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청년 착취해 만든 즐거움은 끝내야"..tvN '혼술남녀' 신입PD 사망사건에 각계 성명 잇따라

송윤경 기자 입력 2017.04.21. 19:09 수정 2017.04.21.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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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8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열린 ‘tvN 혼술남녀 신입조연출 사망사건’ 기자회견에서 드라마 조연출을 맡았다가 지난해 사망한 故 이한빛 PD의 모친인 김혜영씨(앞줄 왼쪽 세번째)가 아들 사망 사건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마이크를 잡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던 김씨는 “젊은이들이 좌절감을 겪고도 아무런 말도 못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아들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조그마한 불이라도 지펴야겠다고 결심했다”라고 말했다. /정지윤기자

tvN 드라마 ‘혼술남녀’의 신입 조연출 故이한빛 PD 사망 사건에 대한 각계의 성명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CJ E&M 소속 케이블방송 tVN의 ‘혼술남녀’의 조연출로 일했던 이한빛 PD는 그해 10월26일 실종 5일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CJ E&M은 “학대나 모욕은 없었다”며 개인적인 문제로 돌리려 했으나 유가족과 청년유니온 등 27개 노조·시민단체로 구성된 대책위가 6개월 간 진상조사를 벌인 결과는 전혀 달랐다.

지난 18일 대책위 발표에 따르면 통화내역 등을 토대로 추정한 결과 이 PD는 지난해 8월27일부터 실종 전날인 10월 20일까지 단 2일만 쉴 수 있었다. 같은기간의 발신통화 건수(1547건)를 볼 때 하루 평균 수면시간은 4~5시간에 불과했다.

대책위는 또 이 PD가 제작팀의 지시에 따라 계약직 스태프 ‘정리해고’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도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밝혔다. 이 PD는 유서에 “촬영장에서 스탭들이 농담 반 진담 반 건네는 ‘노동 착취’라는 단어가 가슴을 후벼팠다”며 “물론 나도 노동자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그네들 앞에선 노동자를 쥐어짜는 관리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쓴 것으로 드러났다.

대책위에 따르면 이 PD는 또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드라마할 기본 자세도 안돼 있는 놈들”과 같은 인격모독도 겪어야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한빛 PD의 사망사건의 진상이 알려지자 ‘청년 착취’ 현실을 고발하고, CJ E&M의 책임있는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는 성명이 잇따르고 있다.

청년유니온의 본부와 전국 각 지부는 21일 ‘청년을 착취해서 만든 즐거움은 끝내야 한다’는 성명을 냈다.

청년유니온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드라마를 만들고자 입사한 신입사원의 꿈이 부서졌다. 지금도 카메라 뒤에 또 다른 한빛 PD가 있다”면서 “우리는 이들의 꿈마저 부서지게 둘 수 없다. 그래서 ‘이 바닥은 원래 그래’라는 말로 넘어갈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원래 그렇다고 그런 인격을 말살시키는 구조가 정당화될 수 없다. 이 세상에 원래부터 그런 것은 없다”면서 “‘이 바닥’의 변화는 당연히 CJ E&M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대로는 CJ E&M이 故이한빛 PD의 죽음에 애도를 표할 자격도, 청년들에게 위로를 건넬 자격도 없다. 누군가의 꿈을, 인격을, 노동을 착취하여 만들어내는 ‘즐거움’을 이제는 끝내야 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청년유니온(21일), 민달팽이유니온(20일), 전국언론노동조합(19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19일), 사회진보연대(19일),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19일)의 성명 전문이다.

■ 청년유니온

청년을 착취해서 만든 즐거움은 끝내야 한다

“누가 나를 진정으로 위로해줄까?”

노량진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청년들의 애환을 그려내면서, 청년들의 마음을 위로해주었던 tvN 드라마 ‘혼술남녀’. 우리는 이제야 그 카메라 뒤에서 쓰러져 간 청년의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故이한빛 PD가 세상을 떠난 지 6개월이 지나서야 말할 수 있었다.

지난 6개월 동안 CJ E&M은 제대로 협의에 임하지 않았다. 유가족 측의 객관적인 자료 요구를 거부한 채, ‘해당 제작현장의 노동강도가 특별히 높은 편이 아니’고 오히려 ‘한빛 PD의 근태불량으로 사측에 피해가 발생했다’고 말해왔다. 4월 18일, 대책위 입장이 기사화 된 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CJ E&M은 공식입장을 밝혔다. 그마저도 유가족과 대책위는 CJ E&M이 아니라 언론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내용도 유가족의 요구는 또다시 외면한 채, 기존의 입장을 반복하였다.

