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관광가이드의 눈물' 사드보복에 대리기사·알바로 생계

이지용 입력 2017. 4. 23.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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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서 활동 중국인들도 피해 '자승자박'

경력 7년차 관광가이드 최모(51)씨는 최근부터 인천의 한 주유소에서 주유원으로 일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사드 보복 조치로 한국을 찾는 단체관광객이 급감한 이후 일거리가 '뚝' 끊겼기 때문이다.

최씨는 "미국발 금융위기 당시보다 지금 상황이 더 나쁜 것 같다"며 "당장 생계가 걱정돼 아는 사람 소개로 주유원 아르바이트 자리를 겨우 구했다"고 말했다.

최씨와 예전에 함께 일했던 또 다른 관광가이드 고모씨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그는 2~3주에 한번 씩 있을까 말까 한 가이드 일을 무작정 기다릴 수 없어 지난달부터 '대리운전'을 뛰고 있다. 고씨는 "입에 풀칠이라도 해야 하니 닥치는 대로 일하고 있다"고 푸념했다.

중국 정부의 사드 보복 조치로 직격탄을 맞은 관광통역안내사(가이드)들이 대리운전·아르바이트 등 '투잡' 전선으로 내몰리고 있다. 갑작스럽게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소득이 끊어진데다 여행사들의 줄폐업 사태로 정산금도 받지 못하고 있다.

최근 한국관광통역안내사협회가 최근 국내 거주 중국어 가이드 41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사드 관련 피해 및 대안 마련 설문조사' 결과 이들은 중국의 사드보복 조치가 본격화된 3월 이후 생계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가이드들 중 대다수는 자녀를 부양하고 있는 40대 이상(40대 47%, 50대 이상 19%)이라 가계 전체의 생계곤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설문 결과에 따르면 가이드들은 60% 이상은 자신이 속해 있는 여행사의 휴폐업에 돌입하면서 일자리와 함께 소득이 뚝 끊긴 것으로 나타났다. 소속 여행사가 여전히 영업중이라고 답한 비율은 25%뿐이었다. 응답자 중 97% 가 '최근 사드배치 후폭풍 영향을 받고 있다'고 응답했고, 83%는 영향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가뜩이나 영세한 여행사들이 줄도산하면서 가이드 1인당 수백만원에 달하는 정산금을 받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정산금이란 가이드들이 관광객들을 데리고 일정을 소화하면서 본인 돈으로 먼저 지불한 선급금을 의미한다. 관광지 입장료, 주차비, 톨게이트비, 식대 일부 등이 포함된다. 응답자 중 51%가 "최소 100만원 이상의 정산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으며, 정산금 피해가 400만원에 달하는 가이드들도 상당수(41명·10%)였다.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가 아닌 사업자 자격이어서 퇴직급여나 실업급여도 받지 못한다. 4대 보험에 가입돼있는 이들은 전체 중 10%에 불과하다. 전속으로 일하고 있는 이들 중에서도 여행사로부터 기본급을 받는 비율은 3%(2016년 협회 조사)에 불과하다.

이번 사태로 조선족 등 국내 거주 중국인들의 피해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번 설문에 응한 관광통역안내사들 중 31%(131명)가 중국 국적자들이었다. 휴·폐업한 여행사들 중 상당수는 중국계 여행사로 조선족을 비롯한 한국 거주 중국인들로 운영돼 왔다. 한 중국인 가이드는 "우리는 한국인 가이드들에 비해 다른 일자리를 구하기 더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같은 상황이 좀더 가면 가족들 생계를 걱정해야 할 형편"이라고 하소연했다.

최근 정부가 동남아 관광객 유치 마케팅을 지원하는 쪽으로 시장 다변화를 유도하고 있지만 가이드들 사이에는 여전히 우려 목소리가 크다. '저가 덤핑'으로 불리는 관광업계의 과당경쟁이 여전하고 구조적 문제 개선이 없다면 또 다른 위기가 불보듯 뻔하다는 지적이 많다. 실제로 중국인 단체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던 여행사들이 대거 동남아 시장으로 갈아타면서 동남아 관광상품에서도 저가 덤핑이 확산되고 있다. 항공비를 제외한 여행상품 비용을 반값으로 깎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와함께 양질의 관광서비스 제공보다는 쇼핑 강요 등 여행업계 고질적 병폐도 심화되고 있다.

가이드 김 모(42)씨는 "여행사에서 정해준 쇼핑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손님 1명당 2만원~5만원 벌금을 부과하는 경우도 허다하다"며 "유커들이 사드보복으로 빠진 탓도 있지만 이같은 구조적 문제 때문에 이미 중국 관광객 사이에선 한국관광 거품이 빠지는 중이었다"고 지적했다. 김강열 한국관광통역안내사협회 사무국장은 "일부 여행사들은 가이드들로부터 미리 보증금 형식으로 돈을 받아놓은 뒤, 가이드의 쇼핑 매출 부족분을 '벌금' 형식으로 보증금에서 차감시켜왔다"고 덧붙였다.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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