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청년 위로한다더니.. <혼술남녀> 뒤에서 벌어진 처참한 일들

김윤정 입력 2017.04.21. 20:02 수정 2017.04.2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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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신입 PD 죽음으로 내몬 '업계 관행', 왜 아무도 책임지지 않나

[오마이뉴스김윤정 기자]

tvN <혼술남녀>는 공무원이 되기 위해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사랑하지도 못하는 오늘의 청춘들과, 정글 같은 노량진 학원가에 던져진 새내기 학원 강사의 이야기였다. 드라마는 혼술 한 잔으로 지친 하루를 마무리하는, 비슷한 처지의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위로를 건넸다.

고 이한빛 PD는 이 드라마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며 드라마 PD를 꿈꿨던 그에게, <혼술남녀>는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최적의 작품이었다. 그가 참여한 드라마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됐지만, 그는 마지막 촬영을 마친 뒤 스스로 죽음을 택하고 말았다. 

[관련기사] 꿈 많던 신입 PD의 자살, CJ는 정말 책임이 없나

청춘 위로한 <혼술남녀>, 그 안에서 고통받은 청춘

 노량진 청춘들의 이야기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은 드라마 <혼술남녀>
ⓒ CJ E&M

지난 18일 고 이한빛 PD의 유가족을 중심으로 결성된 'tvN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는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난 6개월간의 조사 결과와 입장, 향후 활동 계획을 발표했다. 이날 대책위가 공개한 조사보고서와 유족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 PD는 드라마 제작 기간 동안 심각한 노동 강도에 시달렸다고 한다. 본래 반(半)사전 제작으로 진행될 예정이던 <혼술남녀>는 초반 촬영·조명·장비 팀 교체로 촬영이 딜레이 됐고, 실질 제작 기간이 대폭 줄어들며 제작 환경이 극도로 악화됐다는 것이다.

어머니 김혜정씨는 "일주일에 한두 번, 그것도 새벽 2~3시가 되어서야 들어와 겨우 한 두시간 자고 다시 나갔다"고 증언했다. 마지막회 촬영 간다고 나간 아들이 며칠 동안 돌아오지 않았지만, 가족들은 으레 촬영 중이겠거니 싶어 실종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을 정도다. 촬영이 진행된 55일 동안 그가 쉰 날은 단 이틀. 이 기간 발신 통화 건수만 1547건이었다. 하루 최대 94건, 하루 평균 28건. 수신 통화 건수는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를 가장 힘들게 만든 건, 이런 살인적인 업무 강도가 아니었다.

"많이 꼬여있었어요. 이십대의 삶은. (...) 하루 20시간이 넘는 노동에 지쳐있는 노동자들을 두세 시간 재운 뒤 다시 불러내 독촉하고 등 떠밀고. 제가 가장 경멸하던 삶이기에 더 이어가긴 어려웠어요. (...)" - 고 이한빛 PD 유서 발췌

고인은 작품 초반 '작품 완성도'를 이유로 일방적으로 계약이 해지된 외주 업체와 계약직 스태프들의 이야기를 하며 괴로워했다고 한다. 한때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선지급 받은 계약금을 토해내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모습에 괴로워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위해 막내 PD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이한빛 PD는 CJ E&M에 입사한 뒤 "돈을 벌면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서 여러 달 치 월급 대부분을 '416 연대' 'KTX 해고승무원' '기륭전자' '서울대 점거현장' 등에 기부했을 정도로, 대학 시절부터 약자들의 아픔과 고통에 누구보다 공감하고 치열하게 고민하던 청년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꿈꿔왔던 현장에서, 자신이 "가장 경멸하던"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자신 역시 그 불합리한 제작 환경과 조직 문화에 고통받는 '막내'에 불과했지만, '정규직' 'PD' 였기에 결국 '갑'의 위치에 설 수밖에 없었고, 그는 그런 현실에 안도하기보다 아파했다.   

사람 잡은 '업계 관행'

ⓒ 대책위 페이스북
이같은 내용이 알려진 뒤, 19일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성명을 발표했다.

