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만성의 축구멘터리] 2선으로 내려간 메시, 우승 희망 살렸다

입력 2017. 4. 24. 07:58 수정 2017. 4. 25. 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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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마르 징계 탓에 한칸 내려간 메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를 지배하다

[골닷컴] 한만성 기자 = "그냥 경기를 즐겨라, 미래는 어차피 내일 일이다"

이는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 중계 방송사 'beIN 스포츠'의 해설위원 레이 헛슨이 24일(한국시각) 열린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33라운드 경기가 끝날 무렵 남긴 감상평이다. 이때 스코어는 2-2 동점.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전개된 '엘 클라시코'는 무승부로 끝날 것만 같았다. 이대로 경기가 종료됐다면, 올 시즌 프리메라 리가의 우승 경쟁은 절대적으로 레알에 유리한 상황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다만 경기 결과, 그리고 이에 따른 우승 경쟁의 향방과 관계없이 이날 바르셀로나와 레알이 연출한 명승부는 '재미'라는 요소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손에 땀을 쥐게 한 이날의 '극장' 승부는 끝내 주인공을 탄생시켰다. 이는 바로 리오넬 메시. 바르셀로나는 그가 추가 시간에 터뜨린 극적인 역전골 덕분에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원정에서 3-2로 승리하며 올 시즌 단 다섯 경기를 남겨두고 프리메라 리가 선두로 등극했다. 물론 아직 레알은 바르셀로나보다 한 경기를 덜 치렀다. 이 때문에 레알은 여전히 우승 경쟁에서 우세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메시는 만약 경기가 무승부로 끝났더라면 시시해질 가능성이 컸던 선두 싸움에 다시 불을 지피며 이날 펼쳐진 명승부를 통해 재미와 더불어 앞으로 더 치열해질 경쟁을 예고했다.

# 공격형 미드필더로 보직 변경한 메시…이 때문에 선제골 넣고도 졸전 펼친 카세미루

사실 메시가 맹활약을 펼친 건 하루이틀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이날 레알을 상대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의 주인공이 된 메시가 보여준 활약에 초점이 맞춰지는 부분은 그가 2선으로 내려가 활약을 했다는 점이다. 바르셀로나는 최근 출전 정지 징계를 받은 네이마르 없이 레알을 상대해야 했다. 루이스 엔리케 바르셀로나 감독은 MSN 삼각편대의 한 축을 담당하는 네이마르의 빈 자리를 메울 적임자로 전형적인 최전방 공격수 파코 알카세르를 낙점했다. 이 때문에 파코는 자연스럽게 최전방에서 루이스 수아레스와 투톱 라인을 형성했고, 메시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이 둘의 뒤를 받쳤다.

메시는 평소 소화한 승부를 결정 짓는 공격수가 아닌 90분 내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미드필더가 되자 말 그대로 자신이 원하는대로 경기를 풀어갔다. 이론상으로 레알에는 페페가 장기 부상으로 빠지며 수비진에 균열이 생긴 현시점에서 메시가 공격 진영이 아닌 2선으로 내려가면, 바르셀로나를 상대하기가 더 적합할 수도 있었다. 메시가 중원으로 자리를 옮기면, 지네딘 지단 레알 감독의 두터운 신뢰를 받는 수비형 미드필더 카세미루가 그를 밀착 마크하기가 더 수월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수비 전술은 어디까지나 카세미루가 메시를 제어해줘야 성립될 수 있다.

그림: 2선으로 자리를 옮긴 메시의 터치맵. 그가 기록한 터치 72회 중 공격 진영에서 발생한 터치는 8회에 불과했다.

레알의 문제는 터프한 수비로 정평이 난 카세미루가 경기력이 최고조에 오른 메시 앞에서 맥을 못췄다는 데에 있다. 카세미루는 이날 파울을 세 차례 범했는데, 그 대상은 매번 메시였다. 그러나 거친 파울만으로는 메시를 잡을 수 없다. 이날 메시는 패스를 받는 주요 위치를 공격 진영이 아닌 센터 서클 부근으로 옮겨 상황에 따라 레알 수비진의 허를 찌르는 '패스'와 단숨에 공격 진영까지 전진하는 '드리블 돌파'를 섞어가며 카세미루를 농락했다. 그가 17분 하프라인 밑에서 공을 잡아 야금야금 약 50미터 거리를 돌파한 후 왼쪽으로 침투하는 이반 라키티치 쪽으로 찔러준 패스는 전조에 불과했다. 이어 그는 27분 또 센터서클 안에서 패스를 받은 후 앞을 막아선 카세미루를 간결한 드리블 동작으로 중심을 잃게 한 후 공격 진영으로 파고들며 레알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그렇다고 레알이 경기 내용에서 밀린 건 아니었다. 오히려 레알은 28분 세트피스 상황에서 세르히오 라모스의 슛이 골대를 맞고 흐르자 카세미루가 이를 재차 밀어넣으며 선제골을 기록했다.

