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문재인 "기권 결정 후 北에 통보" VS 송민순 "北에 먼저 물어봤다"

조성은 기자 2017. 4. 22.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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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北인권결의안 입장 결정 관련, 2007년 11월 무슨 일이..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21일 언론에 공개한 2007년 11월 20일 문건. 송 전 장관은 이 문건이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에 대한 북한 반응을 정리한 청와대 문건으로,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됐다고 주장했다. 오른쪽 사진은 당시 노 대통령이 인권결의안 표결에 기권하기로 결정한 정황을 보여주는 송 전 장관의 수첩. 수첩에는 노 대통령이 “묻지 말았어야 했는데 문 실장이 물어보라고 해서”라고 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송민순 전 장관 제공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기권 여부를 두고 신경전이 벌어졌던 2007년 11월은 한반도 정세의 급변기였다.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으로 경색됐던 남북관계는 2007년 2·13합의 타결 등 북핵 협상이 호조를 보이면서 개선 국면을 맞았다. 이 흐름은 그해 10월 4일 남북정상회담 성사로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인권결의안 문제는 노무현정부에 딜레마가 됐다. 한 해 전인 2006년 노무현정부는 북한의 1차 핵실험 규탄 의미로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하지만 남북관계가 1년 만에 냉탕에서 온탕으로 돌변하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

당시 인권결의안 찬성을 주장한 사람은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이었다. 외교부가 남북관계를 고려해 인권결의안 규탄 수위를 낮춰놓은 상황에서, 정부가 기권할 경우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논리였다. 반면 청와대와 통일부, 국가정보원은 개선 국면에 들어선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기권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결국 노무현정부는 2007년 11월 21일(한국시간)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에 기권표를 던졌다. 표결 결과는 찬성 97표, 반대 23표, 기권 60표였다.

2007년 11월, 청와대선 무슨 일이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입장 결정과 관련한 첫 정식 논의는 2007년 11월 15일 청와대 안보정책조정회의에서였다. 이 자리에서 다수 참석자가 기권을 주장했으나 송 장관은 찬성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회의는 결론을 내지 못하고 끝났다. 이날 회의 결과는 송 전 장관의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측의 주장이 대체로 같다.

이튿날인 16일 오후 청와대에서 다시 회의가 열렸다. 송 전 장관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회의는 노무현 대통령이 주재하고 송 장관, 이재정 통일부 장관, 김만복 국가정보원장, 문재인 비서실장, 백종천 안보실장이 참석했다. 송 전 장관은 “(노 전 대통령이) 나와 비서실장을 보며 ‘우리 입장을 잘 정리해 보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우리는 뒤에 남아서 더 격론했지만 결론을 낼 수가 없었다”고 회고했다.

문 후보 측은 송 전 장관의 이같은 주장은 거짓이라고 반박했다. 노 전 대통령이 직접 ‘기권’으로 최종 결론을 내렸는데, 이후 송 전 장관이 결정을 뒤집으려 했다는 것이다. 홍익표 민주당 선대위 수석대변인은 21일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여러 가지 이견이 있지만 이번에는 기권으로 가자’고 최종적인 입장을 정했다”고 말했다.

先문의 後결정? 先통보 後응답?

결국 핵심은 16일 회의에서 정부 입장이 최종 확정됐는지 여부다. 송 전 장관 주장대로라면 노무현정부는 유엔 총회 표결 직전까지 입장을 정하지 못했고, 결국 북한에 물어보고 나서야 기권을 결심했다는 얘기가 된다. 하지만 문 후보 측 주장은 이미 정부 입장이 정해졌기 때문에 북한에 문의할 필요는 없었다는 설명이다.

18일 회의 소집 이유부터 문 후보 측과 송 전 장관의 주장은 엇갈린다. 송 전 장관은 16일 회의 후 A4용지 4장짜리 편지를 써 노 전 대통령에 전달했고, 이에 노 전 대통령은 회의를 다시 소집할 것을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당시 회의는 송 전 장관의 완강한 태도 때문에 열린 ‘군더더기’ 회의였다는 게 문 후보 측 주장이다. 문 후보 측 핵심 관계자는 “송 전 장관은 기존 결정을 뒤집으려고 했다”며 “외교 엘리트였던 송 전 장관은 대북 유화파가 일을 망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이 18일 회의를 지시한 것도 송 전 장관이 편지에서 사퇴 의사까지 밝히자 “얘기를 들어보라”며 관계 장관들을 불러모았다는 것이다.

11월 20일 문건의 정체는?

송 전 장관이 21일 공개한 문건에 대한 양측 시각도 확연히 다르다. 송 전 장관 주장대로라면 노무현정부는 북한 입장을 담은 문건에 따라 인권결의안에 기권표를 던진 것이다. 하지만 문 후보 측에 따르면 이 문건은 정부 공식 입장이 정해진 후에 들어온 참고자료 정도다. 당시 상황에 정통한 관계자는 “해당 문건은 북한에서 온 메시지를 싱가포르에 있는 대통령에게 전화로 전달한 것을 문서화한 것”이라며 “북한의 메시지 전문인지 요약본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문건의 내용과 어투로 미뤄봤을 때 북한은 명시적인 불만을 표시했다. 송 전 장관도 “내가 공개한 메시지가 기권에 대한 답인지, 찬성 가능성에 대한 답인지 보면 알 것”이라고 말했다.

관건은 11월 16일의 회의록과 북한의 답신을 받기 위해 국정원이 북한에 보낸 전통문이다. 16일 회의가 기권으로 결론났고, 그 입장이 국정원의 대북 전통문에 그대로 나타나 있음을 보여주기만 한다면 논쟁은 문 후보의 승리로 돌아간다.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은 2005년부터 유엔총회에서 표결로 채택됐다. 노무현정부는 2006년만 제외하고 매년 표결에 불참·기권했으나 이명박·박근혜정부가 들어서면서 일관되게 찬성표를 던졌다.

글=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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