꼬불한 길 하나뿐이다.

성벽 두께가 5m를 넘고 37개 망루까지 갖췄다.

그런데도 서기 73년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유대인이 로마를 상대로 독립전쟁을 벌인지 7년 만이다.

당시 마사다는 완벽한 전투태세를 갖춘다.

수천 명이 몇 년간 싸울 만큼 충분한 무기와 식량을 확보했다.

빗물이 잘 고이는 석회석 지형을 활용해 물도 넉넉하게 저장한다.

평지인 정상에서는 식량을 재배했다.

비둘기를 비롯한 각종 조류 배설물은 비상 연료로 준비했다.

로마군은 예루살렘을 점령한 지 2년만인 서기 72년 대공세를 펼친다.

1만5천여 명이 성곽을 에워싸 몇 차례 공격을 퍼부었다.

유대인은 그때마다 잘 버틴다. 천연요새 덕분이었다.

정공법으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로마군은 우회작전을 편다.

지대가 낮은 쪽 바위산 일대에 흙을 쌓아 성곽만큼 높였다.

그런 다음 성안으로 화살을 쏘고 돌을 날려 보냈다. 공성전이 시작된 것이다.

비탈길도 만들어 성벽을 무너뜨린다.

이스라엘의 마사다 요새 전경

성안에 있던 967명은 더는 버티지 못하고 중대 결단을 한다.

살아서 노예가 되느니 차라리 목숨을 끊기로 한다.

자살을 금지한 유대교 율법을 고려해 죽여주기 방식을 택한다.

먼저 성인 남성은 아내와 자녀를 살해하고서 10명씩 조를 짠다.

각 조에서는 제비뽑기로 한 명을 정해 나머지 9명을 죽이도록 한다.

최후 1인은 식량 창고를 제외한 모든 건축물을 불태우고 자결했다.

로마군이 성에 진입했을 때 생존자는 수로에 숨은 노파 2명과 아이 5명뿐이었다.

마사다 함락으로 유럽 유대인은 디아스포라 운명을 맞는다.

세계 곳곳으로 흩어져 자자손손 온갖 박해와 천대를 받은 것이다.

종교재판에서 마녀로 몰려 무수한 사람이 죽기도 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전경

2차대전 때는 독일 나치당 가스실 등에서 약 600만 명이 학살당한다.

슬픈 마사다 전설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에도 알려지지 않았다.

5세기쯤 강력한 지진으로 건축물이 무너지면서 요새가 묻힌 탓이다.

마사다 진실이 세상에 드러난 것은 1965년 이후다.

이스라엘이 유적을 2년간 발굴해 기록한 덕분이다.

이때부터 마사다는 유대인 결사항전 정신을 상징하게 된다.

이스라엘 군인은 신병훈련 때 이곳에 모여 "다시는 마사다가 함락되지 않도록 하겠다"라고 외친다.

국가를 수호하겠다는 비장한 결의를 다지는 훈련 과정이다.

이스라엘은 건국 후 1973년까지 큰 전쟁을 4차례 치러 모두 승리했다.

국가 주권은 총을 옆에 두지 않으면 쉽게 조롱당한다는 격언을 입증한 것이다.

우리는 서울 송파구 삼전도비를 안보교육에 활용해볼 만하다.

조선을 침략해 학살극을 벌이고 수십만 명을 끌고 간 청나라 공덕을 기리는 비석이다.

대선 후보들이 삼전도비를 찾아가 치욕스러운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면 그 자체로 훌륭한 안보공약이 될 수 있다.

had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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