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오승환에게 뒤엉켜버린 테임즈, 그리고 파울볼 2개

조회수 2017. 4. 23. 07:2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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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그럴 때가 있다. 뭘 해도 안 풀린다. 벗어나 보려 죽어라 애쓰지만 그럴수록 꼬인다. 아마 보스에게는 지난 몇 주가 그런 때였으리라.

지독한 감기 몸살에 며칠을 끙끙 앓았다. 때마침 개막 무렵인데 살이 쭉 빠졌다. 힘이 있을 리 있나. 나가는 경기마다 탈탈 털렸다. 스치면 안타, 걸리면 홈런이었다. ERA는 매일 상한가였다. 1이닝 1실점을 했는데도 떨어지는 신기한 현상이 지속됐다.

불안불안, 아슬아슬, 간당간당. 절친이 개최한 창용 영화제에 출품하려고 저러나…. 바닷가 쪽에서는 그런 댓글이 달렸다. ‘돌부처는 어디 가고, 자꾸 승락 극장이 보이네.’

주변의 수군거림이 시작됐다. “그러니까 WBC는 왜 그렇게 기를 쓰고….” 아니라고 그러기도, 그렇다고 맞다고 인정하기도. 참 난감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마침 로젠탈까지 변수로 나타났다. 세이브 하나를 덥석 따먹는 일까지 생긴 것이다. 지역 언론의 준동이 시작됐다. 매 감독에게 민감한 질문이 쏟아졌다. “저렇게 놔둘 거냐” “이제 때가 된 것 같은데.” 집단, 경쟁, 교체, 같은 단어들이 등장하고 있었다.

그런 엄혹한 시기였다. 엄하고, 모질고, 심각했다. 둘의 만남은 하필 그럴 때 이뤄졌다.

강호의 관심이 집중된 일합 

누구는 빅 픽처라고 했다. 로젠탈이 8회에 홈런을 맞은 것도, 그래서 세이브 요건을 마련해준 것도, 또 보스가 2사 후에 조나단 빌라르에게 안타를 내준 것도…. 모두가 보고 싶던 그 대결을 이루기 위한 큰 그림이라는 뜻 아니겠나.

그 순간 현지 중계팀도 흥분하기 시작했다. FSN Midwest의 해설자 앨 러보스키의 말이 빨라졌다. “경기 전에 쑹완 오한테 물어봤어요. 에릭 테임즈에 대해서 잘 알고 있냐. 그랬더니 만난 적이 없다는 거예요. 테임즈가 한국에 갔을 때, 자기는 일본으로 갔으니까요.”

사실 앞선 두 타자는 애피타이저에 불과했다. 아무리 끝판왕이 요즘 시원치 않다고 해도 아르시아와 아길라를 삼진으로 잡았다는 게 새삼스러울 리는 없지 않나.

한국 사람도, 그리고 꽤 많은 미국 사람들도 궁금했던 대결이었다. 강호의 관심이 온통 집중됐던 일합에는 분명히 음미할 대목이 있다. 비록 공 4개 밖에 안되지만, 명백한 구분이 존재하는 승부였다. 그 1부와 2부를 재구성해봤다.

1부 : 2개의 파울볼

가장 중요한 대목은 초구였다. 3점차였다. 무리할 필요 없다. 안전하게 가자. 몰리나는 바깥쪽 직구를 원했다. 사인을 내고 빠져 앉았다. 그리고 낮은 쪽 존에 글러브(미트)를 대고 조준점을 마련해줬다.

그런데 아뿔사. 실투가 나왔다. 보스의 패스트볼(93.4마일)이 정반대 방향으로 날아간 것이다. 위험한 몸쪽이었다. 그것도 어중간한 높이였다.

1구. 몰리나의 요구와는 반대로 테임즈의 몸쪽으로 가는 공이었다.               mlb.tv 화면

2구째도 마찬가지였다. 몰리나는 밖으로 멀찍이 물러났다. 낮게 던지라며 자세까지 한껏 웅크려줬다. 하지만 역시나 투수는 영점을 잡지 못했다. 역구(逆球), 그러니까 의도와는 전혀 반대 쪽으로 던지고 말았다. 몸쪽 높은 코스로 향했다(92.8마일).