故이한빛 PD의 죽음은 단순히 애도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열심히 꿈을 좇았던 한 청년의 미래를 끊어냈고, 지금도 어디에선가 같은 꿈을 꾸고 있을 청년들에게 절망을,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그동안의 위로가 기만이었다는 배신감을 안겨주었다.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드라마를 만들고자 입사한 신입사원의 꿈이 부서졌다. 지금도 카메라 뒤에 또 다른 한빛 PD가 있다. 우리는 이들의 꿈마저 부서지게 둘 수 없다. 그래서 “이 바닥은 원래 그래”라는 말로 넘어갈 수 없다. 원래 그렇다고 그런 인격을 말살시키는 구조가 정당화될 수 없다. 이 세상에 원래부터 그런 것은 없다.

‘이 바닥’의 변화는 당연히 CJ E&M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대로는 CJ E&M이 故이한빛 PD의 죽음에 애도를 표할 자격도, 청년들에게 위로를 건넬 자격도 없다. 누군가의 꿈을, 인격을, 노동을 착취하여 만들어내는 ‘즐거움’을 이제는 끝내야 한다.

2017년 4월 21일

청년유니온, 경기청년유니온, 경남청년유니온, 광주청년유니온, 대구청년유니온, 부산청년유니온, 인천청년유니온, 청소년유니온

■민달팽이유니온

부끄러움과 미안함은 CJ E&M의 몫이어야 합니다.

어느 날, 노량진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가 새로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노량진이 있는 동작구는 청년 주거빈곤율이 55.8%로 서울은 물론 전국에서 가장 높은 지역입니다. 또, 노량진 공시촌으로 대표되는 이 지역은 청년들이 미래를 위해 오늘, 잠시 머무르는 공간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한 평 남짓한 고시원에서, 그리고 원룸과 고시원 그 사이에 기상천외한 원룸들이 즐비한 곳에서 펼쳐지는 삶들을 담는 드라마라니 기대와 함께 걱정이 들었습니다.

드라마를 한 회, 한 회 볼수록 걱정은 차츰 사라졌습니다. 드라마에 대한 비평은 하지 않겠습니다만 적어도 혼술남녀는 ‘불쌍한 청년’이라는 프레임 갇혀 소비하지는 않아서 안도했습니다. 흔한 다큐멘터리에서 보이는 피상적인 삶의 단면이 아니였기 때문입니다. 고시원과 공무원 시험 학원을 배경으로 쏟아지는 이야기에 함께 웃고 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혼술남녀의 시즌2를 앞두고 있는 지금은 참혹합니다. 드라마의 결말과 상관없이 결국 우리는 눈물과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남긴 드라마를 갖게 되었습니다.

고인이 된 이한빛 PD는 혼술남녀 제작에 참여하면서 강도 높은 노동과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들을 관리하는 역할을 도맡았습니다. 그에게 드라마는 일터의 공간이자 삶의 가치를 실현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드라마는 그와 같은, 그가 함께 살아가고 싶은 청년들의 삶을 담은 드라마였습니다. tvn의 혼술남녀는 청년들의 삶을 팔아 시청자를 위로하는 척했지만 뒤편에서는 청년들의 삶을 정말로 팔고, 쥐어짜고, 기만하고 있었습니다. 시청자를 속인 드라마이자 청년들을 배신한 드라마입니다.

왜 부끄러움과 미안함은 남겨진 자의 몫입니까. 희망을 이야기 하고 변화를 만들어보자는 사람들의 고군분투를 ‘사회 생활 모르는 사람들의 치기’로 폄하합니까. 우리가 만든 구조도 아닌데 때로는 내가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되게끔 만드는 것입니까. 혼술남녀를 즐겁게 보고 노량진 공시촌에서 일어나는 다사다난하고 희노애락이 담긴 이야기들을 보면서 위로받고 격려받은 청년들이 그 시간을 부끄러워하고 있습니다.

