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영 칼럼] 정치 혐오 부르는 '아무말 대잔치'

박미영 2017. 4. 23.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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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자를 뜻하는 'candidate'는 흰색을 의미하는 라틴어 '칸디다(candida)'에서 파생됐다.

고대 로마시대 집정관에 입후보한 사람들이 대중의 신망을 얻기 위해 '토가'라는 흰색 장옷을 입고 선거에 임했는데, 이 흰색 옷은 속임수·거짓·변절 없이 정직한 사람만이 선거에 임할 수 있다는 일종의 '자격'과 같은 것이다.

"선거전은 무책임한 사람들이 이긴다. 그러나 그 승리는 항상 상대 편의 것"이라는 미국의 36대 대통령 L.B. 존슨의 말을 새겨들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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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영 정경부 차장
박미영 정경부 차장

후보자를 뜻하는 'candidate'는 흰색을 의미하는 라틴어 '칸디다(candida)'에서 파생됐다.

고대 로마시대 집정관에 입후보한 사람들이 대중의 신망을 얻기 위해 '토가'라는 흰색 장옷을 입고 선거에 임했는데, 이 흰색 옷은 속임수·거짓·변절 없이 정직한 사람만이 선거에 임할 수 있다는 일종의 '자격'과 같은 것이다. 선거 후 당선자에게는 그 흰옷 소매에 푸른 끝동을 달아주는데, 이는 진실·공평·화해라는 가치를 새기고 소외 받는 사람들 편에서 일하라는 '징표'다.

15일 후면 치러질 '5·9 장미대선'에는 역대 최대 규모인 15명의 후보가 뛰어들었다. 그런데 이들이 과연 '흰옷'을 입고 연단에 설 자격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선거판도가 양강 구도, 혹은 5자 구도로 굳어지자 "정치인들의 언어는 자고 일어나면 바뀐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후보자들은 말바꾸기를 밥먹 듯 하고 있다.

또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막말과 네거티브 공방이 도를 넘어섰다. 대선 때마다 네거티브 공방과 막말은 등장하기 마련이다. 네거티브 전략은 투입되는 비용에 비해 그 효과가 매우 커서 표로 이어지는 '생산성'이 무척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19대 대선에서는 그 여느 때보다 귀를 의심할 정도로 살벌한 발언들이 대거 쏟아지고 있다.

'불안 세력' '적폐 세력' '배신자'에서 시작된 막말 퍼레이드는 "문재인은 DJ(고 김대중 대통령)를 골로 보냈다" "문재인이 당선되면 한국 대통령은 김정은" "김정은이 나를(안철수)무서워한다" "(당선 못하면)낙동강에 빠져죽어야 한다" 등으로 강도를 점점 더해갔다. 오죽했으면 한 시민단체가 '막말 신고센터'를 운영하겠다고 했겠나.

'호남 1·2중대', '전라도당', '부산대통령' 등의 망국적 지역 감정을 선동하는 발언도 다시 등장했다.

당초 이번 대선은 지역구도와 이념 대결을 넘어서는 새로운 선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았다. 그러나 선거운동이 시작되자마자 지역 정서에 기대 몰표를 얻으려는 선동적 발언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품격과 도덕성은 온데간데 없이 권력을 향한 '난타전'에 매몰돼 정치인들이 한국 정치 발전의 기회를 저버리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정책 대결의 장이 될 것이라 기대했던 후보자 합동 TV토론회도 '아무말 대잔치'라는 조롱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번 선거는 현직 대통령 탄핵이라는 비상상황에서 치러지는 선거인데도, 국민들에게 안정감을 줘야 할 후보자들이 오히려 정치 불신과 혐오감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유권자들이 말초적인 네거티브 공방에 빠져들수록 정책은 이슈가 되지 못하고 뒷전으로 밀려나기 마련이다. 네거티브를 뛰어넘을 만큼 획기적이거나, 나라 곳간을 내돈 쓰듯 내놓는 선심성 공약이 아닌 이상 어지간한 정책은 관심을 끌 수가 없다.

19대 대선에서는 그마저도 내놓은 정책과 공약은 후보자들마다 베낀 듯 유사하거나 급조된 것들이어서, 유권자들은 허술한 공약집을 받아 안고 후보자들에 대한 이미지와 소문 만으로 선택을 강요당하는 꼴이다.

민주주의는 정책과 공약으로 대중을 설득해 자신에게 투표하도록 하는 것이 정도(定道)다. 그러나 선거 기간이 짧다는 명분 뒤에 숨어 정책과 공약 대신 상대를 헐뜯어서 얻는 표로 당선된다면 진정한 승리라 할 수 없다.

"선거전은 무책임한 사람들이 이긴다. 그러나 그 승리는 항상 상대 편의 것"이라는 미국의 36대 대통령 L.B. 존슨의 말을 새겨들어야 할 때다.

로마시대 집정관처럼 정직을 상징하는 흰옷 소매에 푸른 끝동을 달고 당당하게 청와대에 입성하려면 남은 10여 일이라도 '정직한 입'과 '품격'을 갖추고 유권자들을 만나러 가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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