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집 아이는 낙태하고, 부자의 아이는 키워라?

김효정 입력 2017. 4. 23.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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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 영화의 정치학 5] 1910년대 미국 낙태 영화의 성윤리 <내 아이들은 어디 있는가?>

[오마이뉴스김효정 기자]

1910년대의 미국은 급변하는 사회였다. 긴장과 불안도 고조됐다. 대외적으로는 1차 세계대전 후 대규모의 이민자가 유입됐고, 국내적으로는 여성이 참정권을 얻게 되면서 기존의 노동집약적 직업이 아닌 화이트칼라 직업의 여성들이 늘었다. 

여성들의 직업 변화는 그들의 소비와 사회참여를 증가시켰다.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다소 향상되면서 피임 지지운동도 시작됐다. 이 시기의 피임 지지 운동은 페미니즘 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피임을 전면적으로 금지했던 기독교적 윤리와 남성 중심적 규제에 항의하고 여성의 (아이를 낳지 않을) 권리를 확장하고자 했던 상징적인 운동이었다.

이 운동의 창시자인, 간호사 출신의 급진적 페미니스트 마거릿 생어는 <여성 반항자들>(The Women Rebel)이라는 잡지를 출간해 산아제한운동을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그녀의 행보는 피임을 불법화했던 컴스톡법(The Comstock Law)에 의하면 범법행위였다. 1915년, 이를 처벌하기 위한 재판이 열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재판을 통해 생어는 폭넓은 명성과 지지자를 얻게 되었다.

 로이스 웨버 감독
ⓒ 위키커먼스
여성의 피임할 권리

마거릿 생어의 투쟁은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많은 페미니스트와 사회개혁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 중 한 명은 할리우드 최초의 여성감독 중 한 명으로 촉망받던 로이스 웨버(Lois Weber)다. 그녀는 당시 할리우드를 통틀어 가장 성공적인 감독 중 한 명이었다. 그리피스(D.W. Griffith)나 드 밀(Cecil De Mille)과 함께 초기 미국영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손꼽힌다. 1917년 기준,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가장 몸값이 비싼 감독으로 기록됐다. 또한 영화 제작시 전권(배우와 스토리 주제 선택, 대본 집필)을 행사하는,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권력을 가진 감독이기도 했다. 웨버는 사회의 문제적 이슈들에 관심이 많았다. 사형제도, 가난, 여성 노동인권 등 무게 있는 사회 문제들에 대한 영화들을 만들었다. 그녀는 "사회적 진보가 영화를 통해서 이루어 질 수 있고 그것이 영화의 참된 의무이기도 하다"고 믿었다.  

그러한 그녀가 동시대에서 가장 큰 화두 중 하나였던 마거릿 생어의 피임 합법 투쟁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필연적이었을 것이다. 웨버는 마거릿 생어 사건을 기반으로 1916년 <내 아이들은 어디 있는가?>(Where Are My Children?)와 다음 해 <요람을 흔드는 손>(The Hand that Rocks the Cradle)이라는 낙태 관련 영화 두 편을 연달아 제작한다. 그 중 첫 번째 작품인 <내 아이들은 어디 있는가?>는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고, 그 이후 낙태를 다루는 많은 영화들을 양산하게 했다. 이러한 영화들은 이른바, '낙태 장르'(abortion films)로 자리 잡게 된다.

웨버는 당시 금기시됐던 낙태와 피임, 혼전 관계 등을 전면에 다룬 <내 아이들은 어디 있는가?>로 검열기관 중 가장 큰 권력을 행사하던 뉴욕영화검열위원회(New York Board of Film Censorship)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피임과 낙태를 영화적 주제로 사용한 이 영화가 기독교 단체들로 이뤄진 검열위원회의 제재를 벗어날 리 없었다.

그러나 검열단체와의 마찰로 펜실베이니아를 포함한 몇 개 주에서 상영금지를 당했음에도 영화는 뉴욕과 애틀랜틱시티 같은 메이저 도시들에서 만석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했다. 또한 이 영화가 할리우드의 몇 안 되던 여성감독이 만들었다는 점과 여성 운동가, 마거릿 생어의 피임 지지 운동 투쟁에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다는 점으로 영화 외적으로도 큰 이슈가 되었다.