‘청년팔이’로 돈을 번 CJ E&M은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이번 사건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철저한 진상규명과 함께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합니다. 비단 한 방송사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수많은 일터에서 벌어지는 절망의 고리를 이제 끊어내야 합니다. 이한빛 PD를 더 잃을 수는 없습니다. ‘일과 노동은 자아실현의 수단이다.’라고 교과서의 가르침을 배우고 자란 사람들이 거짓을 배우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2017년 4월 20일

민달팽이유니온

■전국언론노동조합

CJ E&M 신입PD 사망 사건 특별근로감독 당장 실시하라

어제(18일) 오전 가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 6개월간의 진상 조사 결과를 공개하고 CJ E&M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대책 수립을 촉구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김환균, ‘언론노조’)은 대책위 구성에 함께하며 故 이한빛 PD의 명예 회복과 방송 콘텐츠 제작 노동 환경의 개선을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이다.

이 PD의 죽음은 오늘 날 방송콘텐츠 제작에 종사하는 청년 노동자들의 현실을 웅변한다. 막내는 관행에 따라야 하고 그 관행이 적법한지, 정당한지, 합리적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노동이 존중받는지, 이 일에 참여하는 수많은 약자들은 배려 받고 있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갑을의 지위와 서열은 이미 정해져 있고 관행이라는 이름의 질서에 순응하느냐 여부만 중요하다.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 따위는 설 자리조차 없다. 게다가 CJ E&M 안에는 자기 권리를 대변해 줄 노동조합도 존재하지 않았다.

CJ E&M의 책임 있는 경영진과 관계자들은 지금이라도 대책위의 요구에 귀 기울여 제대로 된 진상 조사와 책임자 문책,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한다. 하지만 그동안 이 사건의 책임을 고인이 된 당사자에게 떠 넘겨온 CJ E&M의 행태로 볼 때 자발적인 해결은 불가능해 보인다. 따라서 언론노조는 고용노동부에 공개 요구한다. CJ E&M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당장 실시하라.

CJ E&M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해야 할 필요성과 요건은 차고 넘친다. 초과근로와 휴게시간에 대한 근로기준법상 규정이 적법하게 지켜졌는지 직장 내 괴롭힘은 없었는지 철저히 조사해 책임자에겐 법적 책임을 묻고 경영진으로 하여금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하게 지도하고 관리 감독해야 한다. 그리고 경영진이 내놓은 대책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수시로 현장을 점검해야 한다. 그래야만 방송 콘텐츠 산업의 살인적인 노동 강도와 야만적인 제작 시스템을 바로잡을 수 있다. 더 이상 방송사업자들의 노동관계법 위반 행위에 대해 눈 감아서는 안 된다. 공익적 역할을 수행해야 할 방송사들이 불법 행위, 노동 착취에 앞장선다면 그들이 만든 콘텐츠가 신뢰받을 수 있겠는가?

행복한 노동이 좋은 방송,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법이다. 파견, 도급, 용역, 기간제, 단시간알바, 프리랜서 등 온갖 비정규직 넘쳐나 ‘비정규직 박물관’으로 불리는 방송 콘텐츠 노동현장을 근본적으로 바꿔 나가야 한다. 장시간 노동과 상명하복 체제로 사람을 쥐어짜는 관행을 타파해야 한다. 노동인권이 존중받는 방송 콘텐츠 제작 현장을 만들어야 한다. 고용노동부가 故이한빛 PD가 세상을 떠난 지 6개월이 지난 오늘,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자신들에게 부여된 최소한의 공적 책임과 역할을 수행해주길 바란다.

2017년 4월 19일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CJ E&M은 tvN <혼술남녀>신입 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 조사결과를 수용하고 사죄하라

CJ E&M측의 공식입장에 관하여

CJ E&M은 tvN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가 2017. 4. 18. 회사측의 책임 인정 및 공식사과, 책임자에 대한 징계 및 재발방지책을 촉구하며 故 이한빛 PD가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장시간 노동과 과도한 업무부여 및 언어폭력과 괴롭힘 등으로 자살하였다는 진상조사결과 발표에 대하여, 같은 날 저녁 ‘깊은 애도를 표한다’면서 ‘경찰과 공적인 관련기관 등이 조사에 나선다면 적극 임하고 조사결과를 수용하고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공식입장을 밝혔다.

유가족은 故 이한빛 PD가 세상을 져버린 직후부터 회사측에 故 이한빛 PD의 명예회복을 위한 진상조사와 책임있는 사과를 요구하였으나, 한 때 故 이한빛 PD가 몸담고 있었던 사측으로부터 돌아온 조사결과는 “故 이한빛 PD에 대한 학대나 모욕은 없었고, 혼술남녀의 제작환경의 근무강도도 높은 편이 아니었으며, 故 이한빛 PD의 근태불량으로 사측에 피해가 발생하였다”는 등 故 이한빛 PD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었다.

