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 있습니다-⑤성소수자 인권단체]"개신교는 '종북 게이' 같은 말까지 만들어 정치에 동성애 이용"

홍재원 기자 2017. 4. 21.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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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비온뒤무지개재단’ 한채윤 이사

한채윤 비온뒤무지개재단 상임이사가 17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폭력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며 차기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성소수자 이슈는 이번 대선에서 줄곧 ‘뜨거운 감자’다. 성별·장애·학력·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차별하는 행위를 금지하기 위한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 의사를 밝힌 대선후보는 현재까지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유일하다. 개신교 등이 ‘성적 지향’이 포함된 것을 문제 삼아 강력 반발하자 나머지 후보들 모두 침묵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최근 육군이 동성애 병사를 색출해내기 위해 함정수사를 벌였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성소수자의 목소리를 들어보기 위해 지난 17일 성소수자 인권단체인 ‘비온뒤무지개재단’(이하 무지개재단)을 찾았다. 무지개재단은 서울시·법무부 등 관련 기관들로부터 모두 사단법인 신청 허가를 거부당하자 정부와 소송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사무실은 서울 연희동의 한 주택가에 있었다. 총 200만원이 안되는 월세를 6개 시민단체가 내고 함께 사무실을 쓰고 있다. 이 단체 한채윤 이사(45)는 “한국의 보수 개신교가 정치세력화와 힘 과시를 위해 동성애 (반대)를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며 “‘빨갱이’ 혐오와 동성애 혐오를 하나로 묶어 ‘종북 게이’ ‘동성애 독재’라는 말까지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차기 정부는 헌법 정신에 따라 차별금지법 제정 등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한 이사와의 일문일답.

- 무지개재단의 사단법인 허가를 관련 기관들이 모두 거부했는데.

“이제까지 사단법인 형태의 성소수자 단체는 없었다. 사단법인이 되면 후원금 내는 분들에게 세금 면제를 해드릴 수 있어 2014년 서울시에 신청했더니 서울시 공무원이 ‘(성소수자는) 미풍양속에 어긋나 안된다’고 하더라. 서울시장이 인권변호사 출신인 박원순인데 말이다(웃음). 서울시가 안되니 인권 업무를 총괄하는 법무부에 설립 허가 신청을 냈다. 그런데 법무부도 ‘우리 소관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법무부 소관이 아니면 어디 담당이란 말인가. 이것은 차별이라고 판단해 행정소송을 제기해 1·2심에서 승소했다.”

- 그럼 이제 설립은 마쳤나.

“아니, 아직. 지난 6일 법무부가 대법원에 상고했다. 사실 정부기관의 단체 등록 거부는 전형적인 활동 방해 유형이다. 사단법인은 결사의 자유에 해당돼 심사가 아니라 사실상 등록제에 가까운데, 마치 성소수자 단체가 ‘반국가 단체’라도 되는 양 거부하고 있다.”

- 이런 게 성소수자가 겪는 차별의 대표적 사례인가.

“사단법인 문제는 차별의 핵심이 아니다. ‘차별’ 하면 사람들은 흑인이 버스도 탈 수 없었던 시절의 인종차별 같은 것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성소수자가 무슨 차별을 받느냐’고 의아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최근에도 육군참모총장이 동성애 병사를 색출하라고 지시해서 헌병들이 군인들을 잡아냈다(최근 군인권센터는 이 같은 의혹을 제기하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하겠다고 밝혔다). 내 존재 자체가,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게 범죄가 된다는 것, 어디서나 24시간 나를 숨기고 살아야 한다는 것, 그렇지 않으면 공격받을 수 있다는 건 이성애자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차별일 것이다. 학교에서의 왕따나 괴롭힘처럼 일상적 차별이라는 게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것만큼 엄청난 차별과 폭력이 어딨느냐. 모든 공간, 시간에서 내 존재를 어떻게 지켜야 할 것인가의 문제다.”

-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고 보나.

