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플피디아] 만들어진 영웅.. 25세 '이탈리안 저커버그'의 추락

태원준 기자 2017. 4. 2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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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마테오 아킬리를 소개한 주간지 ‘파노라마 이코노미’ 표지.


마테오 아킬리. 올해 25세인 이 젊은이는 지난 5년간 ‘이탈리안 저커버그’로 불렸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처럼 ‘어린 나이’에 독특한 아이디어로 ‘소셜미디어’를 창업했다는 공통점이 이탈리아에서 그를 저커버그에 버금가는 스타로 만들었다.

2012년 3월 이탈리아 주간지 ‘파노라마 이코노미’는 당시 20세 아킬리의 앳된 얼굴을 표지에 실었다. 미국 주간지 ‘타임’이 저커버그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해 그의 얼굴로 표지를 장식한 지 2년 만이었다. 파노라마 이코노미의 제목은 간결했다. ‘Italian Zuckerberg(이탈리안 저커버그)’.

2010년 개봉한 영화 ‘소셜네트워크’는 하버드 대학생이던 저커버그의 페이스북 창업 과정을 그렸다. 지난 6일 이탈리아에선 ‘더 스타트업’이란 영화가 개봉했다. 아킬리가 대학 시절 소셜미디어 ‘에곰니아(Egomnia)’를 만들어 창업에 나선 스토리가 담겼다.

그런데 영화가 개봉하자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아킬리를 ‘이탈리안 저커버그’로 만들었던 이탈리아 언론이 에곰니아를 해부하고 나섰다. 과연 이런 영화가 나올 만큼 가치 있는 비즈니스인가? 뒤늦게 던진 질문에 ‘이탈리안 저커버그’ 신화는 무너져 내리고 있다. 5년을 이어온 25세 청년의 신드롬, 그 베일이 벗겨지는 데 채 한 달이 걸리지 않았다.

에곰니아와 이탈리안 저커버그, ‘신화’의 서막

아킬리가 소셜미디어 에곰니아를 내놓은 2012년은 유럽 경제가 매우 어려울 때였다. 그리스 부도 위기 등에 실업률이 치솟았다. 특히 남유럽은 청년실업이 심각했다. 아칠리는 경영학부로 유명한 밀라노 보코니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에곰니아는 라틴어 ‘에고(Ego·Self)’와 ‘옴니아(Omnia·Everything)’를 합성한 말이다. 아킬리는 청년실업에서 모티브를 얻어 젊은이들과 일자리를 연결해주는 SNS로 에곰니아를 설계했다. 일종의 ‘구인구직’ 사이트인데, 실력주의(meritocracy)를 내세웠다. 청년이 간판보다 실력을 어필할 수 있는 공간, 기업이 진짜 인재를 찾을 수 있는 무대라고 했다.

아킬리가 에곰니아를 만들 때 투자한 건 그의 아버지가 유일했다. 알고리즘을 만들고 아버지가 준 1만 유로(약 1200만원)로 개발자 1명을 고용해 사이트를 구축한 그는 보코니대 학생들부터 에곰니아에 끌어들였다. 페이스북이 하버드대 학생들을 상대로 시작했던 것처럼.

그렇게 에곰니아를 접한 보코니대의 한 학생이 이탈리아의 유명한 온라인 미디어 ‘링키에스타(Linkiesta)’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아킬리의 구상이 갖고 있는 잠재력을 소개한 글인데, 미국이라면 숱한 창업 사연 중 하나였겠지만 ‘스타트업 문화'가 생소했던 이탈리아에서는 놀라운 일로 받아들여졌다.

더구나 12.6%까지 치솟은 실업률, 40%대로 추정되는 청년실업률이 연일 헤드라인을 장식하던 때였다. 새파란 젊은이가 또래 젊은이들 취업을 위해 이렇게 신선한 아이디어로 창업에 나서다니…. 인상적인 ‘스토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이 블로그 글은 ‘바이럴(입소문)’을 타고 퍼져 나갔다.

2014년 BBC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마테오 아킬리.


주간지 표지, BBC 인터뷰… 그리고 영화

소문의 확산에 불을 지른 건 주간지 ‘파노라마 이코노미’였다. 미국 ‘타임’과 흡사한 표지를 가졌는데, 2012년 3월 아킬리의 얼굴을 전면에 내세우며 ‘이탈리안 저커버그’란 영어 제목을 달았다. 기사는 링키에스타 블로그와 마찬가지로 에곰니아의 성과가 아닌 ‘잠재력’에 관한 것이었다. 역시 바이럴을 탔다.

‘파노라마 이코노미’는 영향력을 가진 잡지였다. 뒤를 이어 이탈리아 주요 언론이 거의 모두 아킬리 이야기를 다뤘다. 침체한 경기가 언제 호전될지 알 수 없던 때였다. 매체마다 ‘이탈리아의 저커버그가 될 젊은이’라며 뉴스에 ‘희망’을 담았다.

2년 뒤인 2014년 7월 영국 BBC는 다큐멘터리 시리즈 ‘차세대 억만장자(The Next Billionaires)’를 제작하며 아킬리를 후보군에 포함시켰다. 이를 통해 아킬리와 에곰니아가 영어권에 소개됐다. 역시 그의 ‘가능성’에 기반을 둔 내용이었다.

