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매일 밤 실험실 찾은 화공과 대학원생, 감기약으로 마약 만들었다는데..

이정구 기자 2017. 4. 2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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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약 500정으로 390만원어치 필로폰
"학문적 호기심에 용돈도 마련할 겸 .."
인터넷 검색하면 제조법도 쉽게 나와

지난해 10월부터 서울 한 유명 사립대 화학공학과 대학원생 황모(25)씨는 교수와 동료들이 모두 퇴근한 늦은 밤 학교 연구실을 찾곤 했다. 아무도 없는 주말에도 황씨는 꼬박꼬박 연구실에 나왔다. 주변 눈을 피해가면서 황씨가 만든 물질은 '메스암페타민'으로 아편, 대마초에 이어 제3의 마약으로 꼽히는 '필로폰'이었다. 검찰은 지난 10월부터 2개월간 총 14차례에 걸쳐 필로폰 13g(시가 390만원 상당)을 만든 혐의로 황씨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황씨가 처음 필로폰을 만든 건 판매책 한모(22)씨가 황씨에게 접촉해온 작년 9월이었다. 검찰에 따르면 한 인터넷 게시판에 '화학 전공자를 찾는다'는 글을 보고 연락한 황씨에게 한씨는 "용돈 필요하지 않으냐"며 접근했다. 한씨는 황씨에게 "감기약으로 필로폰을 만들어 판매 수익을 일대일로 나누자"고 제안했다.

화학공학을 전공한 황씨에게 필로폰 제조는 식은 죽 먹기였다. 황씨는 한씨가 약국 여러 곳을 돌면서 사들인 감기약 500정을 넘겨받았다. 처방 없이도 구매할 수 있는 일반 감기약이었다. 제조법은 해외 인터넷 사이트 검색을 통해 얻었고 작업에 필요한 간단한 실험 도구와 화학반응에 필요한 기본적인 시약은 실험실에 갖춰진 것을 이용했다. 황씨는 감기약에 포함된 필로폰 원료 '슈도에페드린'을 추출했고, 몇 단계의 화학반응을 거쳐 메스암페타민, 즉 필로폰을 만들어냈다. 황씨가 만든 필로폰 13g 중 8g은 한씨에게 건네졌고 한씨는 이를 인터넷 채팅으로 알게 된 사람들에게 팔아 106만원을 벌었다. 수익금은 둘이 나눠 가졌다. 황씨는 검찰 조사에서 "감기약으로 실제 필로폰이 만들어지는지 학문적 호기심이 생겼고 용돈도 마련할 겸 해서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진술했다.

약국에서 판매하는 감기약을 이용한 필로폰 제조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슈도에페드린을 추출할 수 있는 감기약을 시중 약국에서 쉽게 살 수 있고 제조법도 해외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쉽게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에는 생활고를 겪던 미대 졸업생이 해외 사이트에 올라온 제조법과 화학 서적을 참고해 독학으로 1만6666명이 동시 투약 가능한 분량인 필로폰 500g(시가 16억원 상당)을 만들어 49명에게 판매한 혐의로 구속됐다. 지난해 11월에도 한 30대 취업 준비생이 창고에 마약 제조 공장을 차리고 감기약으로 필로폰 400g을 제조해 200g을 시중에 유통시킨 혐의로 구속됐다. 2010년 이래 검찰이 적발한 필로폰 제조 사범 21명 가운데 16명이 감기약을 원료로 필로폰을 제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인터넷에서 필로폰 제조법을 검색하면 제조 과정을 쉽게 알아낼 수 있다. 필요한 화학 실험을 설명하는 영상도 수십 가지 게시돼 있어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화학 전공 대학원생 김모(28)씨에게 해외 사이트에서 찾은 필로폰 제조법을 보여줬더니 "이렇게 해서 정말 필로폰 제조가 가능하냐"고 되물으면서도 "이 과정은 난도가 낮은 실험이라 제조법과 장비 갖춰진 실험실이 있다면 학부 기초 수준 지식만 있어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슈도에페드린이 포함된 감기약이 약국에서 일반의약품으로 판매되는 것을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윤흥희 한성대 마약알콜학과 교수는 "슈도에페드린이 포함된 감기약은 전문의약품으로 전환해 의사 처방에 따라 판매량을 제한하거나 약국에서 판매 대장을 작성하는 방식으로 대량 구매를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고 했다. 현재 시중에 판매되는 감기약 중 슈도에페드린 성분이 든 것은 총 508종이다. 슈도에페드린이 120㎎ 이상 포함되거나 함량이 그 미만이어도 슈도에페드린으로만 만들어진 63종은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돼 병원 처방을 받아야 구입할 수 있다. 하지만 함량 120㎎ 미만 감기약이라 하더라도 다른 성분과 섞여 있는 246종은 일반의약품으로 별도 처방 없이 약국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비염 환자를 비롯해 수요가 많은 약품에 들어 있는 성분이라 쉽게 전문의약품으로 전환하기는 어렵다"면서 "이런 감기약들을 전문의약품으로 바꾸면 소비자가 쉽게 살 수 없어 불편함이 예상되지만 전문가들과 일반 약 유지 여부에 대해 종합적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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