그러나 메시의 발끝은 레알의 우세를 5분 만에 끝냈다. 메시는 중원에서 카세미루를 앞에 두고 세르히오 부스케츠에게 전진 패스를 연결하며 공격을 전개했다. 이후 부스케츠가 페널티 박스 부근으로 이동한 라키티치에게 패스를 연결하는 사이, 메시는 가속도를 붙이며 무서운 속도로 문전으로 침투했다. 어느새 아크 정면까지 침투한 그는 라키티치가 내준 패스를 순발력을 활용한 원터치로 루카 모드리치를 가볍게 제쳤고, 앞쪽으로 흘려놓은 공의 방향만 살짝 바꾸는 두 번째 터치로 다니 카르바할의 헛발질을 유도한 후 정교한 왼발슛으로 동점골을 뽑아냈다.

# 메시가 내려가니 부스케츠가 살아나다

메시가 공격형 미드필더로 맹활약한 원동력은 부스케츠에게 있다. 메시가 부진한 대다수 경기는 빌드업 축구를 추구하는 바르셀로나가 수비 진영에서 중원을 거쳐 공격을 전개하는 과정이 삐걱거린 요인이 무엇보다 컸다. 그러나 메시가 2선으로 내려오며 빌드업 과정에 힘을 보태주자 후방에 선 부스케츠도 한결 부담을 덜고 공격을 전개할 수 있었다. 부스케츠는 이날 전체 패스 성공률 93.9%(올 시즌 평균 89.6%), 전진 패스 성공률 92.1%로 완벽에 가까운 '앵커'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자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라키티치의 움직임도 살아나며 메시가 마음껏 활약할 판이 깔렸다.

그림: 바르셀로나의 이날 패스맵. 메시가 활발히 최전방과 2선을 오가자 부담을 덜게 된 부스케츠의 패스 줄기도 한층 더 살아났다.

후반 들어 메시의 영향력은 더 커졌다. 그는 58분 하프라인 윗부분에서 공을 잡아 페널티 박스 앞을 막아선 상대 수비수 나초와 카르바할의 사이를 정확히 가르는 침투 패스로 수아레스에게 완벽한 기회를 만들어줬다. 메시가 68분에도 마르코 아센시오를 단숨에 제치고 이니에스타에게 연결한 패스도 수아레스의 득점 기회로 이어졌지만, 상대 골키퍼 케일러 나바스의 선방 탓에 골은 터지지 않았다. 바르셀로나와 레알은 90분간 꾸준하게 공격하며 대등한 경기를 했다. 그러나 양 팀이 공격을 비슷한 비율로 하고도 바르셀로나의 공격 장면이 더 뇌리에 남은 이유는 오로지 메시의 존재 때문이었다.

메시는 끝내 바르셀로나가 터뜨린 라키티치의 역전골 상황에도 간접적으로 일조했다. 그가 72분 하프라인 밑부분에서 공을 잡아 시작한 공격이 결국 라키티치의 골로 연결됐기 때문이다. 메시가 중원에서 공을 잡자 레알 수비의 시선은 모두 그에게 쏠렸고, 그가 패스를 내준 후 골문까지 빠르게 뛰어들어가며 상대를 유인하자 라키티치에게는 회심의 중거리 슛을 날릴 공간이 생겼다.

다만 레알은 메시에게 경기의 주도권을 내주고도 전반적인 경기 내용에서는 밀리지 않았다. 심지어 레알은 역전골을 내준 후 5분 만에 메시에게 거친 태클을 가해 라모스가 퇴장당하며 수적 열세를 안고도 불굴의 투지를 발휘하며 경기 종료 5분여를 남겨두고 동점골까지 넣었다. 이날 슈팅수만 봐도 레알은 22회로 바르셀로나(15회)에 앞섰고, 유효슈팅도 14대8로 우위를 점했다.

그러나 메시로 시작한 이날 경기에 마침표를 찍은 이도 바로 메시였다. 그는 승부가 무승부로 끝날 가능성이 커 보인 91분 역습 상황에서 세르지 로베르토가 폭발적인 드리블 돌파로 공격을 이끄는 사이 문전으로 침투했고, 공격진영에서 조르디 알바가 내준 땅볼 크로스를 첫 터치에 왼발 감아차기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며 승부를 갈랐다. 메시는 이날 전까지 일각에서 올 시즌 활약이 예전 같지 않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런데도 그의 올 시즌 기록은 46골 14도움. 메시의 발끝은 최근 팀이 챔피언스 리그에서 탈락한 데 이어 프리메라 리가 우승도 멀어질 뻔한 위기의 순간에 다시 빛났다.

프리메라 리가 선두 자리를 탈환한 바르셀로나는 레알이 덜 치른 한 경기에서 승리하지 못하거나 이 외 남은 일정에서 단 한 번이라도 미끄러지면 역전 우승을 차지할 수 있게 됐다. 바르셀로나는 최근 챔피언스 리그에서 탈락하며 이제는 정말 그들의 시대가 끝났다는 평가를 잇따라 받았다. 그러나 바르셀로나는 레알 원정을 지배한 메시 덕분에 프리메라 리가 역전 우승, 그리고 이미 결승전에 오른 코파 델 레이를 석권하며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커 보인 올 시즌을 '더블'로 장식하는 반전을 일으킬 기회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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