유가족의 진상 조사 요구는 故 이한빛 PD가 과중한 노동을 하였는지, 업무에서 폭력적이거나 모욕이 있었는지를 확인해달라는 매우 단순한 요구였다. 그러나 CJ E&M이 보인 태도는 ‘원래 방송계는 다 그렇다, 막내 PD는 다 그렇다’라는 것이었다.

대책위원회가 발표한 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故 이한빛 PD는 촬영이 있는 날에는 촬영현장에서, 촬영이 없는 날에는 회사에서 노동을 하며 막내신입 PD이자 중간관리자로서 선임들과 비정규직 스탭들을 조율하며 자신에게 부과된 막중한 업무를 촬영기간인 2016. 8. 27.부터 2016. 10. 20.까지 55일 동안 온 몸으로 겪었다.

故 이한빛 PD조차 유서에서 “하루에 20시간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두 세시간 재운 뒤 다시 현장으로 노동자를 불러내고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떠밀고 제가 가장 경멸했던 삶이기에 더 이어가긴 어려웠어요”라고 하며, 드라마 제작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과 과중한 업무부여를 몸소 증명하였다.

우리는 故 이한빛 PD의 사망의 원인을 이미 CJ E&M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CJ E&M은 故 이한빛 PD가 죽음을 통해 알린 드라마 제작환경 노동자들의 열악함을 경찰이나 공적 기관 조사를 운운하며, 외면만 할 것이 아니라, 대책위원회가 6개월 간 조사하여 발표한 진상조사보고서를 겸허한 마음으로 수용하고, 진정성 있는 사과와 재발방지대책 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다.

민변 노동위원회는 한류를 선도하며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는 컨텐츠를 제작하는 회사인 CJ E&M이 6개월이나 지난 이 마당에 또다시 유가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지 말 것을 바라며, 이 사건을 주시하고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끝까지 연대할 것이다.

2017년 4월 19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 사회진보연대

CJ E&M은 故이한빛님 사망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하라.

CJ E&M에 입사하여 드라마 ‘혼술남녀’의 조연출로 첫 업무를 시작했던 한 PD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입사한지 9개월 만에,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한지 6개월 만에 벌어진 비극이다. CJ E&M은 고인이 실종된 상황에서 고인의 행방을 찾기는커녕 회사 소유의 법인카드 회수에 관심을 쏟았고, 유가족을 만나 고인의 근무태만을 한 시간에 걸쳐 강변했다. 비슷한 일을 한두 번 겪는 것이 아니라는 듯 능숙하게 책임회피를 시도한 것이다. 유가족이 진상규명과 공식적인 사과, 그리고 재발방치대책을 요구하자 CJ E&M은 과도한 노동시간·노동강도, 괴롭힘 등 일체의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 사실이며, 모든 문제는 이한빛 PD의 ‘근태불량’에 있다고 주장했다. 합동조사를 통해 객관적인 진실을 규명하자는 유가족의 제안은 거부하고 자체 조사만을 고집했으며, 노동강도 및 출퇴근시간 등을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는 공개하지 않으면서 유가족이 파악한 정보를 모두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결국 유가족 및 가족대책팀은 사측과의 대화를 통한 해결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4월 18일 ‘tvN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 입장발표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6개월간 유가족과 가족대책팀이 조사한 ‘사망사건 조사보고서’가 공개되었고, 유가족 및 관련자의 증언이 이어졌다. 6개월을 버틴 것이 신기해보일 만큼 고인이 극도로 비인간적인 상황에 놓여있었음이 밝혀졌다. ‘혼술남녀’는 전체 분량의 절반이 사전제작으로 기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방송 일정에 맞춰 제작하기에 급급한 상황이었다. 촬영·조명·장비팀이 대거 교체되는 돌발 상황이 발생했음에도 일정이 조정되지도 추가 인력이 투입되지도 않았으며, 모든 부담은 기존 인력이 감당해야 했다. 신입직원이었던 이한빛 PD는 이 모든 상황을 감당하면서 극도의 장시간노동을 해야만 했다. 계약직이었던 외주업체 직원들이 해고되는 것을 지켜봐야 했으며, PD의 업무가 아닌 계약금 환수까지 담당하면서 극도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불합리한 상황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던 이한빛 PD는 집단적인 모욕과 괴롭힘까지 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책위 기자회견이 있은 후 CJ E&M은 공식 입장을 통해 “이한빛님에 대해 큰 슬픔을 표하며, 유가족의 아픔에도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바로 뒤이어 “유가족과 원인 규명의 절차와 방식에 대해 협의를 해왔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으며, “경찰과 공적인 관련 기관 등이 조사에 나선다면 적극 임할 것”이라면서 유가족과 대책위의 존재를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형사상 절차를 통해 어쩔 수 없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거짓과 책임회피로 일관한 뒤 곧바로 이어진 “유가족분들께 애도를 표하며, CJ E&M과 tvN에 관심을 주시는 모든 분들게 송구한 말씀을 전한다”는 인면수심의 가식으로 입장서는 마무리된다. 무엇보다 사건이 발생한지 6개월 동안 일언반구 입장도 내놓지 않고&#160;가족의 요구도 무시하다 대책위 기자회견이 있은 후 몇 시간 만에 입장을 발표하는 것부터가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