BBC 다큐멘터리가 방송되고 2주 뒤 이탈리아 정부는 아킬리에게 ‘대통령 메달’을 수여했다. 밀라노 지역의 고용을 촉진해 경제에 기여했다며 일종의 훈장을 준 거였다.

그 다음 달에는 미국 경제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가 아킬리를 인터뷰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이 우리 마케팅에 투자하기로 했다. 아직 이탈리아에서만 운영되는 에곰니아를 올 가을 해외로 확대한다. 미국과 영국의 벤처캐피탈 업체와도 투자를 협의 중이다.” 실제 투자가 이뤄졌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당시 에곰니아는 기업회원 700곳, 구직회원 33만명이 등록돼 있었다. 아킬리는 2013년 매출이 50만 유로(당시 환율로 약 8억원)라고 밝혔다. 2년차 벤처기업 치고 작은 액수는 아니지만 장밋빛 미래를 담보할 만한 금액도 아니었다. 그런데, 아킬리는 이미 영화사와 자신의 스토리를 영화로 만드는 계약서에 서명한 터였다.

비즈니스 인사이더 인터뷰에서 그는 재미있는 말을 했다. “지난해 미국 실리콘밸리에 갔었는데,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거기서 나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었다. 미국은 모든 젊은이가 스타트업을 하나씩 갖고 있더라. 이탈리아에선 스타트업을 하면 특별한 사람이 된다.”

마테오 아킬리를 소재로 한 영화 ‘더 스타트업’ 트레일러.


영웅이 필요했던 이탈리아 경제… 만들어진 ‘영웅’

영화가 나오기 전까지 아킬리는 계속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가장 영향력 있는 20대’ 같은 리스트에도 포함됐다. 그러다 ‘더 스타트업’이 마침내 공개됐고, 이는 거꾸로 탐사보도를 촉발했다. 영화에 그려진 아킬리와 에곰니아 이야기가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서부터 신화인지, 여러 매체가 파고들었다.

저커버그를 다룬 영화 ‘소셜네트워크’는 페이스북 창업자들의 갈등과 암투가 골격을 이루고 있다. ‘더 스타트업’은 바이오픽(biopic·전기 영화)이라 불릴 만큼 아킬리의 성공에 초점을 맞췄다. 아마도 이 때문일 것이다. 과도한 포장은 반감을 부르는 법. 정말 그렇게 대단한지 따지고 들자 신화는 금세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현재 에곰니아의 구직회원은 외견상 약 85만명, 기업회원은 1300곳이다. 유럽과 미국 등지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지만 2년 전과 비교해 성장세는 인상적이지 못했다. 비슷한 구인구직 사이트 ‘GiantInfoJobs(자이언트인포잡스)’가 이탈리아에서 월 200만명씩 이용자를 늘려온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에곰니아 사이트에 자랑스레 소개돼 있는 많은 파트너 기관의 실상도 달랐다. 아킬리가 대통령 메달을 받을 만큼 경제에 기여했다는 밀라노시 정부는 에곰니아에 더 이상 구인정보를 올리지 않고 있었다. 최대 파트너 업체였던 이동통신사 보다폰도 마찬가지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에곰니아에 클라우드 서비스를 공급하느라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구인정보는 빼버린 터였다. 구글 이탈리아 지사는 에곰니아와의 파트너 관계를 묻는 기자 질문에 “파트너였는지도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아킬리를 인터뷰하고 그를 ‘가장 영향력 있는 20대’ 리스트에 올렸던 비즈니스 인사이더의 이탈리아 지사도 취재에 나섰다. 아킬리는 에곰니아의 시장가치를 약 1조원이라고 말하곤 했는데,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22일(현지시간) 기사에서 “1조원은 넘버(numbers)가 아니라 에고(ego)에 근거한 수치였던 것 같다”고 보도했다.

2015년 재무제표를 보니 수입이 31만4000유로, 부채가 12만 유로여서 영업이익은 10만 유로(약 1억2000만원)를 조금 웃돌고 순이익은 5000유로(약 600만원)에 불과하더라는 것이다. 아킬리가 홍보와 자금 확보를 위해 진행한 클라우드펀딩 역시 10만 달러를 목표로 했지만 4월 21일 현재 54달러가 모였을 뿐이었다.

이런 현실이 드러나자 영화 ‘더 스타트업’을 만든 알레산드로 달라트리 감독은 “아킬리의 창업 과정을 토대로 하나의 이야기를 창조한 것이지 정확성에 중점을 둔 영화는 아니다”라고 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반성문’처럼 아킬리의 실상을 전하며 “그는 창업을 시도했다 실패한 수많은 젊은이 중 하나일 뿐”이라고 적었다. ‘이탈리안 저커버그’는 영웅이 필요했던 위기의 경제, 흥미로운 이야기를 찾는 언론, 그리고 몇 가지 행운이 더해져 이렇게 만들어졌고, 또 추락하고 말았다.

국민일보 더피플피디아: 마테오 아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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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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