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시민의 선택] "문재인 되는 건 좀 그런데.. '홍찍문' 되면 어쩌지"

대구 | 허남설·김지환 기자 2017. 4. 23. 22:3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ㆍ대선 르포-'보수의 심장' 대구 표심

지난 18일 대구 중구 서문시장 앞 육교를 가득 메운 시민들이 한 대선후보의 유세를 지켜보고 있다. 대구|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보수의 심장' 대구는 여전히 혼란스러워했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야-야 구도' 대선 분위기에 표심이 갈팡질팡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사태 여파로 자유한국당·바른정당 등 구여권이 휘청거리는 상황에서 대구 민심은 마음을 줄 확실한 대선후보를 여전히 갈망하는 듯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저울질했던 대구 표심이 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눈여겨보기 시작하는 분위기도 감지됐다.

안 후보와 홍 후보 사이에서 고민하는 대구 민심의 바닥엔 '반문(문재인) 정서'가 깔려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만 아니면 된다"는 말이 유행어처럼 들려왔고, 안 후보와 홍 후보 중 누가 문 후보를 막을 수 있을지에 관심이 집중됐다. 특히 문 후보 안보관에 대한 신뢰가 낮았다.

한낮 기온이 이미 25도를 넘나들기 시작한 지난 22일 대구 중구 서문시장. 이곳은 대구를 방문하는 대선후보들이 찾아가는 대구의 대표적 전통시장이다. 서문시장 상인 홍민식씨(52)는 "문재인, 이 양반은 대통령해서는 안된다고 본다"며 말문을 열었다.

"맨날 '적폐, 적폐' 하는데 민주당이 자기들끼리 계파 싸움하는 건 적폐가 아닙니까. 자기 당에도 적폐가 있는데 상대방한테만 적폐라고 하는 건 국민을 우롱하고 무시하는 겁니다. 그런 사람은 대통령감이 아니죠. 대통령이라면 포용력이 좀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상인 이모씨(46)는 지지하는 후보가 딱히 없다면서도 "북한에 돈을 퍼줄 사람"이라며 문 후보를 성토했다. 공무원 김모씨(36·중구)는 "북한이 주적이라고 얘기도 못하는 문재인은 안된다"고 잘라 말했다.

동구 불로시장에서 만난 상인 백모씨(75)는 "노무현(전 대통령)이 10원도 안 받았다고 하는 '거짓말 박사'가 무슨 대통령 선거에 나오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성로의 한 50대 상인은 "우리 대구에서 문재인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모두 절대 표심을 바꾸지 않는, 원래 야당 성향이 강한 사람들뿐"이라고 말했다. 수성도서관 근처에서 만난 취업준비생 조모씨(24)는 "문 후보가 대통령을 끌어내리면서 촛불집회에도 직접 참가하는 걸 보고 권력에 너무 집착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며 "공무원을 늘린다는 일자리 공약도 국민 세금 부담을 늘릴 게 뻔해 반대한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대구 민심은 문 후보를 막을 대안을 고민하고 있었다. 시민들의 답변은 크게 홍 후보와 안 후보로 나뉘었다. 불로시장 상인 백씨는 "사람이 정직하다. 비리가 없다. 자기가 세탁기에 넣고 다 돌려버린다고 하지 않나. 국회의원도 여러 번 해서 능력이 있다"면서 홍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동구 신암공원에서 만난 유통업자 최진호씨(46)는 "홍준표는 검사 출신이라서 사람이 물렁하지 않다"며 "촛불과 태극기로 갈라져 뒤숭숭한 나라 질서를 바로잡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직장인 안모씨(27·동구)는 "홍준표가 어느 정도 강단도 있고 말하는 게 시원시원해서 좋다"고 말했다. 공무원 김씨는 "우리 부모님과 처가 어르신 모두 홍준표 지지"라며 "대구에선 (홍 후보가) 단연 인기 1등"이라고 했다.

안 후보 지지층도 적지 않았다. 안 후보의 '보수적 안보관'과 개인적 능력을 높이 평가한다는 것이다. 특히 20~30대 젊은층에서 비교적 안 후보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다. 전문직 종사자라고 소개한 신모씨(36·중구)는 "정치성향은 중도지만 안보는 보수가 맞다고 생각한다"면서 "집권했을 때 나라를 망친 한국당을 제외하고 나면 대안은 안 후보"라고 말했다. 주부 박모씨(61·수성구)는 "안 후보는 아무래도 아직 때가 덜 묻은 것 같다"고 했다. 택시기사 박기봉씨(66)는 "안 후보는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도 개발하고 머리가 비상한 사람"이라면서 안 후보에게 호감을 표시했다.

사표론 등이 얽히면서 대구 시민들의 머릿속은 외부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듯했다. 특히 지역 민심은 '홍찍문(홍준표를 찍으면 문재인이 대통령 된다)'과 '박지원(국민의당 대표) 상왕론' 프레임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일단 '홍찍문' 논리는 상당히 퍼져 있었다. 서문시장 상인 홍씨는 "홍 후보가 제일 괜찮다"면서도 "홍 후보 지지율이 아직 낮아서 홍 후보를 지지하면 문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줄까봐 바로 그 지점이 고민"이라고 털어놨다.

택시기사 박씨는 "안철수가 문재인과 격차를 5% 안으로 좁히면 안철수를 찍을 것"이라며 구체적인 계산도 내놨다. 안 후보를 지지한다고 했던 전문직 신씨는 "주변에서 홍준표를 지지하려다 어차피 당선 가능성이 떨어진다고 보고 지금은 다 안철수로 옮겨갔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당과 바른정당에서 집중적으로 퍼뜨린 '박지원 상왕론'을 거론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택시기사 박씨는 "안 후보를 찍고 싶은데 박 대표가 안 후보 뒤에 딱 버티고 있어서 싫다"며 "지금이라도 박 대표가 빠져주면 안 후보 지지율이 더 올라갈 것 같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생 조씨는 "안 후보는 친북 성향이 강한 박 대표가 뒤에 있어서 싫다"면서 박 대표의 이른바 '친북 발언'을 조목조목 열거했다. 안 후보 지지자 주부 박모씨(61)는 "주변에서 안 후보를 지지하고 싶은데 '박 대표가 있으면 문 후보와 다를 바가 없다'면서 홍 후보를 지지한다고 한다"고 말했다. 박씨는 그러면서 "우리 아들은 요지부동 문재인이 대통령이라고 한다. 그래서 싸우다 요즘은 얘기도 안 한다"고 했다.

안보 이슈가 불거지는 것도 안 후보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분위기다. 직장인 안씨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는 안보를 위해 무조건 배치해야 하는데 안 후보는 오락가락하는 것 같다. 보수표를 얻기 위해 수를 쓰는 게 뻔히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최근 TV토론회에서의 활약이 긍정적 평가를 얻었지만, 대구에선 '배신자' 프레임이 여전히 강했다.

동성로에서 만난 대학생 이모씨(26)는 "유 후보가 TV토론에서 유창하게 말을 잘해서 호감이 갔다"면서도 "찍겠다는 건 아니다. 주변에서 찍어도 안될 것 같다고 그러던데…"라고 했다. 50대 상인은 "아이고, 자기 주인 배신한 사람을…개도 자기 주인은 배신 안 한다 아닙니까"라며 혀를 찼다. 동성로에서 만난 30대 상인은 "홍 후보도 지지율이 낮은데, 유 후보는 더 낮아서 찍어도 당선 가능성이 없다"고 말했다.

<대구 | 허남설·김지환 기자 nsheo@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