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선]개방과 폐쇄 사이..'프랑스의 정체성'을 묻다
[경향신문] ㆍ1차 투표 치른 대선, ‘국가 정체성’ 방향 결정 가늠자로
ㆍ르펜·피용 “프랑스 우선”, 마크롱 “열린 프랑스” 강조
23일(현지시간) 1차 투표가 치러진 올해 프랑스 대선은 무엇보다 국가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선거다. 테러 위협과 이민자 문제, 양극화와 경제정책, 유럽연합통합 및 세계화에 대한 해석을 놓고 후보마다 지난 몇 달 동안 날선 토론을 벌여왔지만 그 핵심을 꿰뚫는 열쇳말은 단연 ‘국가의 정체성’이다. 주요 대선후보 4명의 발언과 공약에 드러난 4인4색의 정체성은 1차 투표 결과와 상관없이 향후 프랑스가 나아갈 길에 대한 방향성을 가늠해볼 수 있는 잣대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정체성을 가장 앞세운 극우 민족전선(FN)의 마린 르펜 후보(48)는 “프랑스 문명이 위기에 처해 있다”고 경고음을 울려왔다. 그는 무슬림 이민자들 탓에 프랑스의 가톨릭 전통이 허물어지고 있다면서 ‘프랑스적인 삶’의 복원을 주장해왔다.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군사부문 탈퇴를 주장해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도 ‘전진!(앙마르슈!)’의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39)는 이번 선거를 ‘열린 프랑스’와 ‘닫힌 프랑스’ 사이에서 선택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마크롱은 “프랑스 문화의 근본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개방”이라면서 경직되고 편협한 르펜의 정체성을 비판해왔다. 그는 “프랑스 문화는 스스로를 초월해 늘 새로운 미지의 세계에 도달해왔다”고 강조하고 있다.
마크롱이 말하는 개방은 바로 유로화를 유지하고 세계화를 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메시지의 또 다른 표현이다. 경제적 평등의 기회를 제공하되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비롯한 신자유주의 개혁을 더욱 가속화해 ‘전진’하자는 것이 경제장관 출신이자, 로스차일드 은행 간부 출신인 그의 제안이다.
중도우파 프랑수아 피용 후보(63)가 꿈꾸는 프랑스의 정체성은 르펜의 정체성과 유사하다. 마크롱의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프랑스’를 배격하고 프랑스가 생래적으로 기독교(가톨릭) 문명에 기초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외국인 이민자 및 망명신청자들이 프랑스에서 살고 싶으면 프랑스 문화에 동화해야 한다는 소신도 갖고 있다. 하지만 경제적으론 공무원 50만명 감축과 부유세 및 주 35시간 근로제 등의 폐지를 주장, 프랑스 사회가 보다 효율적인 사회로 나가야 한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극좌연대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프랑스 앵수미즈)’의 장 뤼크 멜랑숑이 생각하는 정체성은 다른 후보들과 결이 다르다. 그는 프랑스인들이 민족적으로 ‘골족의 후예’라기보다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으로 탄생한 ‘시민’의 후예라고 해석한다. 프랑스 좌파의 전통이다. 혁명정신인 자유·평등·박애가 바로 정체성이라는 견해다. 멜랑숑은 정체성이라는 화두 자체가 피용, 마크롱 같은 자유주의자들이 만들어낸 개념이라면서 공화주의 전통이 강조하는 “인간적·혁명적·세속적·사회적 정체성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김진호 선임기자 j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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