"이 PD의 죽음은 오늘날 방송 콘텐츠 제작에 종사하는 청년 노동자들의 현실을 웅변한다. 막내는 관행에 따라야 하고 그 관행이 적법한지, 정당한지, 합리적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노동이 존중받는지, 이 일에 참여하는 수많은 약자는 배려받고 있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갑을의 지위와 서열은 이미 정해져 있고 관행이라는 이름의 질서에 순응하느냐 여부만 중요하다"면서 "파견, 도급, 용역, 기간제, 단시간 알바, 프리랜서 등 온갖 비정규직이 넘쳐나 '비정규직 박물관'으로 불리는 방송 콘텐츠 노동현장을 근본적으로 바꿔 나가야 한다. 장시간 노동과 상명하복 체제로 사람을 쥐어짜는 관행을 타파해야 한다. 노동인권이 존중받는 방송 콘텐츠 제작 현장을 만들어야 한다."

같은 날인 19일,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역시 "방송과 영화가 소수 정예의 인원으로 제작된다는 것은 영상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제작 도중 다수의 스태프가 해고되고 대체인력이 충원되지 않았다면, 해고된 스태프의 업무까지 도맡아 하는 스태프들은 더욱 고된 노동에 시달려야 했을 것"이라는 성명을 냈다. 

언론노조와 영화산업노조의 연대 성명은 고인의 죽음이 '개인의 문제'가 아닌, 업계의 구조적인 문제라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CJ E&M(아래 사측)은 "드라마 현장에서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군대식 조직문화와 불합리한 제작환경, 열악한 노동 조건이 고인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대책위의 주장에, "업계 관행"을 들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책임 회피하는 CJ E&M

 18일 서울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tvN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 입장발표 기자간담회.
ⓒ 김윤정
대책위는 이한빛 PD는 비록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소상하게 밝히고, 이 같은 일들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 위한 재발 방지 대책을 세워 달라 요구한다. 하지만 사측은 여전히 이 PD의 죽음과 PD 업무는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다.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한 이한빛님에 대해 큰 슬픔을 표합니다. 또한 어떠한 말도 닿을 수 없는 유가족의 아픔에도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사망에 대한 경찰의 조사 이후 그동안 유가족과 원인 규명의 절차와 방식에 대해 협의해왔지만, 오늘과 같은 상황이 생겨 매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당사 및 임직원들은 경찰과 공적인 관련 기관 등이 조사에 나선다면 적극 임할 것이며, 조사 결과를 수용하고 지적된 문제에 대한 개선 방안을 마련하는 등 책임질 것입니다. 다시 한번 안타까운 일로 아픔을 겪고 계시는 유가족분들께 애도를 표하며, CJ E&M과 tvN에 관심을 주시는 모든 분들께 송구한 말씀을 전합니다." - 19일 CJ E&M이 밝힌 공식 입장 전문

대책위에서 유가족을 돕고 있는 청년유니온 김민수 위원장은 이 같은 공식 입장에 대해 "전형적인 유체이탈 화법"이라면서 "이번 사건 가시화 이전의 3차례 면담과 2차례 서면답변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CJ E&M에게 기대한 것은 이제라도 '그동안 우리가 성과주의에 매몰돼 이 같은 점까지 챙기진 못했다. 이 PD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업계 관행 개선에 최선을 다하겠다' 정도였다. 하지만 사측은 이 PD의 죽음에 대해 책임회피도 모자라, '근무 태만'이니 '비정규직을 모욕했다'느니 하는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고인을 모욕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민수 위원장에 따르면, 사측은 유가족과 대책위가 요구하고 있는 객관적 자료(출퇴근 내역 등)를 공개하지 않고, 유가족과 <혼술남녀> 팀에서 일했던 직원들의 접촉을 막고 있다. 유가족들은 알음알음 <혼술남녀>에 참여했던 외부 업체들과 접촉하는 한편, 가족들이 기억하는 고인과의 대화, 카톡, 유서 등을 토대로 진상 규명을 위한 조사를 이어왔다.

