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문자 신고했더니 'ㄷㅐㅊㅜㄹ'로".. 스팸에 '부글부글'

김지현 2017. 4. 22.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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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학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학교 식당에서 밥을 먹던 이모(22)씨는 낯 뜨거운 일을 겪었다. 물을 떠오려고 스마트폰을 탁자 위에 둔 채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음란물을 담은 스팸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고 한다. 연신 문자음을 울려 대는 스마트폰을 확인한 이는 하필이면 여자 후배였다.

이씨는 “너무 민망했다”며 “지난해 말부터 접속해 보지도 않은 사이트의 주소를 내걸고 조건만남을 부추기거나 이상한 사진 등을 보내는 문자들이 오는데 정말 짜증난다”고 토로했다. 

도박 사이트 안내나 음란물, 휴대폰 판매정보 등을 담고 시도 때도 없이 날아오는 스팸에 고통받은 경험은 비단 이씨 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스팸을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는 서비스나 기술이 개발되지 않은 탓에 늘어나는 스팸 문자와 음성에 무방비로 노출된 이들은 차라리 휴대전화가 없는 게 낫다고 하소연하기도 한다.

직장인 최지수(26)씨도 스팸이라면 질리도록 받아봤다고 한다. 최씨는 음성 스팸을 많이 받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아무래도 번호를 8년 가까이 바꾸지 않은 게 화근인가 싶다”며 “전화번호가 뜨면 스팸인지 확인해주는 애플리케이션을 까는 등 노력하고 있지만 걸러지지 않는 번호도 많다”고 말했다.

기업 홍보팀에서 일하는 최씨는 하루에 보통 20통이 넘는 통화나 문자 메시지 등을 주고 받는다. 번호를 모르는 이가 전화하는 일이 잦아 주소록에 등록되지 않은 번호를 무작정 무시할 수도 없다. 그는 “한 번은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와서 받지 않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업무와 관련된 급한 연락이었다”며 “전화를 제대로 받지 않았다고 상사에게 크게 혼이 났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이어 “어떤 전화는 무시하고, 어떤 전화를 받아야 할지 결정할 수 없어 괴롭다”고 불만을 전했다.  

시간을 불문하고 날아오는 스팸 메시지는 최씨를 더 괴롭힌다. 그는 “지난번에는 오전 3시에 문자음이 울려 휴대폰을 확인했더니 도박업체에서 보낸 메시지였다”고 전했다. 
스팸 문자들. 도박 사이트를 안내하는 거나 인터넷 가입 등을 광고하는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지난달 22일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의 '118사이버민원센터'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3년 87만여건이던 음성 스팸의 신고 건수는 지난해 1815만여건으로 20배 넘게 늘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발표한 ‘2016년 하반기 스팸 유통현황’을 봐도 상반기 대비 대량문자 발송 서비스를 통해 전송된 스팸이 222만건에서 243만건으로 9.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스팸 차단 서비스를 운영하는 업체 후후앤컴퍼니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차단 앱 후후에 등록된 스팸은 264만7677건에 달했다.

가장 많이 등록된 스팸 유형은 ‘대출 권유’로 81만5083건을 차지했다. 이어 불법게임 및 도박(53만5038건)과 텔레마케팅(38만5174건), 성인 및 유흥업소(31만1992건), 휴대폰 판매(10만 8243건) 등 순으로 뒤를 이었다.

방통위와 KISA는 지난 2006년부터 불법 스팸을 차단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상대로 스팸 트랩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 시스템은 문자와 음성 스팸을 자동으로 저장·분석해 불법 스팸을 잡아내는 덫(Trap)의 역할을 한다. 지난 2015년부터는 스팸 트랩 시스템을 강화하고자 등록 전화번호를 1만8000여개로 확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음성은 해당 내용을 들어야만 스팸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어 등록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게 흠이다.

날로 발전하는 스팸 발송업체들의 전송 방식도 단속을 어렵게 하고 있다. 박명진 방송통신위원회 인터넷윤리팀장은 “대응방안을 마련해도 교묘하게 단속 방식을 파악해 피해가는 업자들이 적지 않아 적발에 어려움을 겪을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예를 들어 음란 문자를 단속하려고 ‘성’을 금칙어로 정하면 ‘ㅅㅓㅇ’으로 글자를 분해해 보내거나 대출 역시 ‘ㄷㅐㅊㅜㄹ’로 발송한다는 것이다.

박 팀장은 “새 단속 방안을 마련하면 그에 맞춰 사업자들 역시 다른 방식으로 스팸을 전송한다”며 “원천적으로 이를 막을 수 있는 기술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방통위는 스팸 발송량이 많은 사업자를 적발해 원인 분석과 개선계획 제출 등을 요구하고, 발송 경로를 제공하는 주요 사업자 등을 대상으로 KISA와 함께 현장 점검을 추진할 계획이다.

음성 스팸에 대응하고자 실시간 차단 시스템에 목소리 인식 기능을 적용하고, 해외에서 국내로 유입되는 전자우편 스팸 등도 줄이기 위해 KISA에서 운영하는 해당 스팸 트랩 시스템을 거쳐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국가를 순차적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김지현 기자 becreative0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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