  2구도 마찬가지였다. 외곽으로 던지려 했던 공이 안쪽으로 몰렸다.                 mlb.tv 화면

그럼 의도와 달리 몸쪽으로 몰린 초구와 2구의 결과는 어떻게 됐나. 아시다시피 모두 파울이됐다. <…구라다>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안전한 바깥쪽 낮은 볼을 던지려 했다. 그러나 완전히 반대 투구가 나왔다. 분명한 실투였다. 상대는 리그에서 최고의 4월을 보내고 있는 타자였다. 자칫 치명적일 지 모를 미스였다. 그런데 위험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2개의 공 모두 타자 눈에는 들어왔다. ‘왔다’ 싶어서 배트가 나간 것이다. 하지만 타구는 페어 그라운드로 들어가지 못했다. 3루쪽으로 밀려 나가며 관중석으로 들어갔다. 전형적으로 타이밍이 늦어서 생기는 현상이다. 현장에서는 ‘막혔다’ 또는 ‘먹혔다’라는 표현을 쓴다.

불과 92~93마일 밖에 안 되는 공에 연거푸 2개나? 너무 잘 쳐서 약 먹는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받는 타자가? 이 점을 이해하려면 떠올려야 할 사실이 한 가지 있다. ‘처음’이라는 점이다.

이대호의 얘기를 인용해 보자. “승환이 공을 처음 보는 타자는 무조건 투 스트라이크를 먹고 들어간다고 보면 돼요. 가뜩이나 공도 좋은데, 특이한 폼 때문에 절대로 타이밍을 잡을 수가 없어요.”

오승환이 테임즈에게 던진 공 4개.      mlb.com 

보스의 왼발은 본래 유명하다. 공을 던질 때 땅에 한번 디딜 듯 하다가 다시 나가는 독특한 동작 때문이다. ‘저거 반칙 아냐?’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한번씩 시끄러운 논란을 일으켰던 폼이다.

작년 캠프 때 그 공을 처음 쳐본 팀 메이트 그렉 가르시아는 놀라운 경험을 이렇게 얘기한다. “몸쪽 빠른 공이었어요. 치려고 나가는 순간 내 타이밍은 완전히 뒤엉켜버렸죠. 분명히 와인드업에 잘 맞춰서 시동을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공은 그의 손 안에 있었죠. 그래서 다시 장전해야 했어요. 아주 이상한 경험이었죠. 어느 타자든 그를 상대로 단번에 타이밍을 맞추지는 못할 것 같아요.”

2부 : 치명적인 결정구 체인지업

테임즈는 처음 보는 난해한 폼에 타이밍이 엉켜버렸다. 타석을 벗어나 잠시 생각을 정리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카운트가 0-2로 숨을 조여온다. 3구째 땅바닥으로 깔린 슬라이더(87.6마일)는 보여주기에 불과하다. 바로 치명적인 결정구를 위한 포석이기 때문이다.

4구째. 보스의 손을 떠난 공은 스트라이크 존 한복판을 향해 날아든다. 의심하고 어쩌고 할 여유도 없다. 타자는 반응해야 한다. 우두커니 서서 경기를 끝낼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스윙이 나오는 순간부터 공은 변화를 일으킨다. 바깥쪽으로 휘어져 나가면서 약간 떨어지기까지 한다. 84마일짜리 체인지업이었다. (테임즈는 한국식 포크볼이라고 여기고 있다.)

테임즈를 삼진으로 돌려세운 체인지업.                                 mlb.tv 화면

일주일 전 쯤인가. <…구라다>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그리고 자판이 불꽃이 튀도록, 열변을 토했던 그 구질이다. 지난 12일(한국시간) 워싱턴전에서 애덤 이튼에게 던졌던 2구째. 마치 마구처럼 현란한 변화를 일으켰던 공이다.

12일 워싱턴전에서 애덤 이튼에게 던졌던 체인지업.               mlb.tv 화면

그 때만큼은 아니었다. 따지자면 한 80%쯤의 완성도일까? 하지만 뒤엉켜버린 테임즈를 보내기에는 충분했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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