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영의 고민 "일기 금고에 보관, 죽기 전에 꼭 불태울 것"
[오마이뉴스 글:유지영, 사진:이정민]
'어떻게 해야 할까.' '왜 그렇게 생각할까.' '고민을 하고 있다.' 배우 박보영과의 인터뷰는 이렇게 세 가지 어미의 연속이었다. 모호하고 불투명한 말이다. 하지만 박보영은 까다로운 질문에 대한 그 어떤 대답도 재지 않았다. 인터뷰가 끝나고 되돌아보니 이들 어미는 되려 아주 씩씩한 '선언'이었다. '지금의 나는 이렇다'는. '그러나 언제 변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드라마 <힘쎈여자 도봉순>으로 JTBC 사상 최고 시청률을 갈아치우고 난 뒤 박보영은 들뜨기는커녕 걱정하고 있었다. 그는 "지금의 일상 그대로를 누리고 싶다"는, "여기가 (유명세의) 끝이었으면 좋겠다"는 솔직한 바람을 밝혔다.
지난 19일 오후 서울 논현동 근처에서 배우 박보영을 만났다. 인터뷰 현장에서는 취재진들과 배우 박보영 간에 질문과 답변이 오갔으나 기사에는 박보영의 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질문을 생략했음을 밝힌다.
박보영이 <도봉순>을 만나기까지
ⓒ 이정민 |
영화를 선택할 때는 대중들이 원하는 것보다 내가 하고 싶은 주제로 욕심을 조금 더 부렸다. <과속스캔들>도 그랬고. 영화로 했던 캐릭터들은 대체로 어두운 것들이 조금 더 많다. 그런데도 많은 분들이 밝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기억해주시는 것에 대해 '왜 그렇게 생각할까' 의문점은 항상 있었다. 난 그런 캐릭터를 하지 않았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실까.
반대로 드라마라는 장르에서는 많은 분들이 원하시는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했다. <오 나의 귀신님>의 나봉선이라는 캐릭터는 사랑스러움이 묻어나야 하는 캐릭터로 정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 그랬더니 좋아해주시더라. '아 이게 원하시는 모습이구나' 싶었다. 영화는 드라마에 비해 직접 찾아와주셔야 하는 장르고 드라마는 반대로 찾아가는 느낌이 많지 않나. 그런데 도봉순은 내가 원하는 것과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이 섞여있는 캐릭터였다.
욕심이 많은데 이제는 욕심을 좀 덜 부려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작품을 선택할 때 1번 기준은 대본이고 2번은 안 해봤던 새로운 걸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욕심을 자꾸 부리다 보니까 작품 텀(term)이 길어지는 부분이 없지 않다. 그리고 욕심을 부려서 내가 만족할 수는 있지만 봐주시는 분들 입맛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욕심을 좀 덜 부려야 하나 싶다.
하지만 또 동시에 조금 시간이 지나면 어쩔 수 없이 안정적인 것들을 선택하게 될까봐 지금은 최대한 욕심을 부리고 싶은데 혼란스럽다. 마음이 왔다 갔다하고 사실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다.
지금은 그저 어떤 '큰 변명' 뒤에 숨어있다. 아직 20대니까 뭔가 잘 안 돼도 '배운 거로 생각하자'고. 그런데 30살이 다가오니까 30살에는 무슨 변명을 찾아야 하나 생각이 든다. (웃음) 그때가 되면 변명도 못하고 안정적인 것(역할)을 택하게 될까봐. 아마 이 말 했다가 저 말 했다가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지금 내 마음이다.
ⓒ 이정민 |
사실 도봉순을 처음 대본으로 만났을 때는 방송사도 정해져 있지 않고 책만 있었다. 그런데 너무 하고 싶은 거다. 너무 재밌을 것 같고. 와 이렇게 힘이 세면 정말 얼마나 재밌을까. 나는 체구가 작다. 그래서 힘에 대한 갈증이 있었나보다. 주변에서 내가 약할 것이라 짐작하고 '내가 도와줄게'라고 말하면 그게 싫어서 '내가 할게' '일단 내가 한 번 해볼게'라고 한다. (내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나 보다. 원래 도봉순이라는 캐릭터는 경상도 방언을 쓰고 '러블리함'과 거리가 먼 '예쁘지 않은 아이'라고 박혀 있었다. '그래서 더 하고 싶었다.' 아 내가 뭔가 신경 쓰지 않고 집중할 수 있는 캐릭터구나. 나처럼 시나리오를 보면서 대리만족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작가님이 내가 이 드라마에 관심을 갖는다는 걸 들으신 후로 대본이 조금 바뀌었다. 우리는 마음에 드는 대본이 있으면 다른 분들에게 말씀을 드린다. 이미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는데 다른 작품을 문의하는 것 자체가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그렇게 말씀을 드리니 소문이 났다. '박보영은 이미 결정한 거 있다던데?' '뭔지 모르겠지만 약간 좀 힘 센 거래'라고.
