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소비자-공장 잇는 '단골공장 프로젝트'

장일호 기자 입력 2017.04.21. 21:18 수정 2017.05.02.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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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와 공장을 중간 단계 없이 바로 이어줄 순 없을까. 팩토리얼의 '단골공장 프로젝트'는 소비자가 공장을, 공장이 소비자를 만나는 새로운 방법이다.

삶은 서류 위에 있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생산하기 위한 소재 트레이딩이 두 사람의 일이었다. 국내 최고 대기업 ‘상사맨’이라는 약발도 오래가지 못했다. 의미와 재미는 점점 월급에서 찾게 되었다. 이 땅의 5년차 직장인은 한 번쯤 기로에 선다. 더 늦기 전에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어 조바심이 난다.

물론 실천에 옮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누군가는 탈주를 감행한다. 홍한종씨(36)와 이참씨(31)는 회사 밖의 삶이, 서류 바깥의 일들이 궁금했다. 같은 회사, 다른 라인에서 이름만 알던 두 사람은 퇴사 후 ‘각자 잘 놀다가’ 2016년 함께하게 됐다.

함께 일하면서 제조사를 직접 상대하다 보니 ‘다른 길’이 보였다. 모든 물건은 서류가 아니라 공장으로부터 왔다. 공장은 ‘물건들’의 부모였다. 그러니까 그 새삼스러운 사실이 어느 날 눈에 들어왔다. 소고기나 사과의 원산지와 생산자를 표기하는 것처럼 공산품도 가능하지 않을까? 당신이 쓰는 칫솔, 치약, 섬유유연제, 비누, 물티슈, 그 밖의 많은 물건의 생산자를 각각 누구라고 알려줄 수는 없을까. 물건은 ‘브랜드만’ 알려주었다. 물건을 낳는 공장의 역사를 발굴하고 이름을 남겨주고 싶었다. 2차 산업인 제조업은 점차 사양산업이 되어가고 국내에 꿋꿋이 남아 있는 공장은 공장주와 더불어 고령화 과정을 밟고 있었다. 언젠가는 사라지고 버려질지 모르는 기술이 여전히 분투 중인 공간이었다.

ⓒ윤성희 ‘단골공장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소셜 벤처 ‘팩토리얼’의 이참씨(왼쪽)와 홍한종씨.

온라인 쇼핑은 전환기를 맞고 있었다. 우후죽순 생기는 스타트업은 어떻게 하면 결제를 좀 더 편하게 할지, 어떻게 하면 배송을 신속하게 할지에 집중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좀 더 ‘본질적인 것’을 고심했다. 어떤 물건을 팔 것인가. 답은 정해져 있었다. 당연히 ‘좋은 물건’이다. 그렇다면 좋은 물건은 어디에서 오는가. 공장과 소비자를 직접 연결할 수는 없을까. 훌륭한 제조 능력을 갖고도 제품설명서 속 작은 글씨로만 머물렀던 제조사들이 소비자와 직접 만날 수 있도록 ‘단골공장’을 발굴하고 소개해보면 어떨까.

그렇게 2016년 9월 ‘팩토리얼’이 시작됐다. 팩토리얼은 큐레이션(여러 정보를 수집·선별하고 이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 전파하는 것)의 영역을 생필품으로 확장했다. 이참씨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사업이든 성공하기 위해서는 세 단어로 설명이 가능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팩토리얼을, 단골공장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궁리해봤는데 이거 같아요. ‘소비자와’ ‘공장을’ ‘잇다’.”

팩토리얼이 단골공장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내놓은 첫 번째 제품은 섬유탈취제였다. 섬유탈취제는 이씨가 개인 사업을 하면서 알게 된 태원산업의 김종원 대표가 꼭 한 번 만들어보고 싶었던 제품이다. 태원산업은 세제 등을 OEM으로 생산해 대형 유통사에 납품하는 공장이다. 섬유탈취제 역시 자체 개발하고 시제품을 만들었지만 비싼 원료 때문에 생산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작은 제조회사들은 좋은 제품을 만들 기술은 있지만 소비자에게 알릴 통로가 적어요. 또 한국은 브랜드 의존도가 높아요. 새롭고 좋은 제품이 내 머릿속에는 있는데 감히 도전할 용기가 나지 않네요.” 언젠가 김종원 대표가 손자들에게만 아껴 쓴다며 보여줬던 그 제품. 팩토리얼의 첫 번째 상품으로 손색없어 보였다.

