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차명폰 수수께끼', 대통령 의상실이 답줬다

손가영 기자 입력 2017.04.21.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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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측만 하던 ‘대통령-최순실 핫라인’, 의상실 압수수색으로 수사 물꼬 터… 추가 대통령 대포폰 확인, 추후 공개될 듯

[미디어오늘 손가영 기자]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추측으로 남겨 뒀던 ‘대통령-최순실 핫라인’은 대통령 의상실 덕분에 찾을 수 있었다. 특검팀은 의상제작자 폰에서 시작해 대통령 '대포폰'을 추적해냈고 수사 종료 시점에 아직 공개되지 않은 또다른 차명번호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사실은 2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삼성그룹 뇌물공여 국정농단 사건’에서 확인됐다. 특검은 박근혜씨 의상을 제작한 임아무개씨, 이영선 청와대 행정관의 진술조서를 공개하며 차명전화 수사 경위를 밝혔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4월21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뇌물공여 혐의 등 6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실마리는 임씨 전화에 저장된 ‘윤비서’였다. 윤전추 청와대 행정관을 뜻한 윤비서의 번호만 3개가 저장돼 있었다. 하나는 업무용 공용전화, 또 다른 하나는 결번이었다. 남은 번호 하나가 이영선 청와대 행정관이 차명전화 개통에 활용한 군대 후임 송아무개씨의 대리점에서 개통된 것이었다. 통화내역을 확인한 결과 최순실씨, 임씨, 최씨 운전기사 방아무개씨 등 의상실 관계자 번호만 확인됐다. 이영선 행정관도 ‘이비서’로 저장됐다.

이 행정관은 송씨의 대리점에서 차명전화만 70여 대를 개통했다. 차명전화 이용자는 모두 박씨 혹은 박씨의 최측근들이었다. 정호성·이재만·안봉근 등 전·현직 청와대 비서관도 차명폰을 개통했다.

사람 수는 적은데 왜 차명번호가 70개일까. 특검은 수사 결과 이들의 패턴을 파악했다. 이들은 1년 내 두세 차례 해지와 개통을 반복했다. 김영철 검사는 “차명폰들을 4월16일 동시 해지한 뒤 이(기존) 사람들 명의로 4월16일 폰을 다시 개통한다. 9월26일에 다시 폰을 해지하고 동시에 새로운 번호를 개통했고 10월에 다시 해지했다”며 “중간에 번호를 계속 바꾼 것”이라 설명했다. 특검은 차명전화를 나눠 가진 이들을 ‘이너서클’이라 칭하기도 했다.

최순실씨의 ‘대통령 핫라인 폰' 수사에 속도를 낼 수 있게 된 건 장시호씨의 진술 덕분이다. 장씨는 특검 조사에서 "지난해 10월26일 최씨의 요청으로 어머니 최순득씨가 윤전추 행정관의 차명폰을 통해 박 대통령과 최 씨의 입국 문제에 대해 협의를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김 검사는 “2016년 9~10월 한국에서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 최순실이 대통령, 윤전추 등 관련자에 연락을 취하려 했는데 잘 안된 것 같다. 최씨는 급히 장시호에게 연락해 귀국해도 되는지 확인을 부탁하면서, 윤전추 차명폰 연락처를 알려줬다”며 “장시호는 그걸 가지고 최순득씨를 통해 대통령과 통화해보라고 했고, 최순득씨가 자신이 사용하지 않던 전화로 윤 행정관에게 전화했다. 확인해봤더니, 최순득씨 통화내역에서 같은 전화 번호가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윤 행정관 차명전화의 명의자는 ‘유아무개’였다. 개통 대리점은 이영선 행정관이 차명폰을 개통해 온 대리점과 같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차명전화를 여러 명이 돌려 쓴다고 생각한 특검은 이 시점을 계기로 ‘용도별 차명폰’이 있을 거라 추정하기 시작했다.