명백하게도, 가장 큰 악은 시청률과 수익에만 모든 초점을 맞추면서 직원들을 비인간적인 노동조건으로 내몰았고, 그 결과 소중한 목숨을 죽음에 이르게 했으며, 사건 발생 후에도 책임을 회피하고 고인의 명예를 훼손한 CJ E&M이다. CJ E&M은 책임을 인정하고 유가족 및 시청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해야 한다. 사건의 직접적인 책임자를 처벌해야 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수립하고 이행해야 한다. 대책은 당연하게도, 상식적인 상황에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인력을 확보하고, 프로그램 제작 환경을 개선하며, 조직 내부 문화를 혁신하는 종합적인 것이어야 한다. 대책을 이야기하기가 민망하게도, CJ E&M은 현재 어떠한 책임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한편, 이번 사건은 얼마 전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넷마블 노동자의 연이은 사망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흥행 여부에 따라 높은 수익 혹은 높은 리스크를 얻게 되는 분야라는 공통점에다, 거대 자본이 리스크는 외부화하고 수익은 내부화하는 방식으로 업계의 노동자들을 초과 착취함으로써 수익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다는 점 또한 동일하다. 거대 자본의 횡포에 노동시장은 왜곡되어 단기계약, 외주하청이 판치고 노동자들은 극도로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내해야만 한다. 넷마블 노동자들의 사망은 정확히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사건이었으며, 이한빛 PD의 사망 역시 이러한 구조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고인은 CJ E&M의 최말단에 위치한 정규직 신입사원으로서 한편으로는 노동을 착취당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외주업체 직원들을 닦달해야 하는 상황에서 갈등하고 고통 받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노동착취, 비정규직·외주하청 문제, 거대자본의 횡포를 드러내고 개선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어야 하며, 사건의 올바른 해결을 통해서 다시는 비극적인 사망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간접적인 살인을 저지른 당사자인 CJ E&M이 책임을 인정함으로써 시작될 수 있다.

CJ E&M은 故이한빛PD의 사망사건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하라!

CJ E&M은 故이한빛PD의 사망사건의 책임자를 징계하고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라!

2017년 4월 19일

사회진보연대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혼술남녀> 피디의 사망은 노동착취로 인한 예정된 비극이었다.

지난해 10월26일, <혼술남녀> 종방 이튿날 숨진 채 발견된 고 이한빛 피디의 안타까운 비보를 접했다. 당시 이한빛 피디는 촬영내내 고된 노동에 시달린 것이 주요한 원인으로 알려졌으며, 그 중 작품완성도가 낮은 이유로 첫 방송 직전 다수의 스태프가 정리해고가 되었다고 한다.

방송과 영화는 소수 정예의 인원을 구성하여 제작한다라는 것은 영상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제작도중 다수의 스태프가 해고가 되고 대체인력이 충원되지 않았다면, 해고된 스태프의 업무까지 도 맡아하는 스태프들은 더욱 고된 노동에 시달려야 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영화는 평균 2시간짜리 분량의 러닝타임을 위해 평균 3개월의 촬영 제작기간을 갖는다. 그러나 사전제작하지 않은 방송 드라마의 경우, 매주 2회 분량 2시간(1회 분량당 1시간 기준)을 위해 7일 동안 촬영과 편집, 그리고 방영까지 모두 해야 한다.

