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계자가 '창업자 정신'없으면 전문경영인 체제도 대안
◆ 한국형 국민기업 키우자 ④ / 전문경영인에게 맡겨도 된다 ◆
독일 최대 철강기업인 티센크루프는 크루프 가문이 5대에 걸쳐 이룩한 독일 산업화 역사를 전문경영인이 물려받아 200년 가업의 명맥을 잇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크루프사는 1967년 마지막 상속자가 사망하며 가족 기업의 형태를 탈피했다. 크루프사의 마지막 상속자가 아들의 연금을 제외한 전 재산을 재단에 기부해 전문경영인에게 운영 전권을 맡겼다. 현재 티센크루프(1999년 티센과 크루프사가 합병)의 최대주주(지분율 23%)는 그의 이름을 딴 알프리트 폰 볼렌 운트 할바흐(AKBH) 재단이다.
세대를 내려오며 다소 주춤했던 티센크루프는 전문경영 체제로 옷을 갈아입으며 무섭게 변신했다. 최근 들어서는 철강기업 티를 벗고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최첨단 기술기업으로 변신했다. 지멘스 출신의 히싱어 대표는 2011년 CEO로 선임되자마자 철강사업의 4분의 1을 정리했다. 그는 "창업주가 시작한 사업도 수익성이 떨어진다면 과감하게 접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그게 창업주의 리더십을 이어받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과거 크루프사가 기관차 바퀴를 발명해 철도의 시대를 열었다면 현재의 티센크루프는 증강현실과 빅데이터 기술을 도입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공장을 만들고 있다는 설명이다. 시대가 바뀌며 빛바랜 '창업자의 야성'을 전도유망한 CEO가 채우며 가문의 역사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창업가의 영향력을 인정하면서도 전문성 있는 새로운 인재를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려는 제도적인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설립 25년 만에 시가총액 300조원을 자랑하는 초대형 IT기업으로 성장한 알리바바는 '알리바바 파트너십'이라는 합의체를 이사회 위에 두는 독특한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알리바바 파트너십은 조직의 비전 설정과 경영 전략을 짜며, 이사회 후보를 직접 선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는 알리바바 내 최고 의사결정기구다. 3월 말 기준 알리바바 파트너십 구성원은 총 36명이다. 회원의 80% 이상이 1970년 이후 출생자이며, 12명이 여성이다.
X는 본인의 나이, Y는 알리바바에서 근무한 연수를 의미한다. 이 공식에 따라 X와 Y값을 더한 수치가 60을 넘으면 합의체에서 떠나 명예 고문으로 활동하거나 완전히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야 한다. 다만 마윈 회장을 비롯한 창업자 5명은 '영구 파트너'로서 퇴직 공식을 적용받지 않는다.
이 공식에 따라 지난해 8월 당시 47세에 불과한 루자오시(陸兆禧) 알리바바 파트너십 부회장이 파트너십에서 탈퇴하고, 징셴둥 앤트파이낸셜 총재가 새로운 멤버로 합류했다. 루 전 부회장은 지난 2004년 알리페이를 설립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인물이다. 루 전 부회장은 "조직을 신선하게 유지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는 경영 토양을 만들기 위해서는 고인물은 퍼내고 깨끗한 물을 수혈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윈 알리바바 회장은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많은 기업들이 소수의 설립자에게 의사결정이 집중돼 있는 의결권차등화 소유권 구조를 갖추고 있는데, 알리바바는 매년 신규 파트너를 '파트너십 멤버'로 영입해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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