그렇게 대본을 잡고 있었는데 그 이후 방송사를 만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때 느꼈다. 내가 타이틀 롤로 뭔가 하기에는 부족한 사람이구나. 또 한편으로는 한국 정서에 이런 드라마는 아직 이른가라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JTBC가 이 드라마를 편성하기로 했다고 들었을 때 한 번 더 고민이 들었다. 나도 종편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던 사람이고 JTBC 드라마 성적도 알고 있었던 터라. 고민을 안 했다면 거짓말이다. 하고 싶은 것 대본을 믿고 가보자고 생각했고 마음을 그렇게 먹고 나서는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한 번은 속상하기도 하고 그래서 작가님이랑 제작사에 타이틀 롤도 바꾸고 남자 주인공 비중도 좀 올리고 그렇게 하라고 나는 크게 상관없으니까 맞춰 가는 게 더 중요하지 않느냐고 했다. 또 형식씨가 남자 주인공을 맡기까지 고난도 많았고 시간도 걸렸는데 형식씨가 되려고 그동안 그렇게 안 됐나보다 싶었다. 어쨌든 이 친구가 너무 고맙게도 함께 작업을 해줬고 그래서 좋은 결과가 나왔던 것 같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보다 객관적으로 보게 됐던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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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영이 일상을 보내는 법
"나는 사실 세월호는 정치적인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세월호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에 더 가까운 것이다. 세월호를 이용하는 사람이 정치적이지 세월호 자체는 정치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세월호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꺼려하거나 조심스러워하는 걸 이해하지 못하겠다. 많은 희생을 당했던 친구들, 너무 어린 친구들이었고 나 역시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너무 충격이 컸다. 많은 국민들이 같이 고통을 느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생존하신 분들에게 국가적으로 뭔가 해줘야 하지 않을까. 이건 정치적인 소신이 아니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야기할 수 있는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알고 싶다>도 챙겨 보는데 요즘 화가 나거나 속상할 일들이 너무 많다. 학교를 다닐 때 흥미 있는 과목 중 하나가 역사였는데 역사 공부를 하다 보면 위안부나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다. 'SNS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듣는데 SNS 대신 일기를 쓴다. 일기에는 온갖 말을 다 쓸 수 있으니까. 나만 볼 수 있으니까. 그리고 최근에 일기를 보관하려고 금고를 하나 장만했다. (웃음) 도둑이 들어서 일기장을 가져가면 큰일 난다. 죽기 전에 꼭 불태우고 재가 되는 걸 확인하고 죽을 것이다. (웃음)
소속사에서는 '네가 말한 건 네가 책임져라'고 말한다. (웃음)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한 말에 대해서 내가 책임을 져야 하고 책임질 수 있는 발언들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SNS를 안 하는 거다. SNS는 순간 드는 감정을 바로 써서 올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100% 실수할 것이기에.
대신 V앱을 한다. 나는 일을 할 때 모습을 하나 더 갖고 있는 것 같다. V앱을 다시 보니 정말 예쁜 척을 많이 하더라. (웃음) 사람들을 만나서 뭔가 하면 톤이 하나 올라가고 밝아 보이려 하는 구나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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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드라마가 끝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많은 분들이 알아봐주시는데 '봉순이' 하기 전에는 지금 정도는 아니었다. 그 정도가 참 좋다고 생각했다. 배우로서 사는 삶과 28살의 박보영으로 사는 삶의 균형이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유명세가) 여기서 끝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래야 내가 덜 힘들고 만족하면서 살 수 있겠다고. 지금은 배우의 삶에 치중되고 있는 느낌이라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고민이 있다. 옛날에는 사람들 많은 곳도 어렵지 않게 잘 다녔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이 조금 버겁게 돼가고 있다.
대형 서점을 너무 좋아해서 자주 다녔는데 지금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다시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다. 그 재미를 빼앗기면 너무 힘들 것 같다. 거기 가서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CD를 사고 영화의 DVD를 사고 또 문구류도 사고 그런 재미가 있었는데. 또 그 안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는 재미도 있다. 관찰하는 일이 너무 재밌다. '저 사람은 쉼 없이 책을 보는데 손을 가만히 못 놔두네. 평소에도 손을 많이 뜯겠지'라든지 '와 저런 걸음걸이를 가진 사람은 성격이 어떨 것 같다'라든지. 처음부터 끝까지 미동 없이 책만 읽는 사람도 있고 불안한지 계속 다리를 떠는 사람도 있다.
옛날에는 비가 오는 날 버스를 타고 창밖 구경하는 걸 정말 좋아했다. 그 기분은 '정말 뭐라 말할 수 없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창밖을 바라보고 버스의 덜컹거림을 느낀다는 것이. 가끔 잠이 안 올 때 첫차를 탄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나는 참 게으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소소한 일상이 어려워지면 그건 참 슬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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