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다, 세상 보다]이런 얄팍한 선동은 이제 통할 리가 없어
[경향신문]
대통령 선거가 90일 남았다. 지지율 8%로 5위를 달리고 있는 별로 인기 없는 후보는 궁리 끝에 유명한 선거 참모를 미국에서 모셔오기로 한다. 삼고초려 끝에 초빙을 승낙하지만 이 선거전략가는 사실, 정작 대통령 선거에서 이겨본 적이 없는 치명적 이력서의 주인공이다. 막상 현지에 온 그녀는 열악한 상황과 후보와의 갈등으로 골머리가 아픈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신을 늘 패배시켰던 라이벌이 지지율 1위 후보의 선거전략가로 영입됐다는 사실에 크게 좌절한다. 그러나 마음을 다잡고 심기일전, 대역전을 위해 머리를 짜내기 시작한다. 이들의 필승전략은 바로 ‘위기감 조성’이었다. 유권자들에게 불안감과 공포심을 자극해 나라는 더욱 혼란에 빠지지만 지지율 5위였던 대통령 후보는 결국 대선에서 승리한다.
조지 클루니가 제작한 영화 <프레지던트 메이커>(2015)의 줄거리다. 뻔한 정치드라마 같지만 의외로 실화이다.
원래 제목은 <Our Brand is Crisis>이고 같은 제목의 다큐멘터리가 2005년 먼저 나왔다. 다큐멘터리와 영화 모두 2002년 볼리비아 대통령 선거를 모델로 하고 있다.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 영입하듯이 선거 참모를 외국에서 데려오는 것도 신기하지만 선거전략가들의 선동, 네거티브 전략·전술이 진짜 축구시합하듯이 펼쳐지는 것도 재밌다.
로버트 M 슈럼은 미국의 유명한 정치 컨설턴트다. 그는 연설비서관으로 정치에 입문해 민주당 대선후보 앨 고어와 존 케리의 선거본부장을 지냈다. 모두가 알다시피 두 후보 모두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 슈럼은 8번에 걸친 경선, 대선 등에서 단 한번도 이기지 못한 ‘패배의 아이콘’ 그 자체인 인물. <프레지던트 메이커>에서 샌드라 불럭이 연기한 선거전략가가 바로 슈럼이다. 그는 평생의 한을 남미의 볼리비아에 가서 풀게 된다.
그가 도운 후보는 ‘고니’라는 애칭으로 불린, 1980년대 이미 대통령을 한 차례 하고도 인기 없이 은퇴했던 지지율 5위의 곤살로 산체스 데로사다. 그는 슈럼의 도움으로 결국 두 번째 대통령직에 당선되고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하는 듯했지만 취임 후 바로 ‘볼리비아 가스 전쟁’이 터져 임기도 못 채우고 망명길에 오른 볼리비아의 정치인이다.
볼리비아는 1825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후 매년 한두 번씩 쿠데타가 일어날 정도로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웠고 그 때문에 남미에서도 가장 못사는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게다가 분파와 언어도 제각각이라 분열도 심해 슈럼이 활약한 2002년 대선에선 6명의 후보가 초박빙 엎치락뒤치락하다가 1위를 한 고니조차 22.5%라는 저조한 득표율을 기록, 결선투표까지 치러야만 했다. <프레지던트 메이커>는 그러한 정치 상황에서 선거 캠프 간의 경쟁을 마치 스포츠 드라마처럼 그려 관객에게 ‘강 건너 불구경’을 하게 해준다.
유비에게는 제갈량이 있었고 유방에게는 장자방, 수양대군에겐 한명회라는 오른팔이 있었다. 이들은 자신이 모시는 주군의 집권을 위해 온갖 지략과 묘수를 짜냈다. 우리의 현대 정치사에도 굴지의 전략가나 모사꾼들이 많이 있었고 지금의 대선후보 캠프에도 수많은 총명한 두뇌들이 민심과 표심을 얻기 위해 주야로 회전 중일 것이다. 비록 캠프 간 비열한 네거티브와 이전투구식의 지저분한 공방도 있지만 대통령 선거라면 이 정도의 소란은 감내해야 할 것 같다. 파티를 신나게 하다 보면 술병 몇 병은 깨지지 않는가? 다만 2002년 볼리비아에서 고니와 슈럼이 그러했듯이 유권자들을 기만하는 쇼킹 요법이나 공연한 위기감을 조성하는 캠프가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하긴 촛불과 탄핵 정국을 지나며 더욱 성숙해진 우리에게 그런 얄팍한 선동은 절대 통하지 않겠지만.
<권오섭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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