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중앙일보

[이달의 예술 - 건축] 이루지 못한 꿈으로부터 배우다

입력 2017.04.22. 01:41 수정 2017.04.22. 07:10 댓글 0

우리는 종종 '지루한 천당보다 재미있는 지옥'이라며 우리 사회와 도시의 역동성을 빗대어 말하곤 한다.

근대화·산업화를 거치며 도시가 압축성장을 하는 동안 우리 근현대 건축의 기원을 추적·기록하는 일은 움직이는 열차에서 창밖 풍경을 그리려 하는 것처럼 당혹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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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중-건축, 문장을 그리다'
조재원건축가·공일스튜디오 대표
우리는 종종 ‘지루한 천당보다 재미있는 지옥’이라며 우리 사회와 도시의 역동성을 빗대어 말하곤 한다. 근대화·산업화를 거치며 도시가 압축성장을 하는 동안 우리 근현대 건축의 기원을 추적·기록하는 일은 움직이는 열차에서 창밖 풍경을 그리려 하는 것처럼 당혹스러운 일이다. 건축계에서는 2000년대 들어서야 비로소 건축 과정을 보여 주는 1차 자료 수집의 중요성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011년부터 정기용을 시작으로 건축가의 컬렉션을 했다. 같은 해 민간에서도 목천건축아카이브가 설립됐다. 원로 건축가의 구술집을 발간하고 건축가·건축물별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있다. 아직 첫걸음에 불과하지만 건축의 계획과 현실화 과정에서 남겨진 다양한 기록물을 모으고, 또 그를 연구하는 것은 현재의 우리 도시를 새롭게 보는 과정이 된다.

지난 14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개막한 ‘윤승중-건축, 문장을 그리다’는 이런 점에서 주목된다. ‘한국 현대미술작가 시리즈’ 건축 분야 전시로 2014년 김종성전, 2016년 김태수전에 이은 마지막 전시다. 196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 우리 사회와 도시의 극적인 성장과 함께해 온 윤승중(80)의 전체 작업을 스케치·도면·사진·모형 등으로 조망한다.

건축가 윤승중씨가 설계한 서울 제일은행 본점 전경. 서울시 건축상을 받았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는 네 부분으로 구성됐다. 윤씨의 작업을 역사적 사건과 나란히 연대기적으로, 고유한 계획방법론적으로, 도시와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그가 협업해 온 동료·후배 건축가들과의 관계 속에서 보여 준다. 그가 기억을 되살려 그린 생가의 평면 스케치를 시작으로 한일은행 본점(1978), 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1979)를 거쳐 대법원(1990), 광주과학관(2009)까지 다양한 작업이 펼쳐진다. 계획 당시의 사회 변화를 수용하고, 도시를 형성하고, 이제는 일상적인 환경이 된 건물들이다. 이전에 없었던 제도와 삶의 양태를 담고, 문맥이 없는 대지에 도시의 미래를 짓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작업 과정은 객관화를 위한 치밀한 논리의 구축 과정과 협업의 강조가 도드라진다. 작업을 설명하는 문구들은 2014년 목천건축아카이브에서 출간된 그의 구술집에서 인용해 더욱 생생하게 와 닿는다. 흥미롭게도 계획안으로 남은 일련의 프로젝트에서 건축가의 꿈과 이상이 더욱 명료하게 드러난다. 여의도 마스터플랜(1968), 박정희 전 대통령의 행정수도 이전 구상으로 계획됐다가 대통령의 서거로 무산된 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계획안(1979), 미완의 시도로 끝난 분당주택전람회(1993) 등이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개별 건축물에 시민의 공간을 부단히 새겨 넣고자 했던 건축가의 노력이나 일관되지 못한 정책의 부침 속에서도 먼 미래를 바라보며 품었던 이상적인 도시를 향한 꿈, 협업과 배움이 일어나는 평등한 설계조직에 대한 그의 꿈은 실현되지 못했을지언정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전시를 보고 나니 문득, ‘한국성’은 건축가의 성공작만큼이나 실패한 시도에서 잘 드러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 속에 있다.

조재원 건축가·공일스튜디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