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복무, 안타까운 안철수 후보

이용석 2017. 4. 23.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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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정부, 병역거부 감옥행 해결해야

[오마이뉴스 글:이용석, 편집:김대홍]

"저 내일 구속돼요."

전화기 너머 목소리는 의외로 덤덤했다. 작년에 '전쟁없는세상'에서 진행한 예비병역거부자 모임에 딱 한 번 참석했던 김진유 님이었다. 첫모임만 나오고 그 뒤로는 모임에 오질 않아서 병역거부를 포기한 줄 알고 있었다. 김진유 님의 전화를 받을 때 나는 페이스북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병역거부자 김진만 후원회 페이지. 작년 4월 병역거부를 한 김진만 님이 오늘(4월 18일) 부산구치소에 수감되었다는 글이 올라와 있다. 하루 차이로 두 명의 병역거부자가 구속된 것이다.

▲ 김진만 병역거부 기자회견 부산 알바노조에서 활동하던 김진만 씨는 작년 4월 19일 병역거부를 선언했고, 1심 재판과 2심 재판을 거쳐 실형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병역거부를 선언한 지 정확히 1년 뒤인 2017년 4월 18일 부산구치소에 수감되었다.
ⓒ 전쟁없는세상
사실 특별한 일이 아니다. 해마다 적게는 400여 명에서 많게는 700여 명이 병역거부로 구속된다. 공휴일까지 치더라도 하루에 최소 한 명 이상이 병역거부로 구속되는 셈이다.

문재인 심상정은 대체복무 찬성, 안철수는 사회적 합의 필요

19대 대통령 선거 후보들은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도에 대해 어떤 입장일까? 참여연대와 한국일보가 함께 진행한 대선후보 정책 질의에서 문재인 후보와 심상정 후보는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도를 모두 찬성했다. 문재인 후보는 지난 대선 때도 이미 대체복무 도입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정의당은 일관되게 대체복무제도를 옹호해왔으니 심상정 후보의 입장도 예상한 대로였다.

유승민 후보는 '양심적 병역거부' 개념 자체는 동의하지 않는다면서도 엄격한 법적 조건을 충족한다는 전제로 대체복무제도가 가능하다고 답했다. 정통 보수를 주창하는 후보가 어쨌든 대체복무제도 도입 자체를 가능하다고 본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안타까운 건 안철수 후보였다.

안철수 후보는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며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보수층에 어필하기 위한 정치적 수사로 볼 수도 있지만, 천정배 전 법무부장관과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등 참여정부 인사들이 포진한 국민의당에서 10년전 대체복무제도를 시행하기로 결정한 참여정부의 입장보다도 후퇴한 의견이 나온 것이다. 아쉬움도 있지만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정치권에서 이 정도의 입장이 나온 것도 예전보다는 진일보한 면을 보여준다.

병역거부 또 무죄판결, 올해에만 6건

정치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론에 덜 민감한 사법부에서는 이미 변화의 바람이 감지되고 있다. 지난 4월 10일 서울 북부지방법원에서는 여호와의증인 병역거부자에게 무죄판결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법관이 국민에 의해 선거로 선출되지 않는 까닭은 여론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함이라고 하면서, 법원이 인권 보루로서 적극적으로 법을 해석하고 적용해야 한다고 판결문을 통해서 밝혔다.

판결문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국방의 의무에 대한 해석이다. 재판부는 국방의 의무를 병역참가 의무로 좁게 해석할 이유가 없고, 오히려 평화유지 협력의무를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하며, 평화협력 의무를 수행할 적극적인 의사가 있는 사람에게 좁은 범위의 군입대 만을 강요하는 것은 법률 목적의 정당성도 없다고 명시했다.

