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보험 없다면.. 감기 진료 1만4400원, 맹장 수술 100만원

권정현 KDI(한국개발연구원) 재정·복지정책연구부 연구위원 2017. 4. 2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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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보험 왜 필요하나요]
- 트럼프 케어 입법 실패
오바마 케어 대체하려 했지만 非보험자 1400만명이나 증가
- 의료보험은 국민 건강 버팀목
가입 안 할수록 예방접종 꺼리고 아파도 참아서 큰 병으로 진행
- 우린 전 국민 건강보험에 가입
적게 내고 적게 받는 구조.. 낮은 보장성 문제 해결이 과제

'오바마 케어(care)' 대신 '트럼프 케어'.

권정현 KDI(한국개발연구원) 재정·복지정책연구부 연구위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에서 오바마 케어로 알려진 의료보험개혁법안(Affordable Care Act)을 무효화하고 트럼프 케어(American Health Care Act)로 대체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지난달 트럼프 케어는 법안 통과에 실패하며 대통령 취임 후 첫 입법 실패를 기록했습니다. 미국 대선에서 왜 의료보험 문제가 주요 이슈가 됐던 것일까요?

트럼프 케어 무산 이유는 '의료보험 미적용자 증가' 리스크

미국의 값비싼 의료비 얘기는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수년 전 국내 한 유명 배우가 미국에서 응급 수술을 받은 뒤 병원비만 45만달러, 우리 돈으로 5억원에 달하는 진료비가 나온 일도 있었죠. 보통 사람은 이런 의료비를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엄청난 병원비에 맞닥뜨리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 사람들은 의료보험에 가입하고 보험료를 냅니다. 그런데 이런 보험료가 부담 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특히 젊고 건강한 사람이라면 의료보험에 가입하기보다는 그 돈으로 당장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일지 모릅니다.

오바마 케어는 이런 의료보험 미적용자를 줄이기 위해 빈곤층 지원 의료보험(Medicaid)을 확대하고 민간보험에 가입하는 저소득층에게 지원금을 주는 방식으로 의료보험을 전 국민에 확대 적용하는 내용의 법안입니다. 오바마 케어 도입 전 미국 의료보험 미적용자는 전체 인구의 약 20% 수준이었습니다. 2014년부터 제도가 본격 시행되면서 미국 의료보험 미적용자 수는 2013년 4300만명에서 2015년 2800만명으로 크게 감소했습니다. 트럼프 케어가 공화당 내에서조차 반대를 겪으며 입법이 무산된 주요 이유는 의료보험 미적용자의 증가였습니다. 미국 의회예산처(CBO)에 따르면, 오바마 케어를 트럼프 케어로 대체할 경우 비보험자가 당장 2018년에 1400만명, 10년 내 2400 만명이 늘어난다고 합니다.

의료보험 없으면 의료비 오르고 병원 접근성 낮아져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제도는 전 국민이 꼭 가입해야 하는 의료보험입니다. 제도 유지를 위해 건강보험에 투입되는 재정 지출이 연간 6조원에 달합니다. 오바마 케어 또한 막대한 재정 지출로 많은 비판을 받았는데, 왜 각국 정부가 정책적으로 의료보험 가입을 지원하려는 걸까요?

평소 건강에 자신 있어 병원 문턱조차 넘을 일이 없는 사람이라면 의료보험의 필요성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병원 갈 일도 없는데 매달 꼬박꼬박 내야 하는 건강보험료가 아까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병에 걸려 치료를 받고 진료비를 내야 할 때면 생각이 달라질 겁니다.

감기로 병원에 가는 경우를 생각해 볼까요? 올해 기준으로 동네 의원에 처음 갔을 때 진찰을 받고 지불하는 금액은 4300원 정도입니다. 그런데 건강보험이 없다면 병원비는 3배가 넘는 1만4410원으로 껑충 뜁니다. 맹장 수술 후 이틀간 입원할 때 건강보험 가입 환자가 내는 비용은 20 만원 정도인 반면, 의료보험 미적용자의 경우 100만원에 가까운 병원비를 지불해야 합니다. 만약 암과 같이 치료 비용이 수천만원 단위인 병이라면 병원비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불어납니다.

가격이 오르면 물건 사는 사람이 줄어드는 것처럼 병원비가 오를수록 병원 가는 사람은 줄어듭니다. 의료보험 미적용 환자들은 점점 병원에 가기 어려워져 이른바 '의료 접근성'이 낮아집니다. 동네 의원에 갈 수 있느냐 없느냐는 가장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 이용의 문제이기 때문에 의료 접근성의 중요한 판단 기준입니다.

실제 미국에서 의료보험 미적용자들이 동네 의원을 방문하는 비율은 의료보험 가입자에 비해 매우 낮게 나타납니다. 반면 비용이 큰 응급실 이용 비율은 의료보험 미적용자들이 더 높습니다. 감기를 제때 치료하지 못해 폐렴으로 악화되고 나서야 병원을 찾고, 제때 치료받았다면 필요 없었을 입원으로 더 많은 의료비를 지출하기도 합니다.

의료보험은 국가 건강 버팀목… 보장성 높이는 것이 과제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은 단순한 개인 문제가 아닙니다. 개인의 건강이 곧 사회문제로 확대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처럼 전염성 질환이 발생하는 경우를 가정해 보겠습니다. 의료보험 미가입자들은 가입자들에 비해 예방접종을 훨씬 적게 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경제적 문제로 아파도 병원에 가기 힘든 이들에게 예방접종은 사치일 수 있습니다. 예방접종을 받지 않거나 병에 걸려도 적절한 치료를 받기 힘든 사람이 늘어날수록 사회 전체가 전염병 확산에 취약해집니다. 개인의 건강 문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 비용이 늘어나게 만드는 겁니다.

의료보험 문제는 사회경제적 형평성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의료보험 미가입자는 주로 소득수준이 낮은 이들입니다. 이런 저소득 계층이 의료보험이 없어 병에 걸렸을 때 제때 치료받지 못한다면 건강 상태는 더욱 취약해집니다. 이로 인해 노동생산성이 떨어지고 노동 공급 자체가 어려워지면 소득수준은 더욱 떨어지고, 나아가 사회 전반의 소득 불평등이 심해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의료보험 적용을 확대하는 것은 의료 접근성을 높여 국민 건강을 증진시키고 사회적 비용을 감소시킬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막대한 재정 지출에도 의료개혁을 통해 의료보험 미적용자를 줄이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 의료보험 제도는 성공적인 제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1977년 건강보험을 처음 도입한 뒤 12년 만에 전 국민을 포괄하는 의료보험 제도를 만들어냈습니다. 건강보험을 통해 전반적인 국민 건강 개선이 이뤄졌고, 큰 질병이 아니라면 많은 이가 어려움 없이 병원을 방문할 수 있습니다.

다만 과제도 남아있습니다. 빠른 시간 내 모든 국민을 아우르려다 보니 '적게 내고 적게 받는' 저부담 저급여 건강보험 구조를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건강보험의 '낮은 보장성' 문제가 발생했고, 현재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떠오른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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