 영화 <내 아이들은 어디 있는가?> 포스터
ⓒ Lois Weber
할리우드 최고 여성감독의 100년 전 낙태 영화, 그러나

<내 아이들은 어디 있는가?>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지만 아이가 없는 월턴 부부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미스터 월턴은 지역 검사로, 불법으로 낙태를 시술하던 의사(Dr. Malfit)의 사건을 조사 중이다. 한편 월턴 부인은 남편이 아이를 원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녀의 자유를 침해 받고 싶지 않아서 몰래 피임을 해오고 있다. 그녀는 낙태 수술도 몇 차례 받은 상태이고, 피임의 '정당성'에 대해서 늘 주변인들에게 설파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결정적으로 월턴 부인 하녀의 딸이 그녀 집에 놀러온 망나니 남동생과의 애정행각으로 임신하자 월턴 부인은 낙태를 하게끔 선도한다. 그러나 이 수술로 하녀의 딸은 죽음을 맞는다. 월턴 부인의 피임과 그녀 주변인들의 낙태 사실은 곧 미스터 월턴에게 발각되고, 과거에 받은 시술로 인해 월턴 부인은 영구 불임이 된다. 동시에 재판을 받고 있던 의사 역시 배심원들에 의해 유죄선고를 받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영구히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된 부부가 절망하고, 월턴 부인이 이에 자기 비난 섞인 절규를 하며 끝을 맺는다.

 영화 <내 아이들은 어디 있는가?>의 한 장면
ⓒ Lois Weber
영화는 표면적으로 진보적인 주제를 다루고는 있는 듯 보이나 캐릭터의 설정과 이야기의 결말은 진보적인 방향과 거리가 멀다. 낙태를 한 여성은 죽음으로 죗값을 치르고, 공모했던 여성은 영구불임이 된다. 더 큰 문제는 이 영화가 낙태를 정당화하는 기제로, 노동계급의 출산은 막고 상류층의 출산은 장려하는 '우생학'적인 접근을 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이를 지지하는 두 주요인물, 즉 법정에 선 의사와 월턴 부인은 하류층의 임신을 저지함으로써 피임의 정당성을 증명한다. 가령, 오프닝 시퀀스의 법정 신에서 의사는 본인이 갔던 왕진을 근거로 자기 변론을 시작한다. 그의 플래시백. 가난한 오두막에 한 커플과 그들의 세 아이가 등장한다. 커플은 서로를 밀쳐내며 싸우고 있으며 우는 아이들은 낡은 집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 이들의 집을 방문한 의사는 이들이 임신을 한 것을 알게 되고, 더 많은 아이를 감당할 수 없다며 이들에게 피임을 권고한다. 또한 월턴 부인의 경우, 하녀의 딸과 자신의 남동생 사이에 생긴 아이를 낙태하게끔 적극적으로 유도한다. 다시 말해, 영화 안에서 낙태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이들은 모두 하층 계급의 출산을 저지하는 인물인 것이다.

영화는 절망적인 하층계급의 '나쁜 예'만 제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상적인 예,' 즉, '성공적인 출산의 예'를 병치하며 우생학적인 담론을 설파한다. 이는 상류층에서 자란 미스터 월턴의 동생 부부다. 휴일을 맞아 월턴을 방문한 동생 커플은 화려한 옷과 신발을 차려 입은 모습으로 그들의 어린 아이들과 등장한다. 이들은 월턴의 부러움을 한눈에 받으며 모범적인 커플의 출산 전형을 보여준다. 따라서 우생학적으로 열등한 하류층 커플의 출산은 저지 되고, 우수한 커플의 출산은 장려되어야 한다는 우생학 담론의 기본 골자를 그대로 답습한다.

이미 100년 전에 여성의 피임권리를 말하는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가 당시 백인 남성 권력층 사이에서 주창되던 '우생학'을 통해 전달돼야만 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고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요즘 거의 모든 매체에서 대선 공약에 대한 기사가 쏟아져 나오지만 딱히 눈이 번쩍 뜨이는 아이템을 목격하지 못했다. 여성의 권리와 목소리가 그 어떤 담론에도 편승하지 않고 그 자체로 보호될 수 있는 공간을 약속해줄 지도자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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