▲ 홍정훈 병역거부 선언 기자회견  참여연대 간사 홍정훈은 2016년 12월13일 폭력을 내면화하는 군대를 거부한다며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홍정훈은 1심 재판을 받는 중이며 4월 20일 선고 결과에 따라 구속여부가 결정된다.
ⓒ 전쟁없는세상
이번 판결은 올해 들어 여섯 번째 병역거부 무죄 판결이다. 2015년 이후로 병역거부 무죄 판결이 급증했다. 상급심과 다른 판결을 내기 꺼려하는 보수적인 사법부의 속성을 고려하면 병역거부 무죄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는 건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헌법재판소에서 두 차례나 병역법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결정이 났지만, 일선 판사들이 그 결정에 반하는 판결을 내리고 있는 셈이다.

병역거부자이자인 임재성 변호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이를 가리켜 "양심적 유죄 거부"라고 표현했다. 헌법재판소는 현재 병역법에 대한 세 번째 결정을 앞두고 있다. 작년 하반기 국정감사 때 박한철 전 헌재소장이 자신의 임기 내에 병역법에 대한 위헌 여부를 결정할 거라고 이야기 했지만 탄핵 심판이 시작되면서 자동으로 연기가 되었다. 아마도 올해 안에 결정이 날 것이다.

사람을 죽이지 않겠다는 죄

문득 내 수감시절이 생각난다. 나는 병역거부로 2006년 8월부터 2007년 10월까지 인천구치소, 군산교도소, 수원구치소, 청주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청주교도소로 이감 갔을 때, 교도소 분류과장은 이곳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있던 곳이라고 자랑을 했다. 청주교도소에서 나는 직원이발소와 보안과 청소 일을 했다.

자격증이 있는 재소자들이 이발사를 하고 나와 여호와의증인들은 사실상 청소 담당이었다. 0.95평짜리 작은 방에서 살았는데, 나는 직원이발 작업장 반장과 방을 썼다. 그는 술 마시다가 싸운 상대를 쫓아가서 칼로 찔러 죽여 살인죄로 징역을 살고 있었다. 나는 살인하지 않겠다고, 살인하는 기술을 배우지 않겠다고 해서 감옥에 갔다. 사람을 죽여서 죄를 지은 사람과 사람을 죽이지 않겠다고 해서 죄를 지은 사람이 0.95평 작은 방에 나란히 누워 있었다.

▲ 사람을 죽이지 않겠다는 죄 1차세계대전 당시 만평. 병역거부로 감옥에 갇힌 사람이 살인죄로 갇힌 죄수를 보면서 "당신은 살인을 해서 이곳에 있나요? 재밌네요, 나는 살인하지 않겠다고 해서 여기 있는데"라고 말하고 있다.
ⓒ 저작권 미상
5월 9일 대통령 선거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이전 정부보다는 대체복무제도에 좀 더 우호적일 것이다. 20대 국회에는 이미 대체복무제를 골자로 한 병역법 개정안이 발의되어 있다. 기다렸던 헌법재판소의 병역법에 대한 위헌 여부도 조만간 결정이 날 것이다. 올해 6월에는 유엔에서 전 세계 병역거부 리포트를 발간할 예정이고, 가을에는 유엔 국가별 인권상황정기검토((Universal Periodic Review, UPR)가 있을 예정이다.

병역거부자를 감옥에 가두어야만 지켜지는 평화란 과연 어떤 가치를 담고 있는 걸일까? 사람을 죽이지 않겠다는 신념을 처벌하는 국가란 도대체 국민들의 무엇을 지키는 것일까? 내일 구속된다는 덤덤한 전화를 대체 언제까지 받아야 하는 걸까? 어쩌면 병역거부 문제는 국가가 직면한 무수한 갈등과 문제들 가운데 가장 해결하기 쉬운 축에 속한다.

국제 사회는 한결 같이 한국 정부에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우리가 참고할 만한 외국 사례도 충분하다. 해마다 400명이 넘는 젊은이를 감옥으로 보낼지, 그들에게 우리 사회를 위한 다른 기여를 마련할지는 정부와 국회의 의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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