과연 몇 명이나 이 제품을 원할까?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에 시험 삼아 올리면서도 확신할 수 없었다. 제품을 만들기 위해 공장을 가동하려면 최소 발주량(MOQ)을 맞춰야 한다. 태원산업도 팩토리얼도 ‘맨땅에 헤딩’이었다. 홍씨도, 이씨도 매일 펀딩 사이트를 들여다보며 밤잠을 못 이뤘다. 한 달 동안 1420명이 2000만원이 넘는 돈을 모아줬고, 덕분에 손해 보지 않고 공장을 돌릴 수 있었다. 소비자들이 팩토리얼을 통해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낸 셈이다.

ⓒ팩토리얼 제공 태원산업의 섬유탈취제(왼쪽)와 두색하늘의 우산은 소비자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농산물처럼 ‘생필품 꾸러미’도 가능할까

첫 번째 펀딩을 성공적으로 끝낸 후 좋은 소식이 이어졌다. 지난 2월 팩토리얼은 소셜 벤처 인큐베이터 소풍(sopoong)의 ‘액셀러레이팅’ 투자 프로그램 3기에 선정됐다. 2008년 설립된 소풍은 쏘카·텀블벅 등 23개 국내외 소셜 벤처에 초기 투자를 진행해 사업이 안정적으로 안착될 수 있도록 돕는 단체다. 팩토리얼은 소풍의 투자금으로 자사 사이트를 개발·구축 중이다.

그사이 두 번째 크라우드펀딩도 시작했다. 두 번째 제품은 국내 유일의 우산 제조사인 두색하늘의 우산이다. 우산 한 개에 무려 4만3000원이다. 이 가격도 협상과 설득을 거쳐 나온 가격이다. 가격 허들이 높아 망설였다. 그런데 단 몇 개만 만들더라도 소비자에게 꼭 소개하고 싶었다. 시중에서는 살 수 없는 제품이기 때문이다. 두색하늘 우산은 고급 자동차 회사나 명품 브랜드를 대상으로만 납품한다. 살대 제작부터 봉제까지 우산 제작의 모든 과정을 수작업으로 하기 때문에 비쌀 수밖에 없다. 두색하늘이 만드는 우산 하나에만 특허가 4개다.

1990년에 우산 손잡이를 만들면서 시작한 공장은 모두가 투자를 꺼리던 외환위기 때에도 금형틀을 개발하면서 지금의 ‘명품’ 우산을 완성하는 데 몰두해왔다. 그만큼 송주홍 대표의 자존감도 상당했다. 홍씨와 이씨는 일주일에 두 번 이상 경기 가평의 공장에 직접 찾아가 송 대표를 설득했다. 한 달이 넘도록 끈질기게 방문한 후에야 판매 승낙을 얻었다. ‘100개만 팔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우산은 4월8일 800여 명의 후원자가 4500만원을 모아주면서 펀딩에 성공했다.

ⓒ팩토리얼 제공 섬유탈취제를 만든 태원산업은 세제 등을 OEM으로 생산해 대형 유통사에 납품하는 공장이다.

펀딩받은 금액 대부분은 제품을 생산하는 데 투자된다. 팩토리얼은 일종의 중개 수수료를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내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한 사람 정도의 인건비밖에 나오지 않는다. 5월 자체 홈페이지가 구축되고 판매 제품도 10~20종 정도로 늘어나면 수익구조도 어느 정도 안정되리라 예상한다. 회사가 안정되면 농산물 꾸러미처럼 ‘생필품 꾸러미’를 만들어볼 작정이다. 제품군이 갖춰지면 그 꾸러미를 ‘한국 우수기업 제품’으로 해외에 수출도 해보고 싶다. “생필품은 안전 이슈와도 연결돼 있고, 일상적으로 늘 필요한 거잖아요. 근데 마트에 가보면 휴지 하나만 해도 너무 종류가 많죠. 뭘 골라야 할지 모르겠고…. 믿을 수 있는 단골공장이 생기면 그만큼 고민이 줄어드는 거잖아요.” 소비자가 공장을, 공장이 소비자를 만나는 새로운 방법 하나가 팩토리얼을 통해 세상에 등장했다.

장일호 기자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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