하지만 사측은 자체 조사결과를 근거로 언어 폭력과 괴롭힘, 과도한 업무 부여와 심각한 노동강도, 외부 업체 계약 해지 업무를 담당하며 느낀 죄책감 등 유가족들이 주장하고 있는 고 이한빛 PD를 죽임에 이르게 한 요인들을 모두 부인하고 있다. 대책위는 유가족이 배제된 채 이뤄진,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사측 주도의 조사 결과를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19일 <오마이뉴스>는 CJ E&M에 대책위가 낸 조사 보고서에 반박할 내용이 있는지 물었고, "보고서를 확인 중에 있으며, 대응 여부 역시 검토 중"이라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동생 한솔씨 "형의 죽음, 흔한 프레임에 갇히지 않았으면"

 고 이한빛 PD의 동생 한솔씨가 19일 서울 상암동 CJ E&M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 김윤정
이한빛. 그는 서울대 출신의 공채 PD였다. 막내라 고달프고 힘들었겠지만, 조금만 견디면 그의 미래는 탄탄대로였을 것이다. 비정규직들의 고통을 보며 '정규직'이라는 자신의 처지에 안도하고, 지난날 열심히 공부해 오늘에 이른 자신을 기특해하는 종류의 사람이었다면, 그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내리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약자들의 아픔을 외면하기에는 너무 섬세한 감수성과 뛰어난 공감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분명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드라마 PD'가 되는데 최적의 조건이다. 하지만 비상식이 상식적으로 행해지는 공간에서, 그의 감수성과 공감 능력은 스스로를 더 괴롭게 만들뿐이었다. 

<혼술남녀>가 흔한 사랑 이야기였다면 달랐을 지 모르겠다. "언제나 치열하게 살아왔던 그가, 자신이 꿈꾸었던 공간에서 오직 비열하게 살아야하는 현실에 갇힌 것"이라는 고 이한빛 PD의 동생 한솔씨의 글처럼, 드라마가 전하는 따뜻한 메시지와 그 안에 담긴 현실 사이의 괴리에서 고통스러워했던 그에게, 드라마를 통해 위로 받았다는 시청자들의 감사와 찬사는 더 큰 중압감이 되었을 것이다.

상식이 통용되는 정의로운 사회를 꿈꿨을 한 청년은 왜 좌절했을까.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을까. 고 이한빛 PD 죽음을 그저 '업계 관행을 견뎌내지 못한 한 개인의 슬픈 결말' 정도로 마무리하려는 CJ의 현재 대응은, 역설적으로 왜 고인이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동생 한솔씨는 19일 서울 상암동 CJ E&M 본사 앞에서 "사망사건의 책임을 안정하고 사과하라"며 1인 시위를 했다. 1인 시위를 마친 뒤, <오마이뉴스>와 만난 한솔씨는 "형의 죽음이 '힘들어서 죽었다'는 당연한 프레임에 갇히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누군가가 죽어야 바뀌는 세상도 슬프지만, 죽어도 바뀌지 않는 세상은 더 슬프지 않나"라는 한솔씨의 호소. '업계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비상식적인 노동환경을 방치한 CJ와 방송계가 이제는 응답해야 하지 않을까.

한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도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고인의 유서를 읽으면서 가슴이 아팠다. 유서를 써내려갔을 고인의 심정을 생각하면 몸이 떨려온다"면서 "왜 열정 가득한 젊은 PD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유가족과 시민단체들의 강력한 의문과 문제들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와 책임자들의 분명한 해명이 필요하다. 청년들이 배운 정의와 상식이 현실에서도 정의와 상식이 되는 나라를 만들겠다"며 대책위에 힘을 보탰다.

 서울대 점거현장에 후원금을 보내고 뿌듯해하던 고 이한빛 PD. 그는 세월호, 해고 노동자, 비정규직 문제 등에 함께 아파하던 청년이었다.
ⓒ 고 이한빛 PD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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