유씨 명의의 차명전화 통화내역에 나온 번호는 모두 같은 대리점에서 개통된 차명번호였다. 박씨의 최측근들이 이 행정관으로부터 이 번호를 나눠 받아 쓴 정황이었다. 차명폰을 개통한 이영선 행정관이 모르쇠로 일관하던 상황에서 특검팀은 통화내역, 통화기지국 등 객관적 증거를 파악하는데 집중했다.

최씨와 박씨 차명폰은 유씨 휴대전화의 통화내역에서 확인됐다. 수발신 횟수가 가장 많은 번호는 이영선 행정관의 차명폰 번호였다. 특검팀은 압구정동, 청와대 인근 등 이영선 행정관의 동선과 발신기지국이 상당 부분 겹친 점, 이 행정관이 대통령 해외 순방 동행 동안 발신 기지국이 모두 ‘해외’로 뜬 점 등을 파악했다.

이씨가 이 차명번호로 자주 통화한 상대 중 한 명이 최씨였다. 특검이 해당 번호의 발신기지국 등을 조회한 결과 최씨가 거주했던 청담동의 고가 오피스텔 ‘피엔폴루스’가 다수 확인됐다. 독일, 미얀마, 일본 등 최씨의 해외 출입국 기록과 로밍서비스 이용 기록이 일치했다. 특검은 이 번호를 최씨의 ‘대통령 핫라인’으로 파악했다.

대통령 차명번호는 윤 행정관이 전화했던 번호 중 하나였다. 통화내역, 발신기지국, 박씨의 동선을 종합해 파악한 결과다. 이 번호의 발신기지국은 단 3곳이었다. 특검은 발신지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셀 번호’를 확인했다. 3개 기지국의 셀 번호 조회 결과 모두 ‘청와대 관저’로 확인됐다. 개통된 2016년 4월부터 해지된 10월 후순경까지 총 1178번 통화가 모두 청와대 관저에서 이뤄진 것이다.

통화내역 조회 결과 이 번호는 대통령 해외 순방 기간엔 사용 내역이 전무했다. 특검이 외교부 홈페이지에 나온 순방 일정과 통화내역을 비교한 결과다. 김 검사는 “로밍이 아니고 사용 내역이 아예 없다. 관저에 두고 사용하고 해외 순방 땐 가져가지 않았던 것 같다”면서 “이 작업을 통해 이 전화가 대통령 차명 전화임이 맞다고 판단됐고 거의 대부분 최순실하고만 통화했다”고 말했다.

▲ 파면된 대통령 박근혜씨가 2015년 5월 오전 경기도 평택 고덕 국제화계획지구 내 부지에서 열린 삼성전자 반도체 평택공장 기공식에 참석, 기공 발파식을 마친 뒤 이재용 부회장과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JTBC가 ‘최순실 태블릿 PC’를 보도했던 지난해 10월24일, 이 번호는 오후 9시 후부터 최순실·정호성·이재만 등 측근들과 돌아가며 10여 차례 통화했다. 이 번호는 10월25일 새벽 3시 경까지 최씨 차명번호와 통화한 기록이 있다.

특검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번호 교체 패턴’에 따라 2016년 4월 이전에도 같은 목적의 차명폰이 있을 것이라 추정했다. 김 검사는 “지난 2월 말 경 추적을 시작한 결과 같은 패턴의 전화가 확인이 됐다”며 “증거자료로 제출이 안 됐는데, 검찰 특수본이 제출할 SK그룹, 롯데그룹 수사기록에서 필요한 증거를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이 차명전화가 중요한 이유는 ‘2016년 2월15일’ 박씨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세번째 독대 당시 뇌물요구를 입증하는 간접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씨의 청탁이 있었다면 독대 전후로 박씨와 최씨 간 통화가 오고갔을 거라 추정할 수 있다.

김 검사는 “독대 후 전화가 있을 것 같아서 조사했다. 증거를 보면 알겠지만 정확히 일치한다. 독대 시간 앞뒤로 통화내역이 있고, 현대차 정몽구 회장을 만난 오후 3시 빼고는 앞뒤로 전화가 5~7분, 길게는 10분의 기록이 있다”며 “이는 다른 게 아니고 대통령과 최순실의 공모관계 때문에 말한 것”이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