영화산업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실시한 <2014년 영화스태프 근로환경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1주 평균근로일수는 5.45일이고, 1일 평균근로시간은 13.18시간이었으며, 이를 통해 1주 평균근로시간은 71.8시간으로, 법정 40시간에 비하여 평균 31.8시간을 초과하여 근로하고 있으며, 월단위로 환산하면 월평균 311.9시간 근로하고 있다.

그리고 방송산업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지원으로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에서 실시한 <2014년 방송스태프 근로환경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1주 평균근로일수는 5.21일이고, 1일 평균근로시간은 15.7시간이었으며, 이를 통해 1주 평균근로시간은 81.8시간으로, 법정 40시간에 비하여 평균 41.8시간을 초과하여 근로하고 있으며, 월단위로 환산하면 월평균 355.4시간 근로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2015년 12월 고용노동부에서 발간한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모습’을 살펴보면, 현재 우리나라의 1인당 연간 근로시간은 2,057시간으로 OECD 평균 근로시간인 1,706시간으로 조사되었다. 연간 근로시간을 월단위로 환산하면 OECD 월평균은 142.16시간, 한국 월평균은 171시간 근로하고 있다.

OECD 월평균(142.16시간)보다 영화는 169.74시간, 방송은 213.24시간 더 길게 근로하고 있으며, 한국 월평균(171시간)보다 영화는 140.9시간, 방송은 184.4시간 더 길게 근로하고 있다.

이렇듯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OECD와 한국 월평균 근로시간 보다 2배 넘게 장시간 근로를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영상업계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그런데 과도한 장시간 근로시간의 병폐로 주휴일 사용에 대한 만족도가 낮게 나타났고, 이에 유급휴가(주휴일)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응답으로 영화는 64.9%, 방송은 49.2%에 달했다.

심지어 급여항목에서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을 지급받는 비율로 영화는 14.7%, 방송은 4.3%에 불과한 것으로 보아, 근로기준법에 의한 초과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영상업계 관행이 되려 과도한 초과노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왜 영상업계의 고질적인 장시간 초과노동이 이루어졌을까?

첫째, 영상업계의 장시간 근로를 근로기준법 제59조에서 법적으로 장려되었기 때문이다(근로기준법 제59조에서 사용자와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하면 1주 연장근로 최대 12시간을 초과하여 상한선없이 연장근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둘째, 근로기준법에서는 근로시간 특례업종은 물론, “방송 프로그램ㆍ영화 등의 제작 사업에서의 프로듀서나 감독 업무”를 하는 노동자를 재량근로자 명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용노동부는 방송과 영화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지위를 부정하고 있다.

근로자 지위 부정으로 영상노동자는 철저히 노동자 지위에서 배제되고 있다.

따라서 근로기준법이 준수되고 있는지 사법경찰관의 지위를 갖고 운영되는 근로감독관제도에서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

이에 “대선후보”, “정부” 그리고 “국회”는 고 이한빛 피디와 같은 안타까운 죽음이 되풀이 되지 않고, 영화 및 방송산업 노동자를 비롯한 문화예술 종사자의 노동인권이 보장받을 수 있도록 다음을 속히 이행하라.

첫 번째, 모든 노동을 존중하고 사람을 먼저 생각하라!

문화를 만드는 일이건 화물을 만드는 일이건 모두 노동자 사람이 노동으로 생산한 것이다. 모든 노동자가 자부심을 갖고 당당히 일할 수 있도록 근로기준법을 당연 적용하라.

두 번째, 노동 차별ㆍ노동자 차별하는 근로기준법 제59조를 당장 폐기하라!

근로기준법 제59조에 포함된 특례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도 다른 일반노동자와 똑같은 노동자이다. 특례업종의 근로시간 특례는 사용자를 위한 조항이며, 노동 차별ㆍ노동자 차별하는 조항으로 헌법의 가치를 훼손하는 만큼, 근로기준법 제59조를 당장 폐기하라!

세 번째, 고용노동부는 문화예술산업의 근로감독을 실시하라!!

근로기준법에 엄연히 4인 이상 사업장에 근로감독이 적용되도록 하고 있다.

문화예술산업내 고질적인 장시간근로ㆍ최저임금 위반ㆍ임금체불 등을 근절할 수 있도록 근로감독을 전면 시행하라!

2017년 4월 19일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