“사람들은 ‘서구에서 타락한 성 문화가 들어왔다’고 하는데 정확하게는 ‘(서구에서) 동성애 혐오가 들어온 것’이다. 혐오의 역사는 다양한데 현재 성소수자 문제에 관한 한 기독교에 기반을 둔 게 많다. 사실 ‘보수 개신교가 왜 이렇게 동성애 반대에 앞장서는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다. 지난 20년간 활동하면서 1990년대보다는 더 좋아지지 않았냐는 얘기를 듣는다. 그러나 1990년대엔 이렇게까지 조직적이고 강력하게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대놓고 하고 이들을 사회에서 지우자고 하지 않았다. 지금 폭언과 폭력을 훨씬 많이 한다. 그쪽(개신교)에서 ‘종북 게이’란 말을 만들었다. 요즘엔 ‘동성애 독재’란 말을 많이 쓴다.”

- 그런 단어들이 설득력을 갖겠나.

“어떤 사람에게는 전혀 설득력 없는 말이지만, 실제론 굉장히 무섭게 작용한다. 해방 후부터 이어져온 ‘빨갱이 혐오’나 공산당 독재에 대한 거부감을 이용하려는 거다. 마치 성소수자가 인민재판을 하고 교회 재산을 몰수할 것처럼 극도의 두려움을 환기하려는 것이다. 퀴어 퍼레이드에 반대가 없다가 2014년부터 수만명이 나와 반대하기 시작했다. 길에 드러누운 분들이 다 교회에서 나온 분들이었다. 같이 나온 분들이 어버이연합 분들이다. (교회 측이) ‘동성애는 종북 좌파’라고 설명했기 때문이다. 우리 개신교가 극우와 만난 게 2003년 노무현 정부부터다. 구국기도회란 이름으로 대규모 집회를 한다.”

-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2007년 7월 노무현 정부가 사학법 재개정에 들어간다. 비슷한 시기, 그해 10월에 차별금지법이 입법예고된다. 교회에서는 그전까지 관심 없다가 반대운동을 시작했다. 사학의 대부분이 교회 소유인 건 알지 않나. ‘정부가 법으로 우리 목을 조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차별금지법은 노무현 정부가 5년간 공들여 만든 법안이었다. 참여정부의 마지막 공적으로 삼기 위해 임기 말에 입법예고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보수 개신교에서 반대하기 시작했다. 법무부에 항의가 빗발치니 결국 법안에서 ‘성적 지향’을 빼버렸다.”

- 교회 측 반대 논리는.

“차별금지법이 되면 교회가 망한다고 한다. 종교탄압이라고 한다. 교회에서 ‘동성애가 싫다’고 목사가 말하면 잡혀간다고 말한다. 부목사를 채용할 때 동성애자란 이유로 거절하면 불이익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정치적으로 탄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차별금지법에 그런 내용은 없다.”

- 과거 발의됐던 차별금지법안의 ‘괴롭힘 금지’나 ‘광고 금지’ 조항 등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게 반대론자들이 자꾸 하는 얘기인데, 법이란 게 그렇게 허술하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물건을 가져갔어도 일부러 훔쳐갔는지, 실수로 가방에 넣었는지 다 따진다. 목사가 설교했다고 제재하는 법이 아니다. 차별금지법의 핵심은 차별의 입증 책임을 피해자와 가해자 중 누구에게 둘 것인지, 조사와 판결 권한을 누구에게 줄 것인지, 처벌의 수위를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 신고자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등 4가지가 잘 짜여 있는지가 핵심이다. 이미 서양의 상당수 나라가 시행하고 있어 참고할 만한 내용이 많다. 법이 혹여 비합리적으로 설계될까봐 걱정하는 건 지나친 우려다. 무엇보다 표현의 자유는 약자가 강자에게 표현할 자유를 뜻한다.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독재자 또는 왕으로부터 죽임을 당하거나 고문당하지 않을 자유다. 저분들이 말하는 자유는 강자가 약자를 마음껏 미워하는 발언을 하게 해달라는 자유여서 헌법상 표현의 자유가 아니다.”

- 결국 차별금지법 통과에 종교계가 가장 큰 걸림돌인 것인가.

“그렇지 않다. 기본적으로는 종교와 사이가 나쁠 이유가 없다. 나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고 믿는다. 하나님이 반대하는데 내가 감히 어떻게 동성애자일 수 있겠나. 우리도 ‘동성애자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 아닌가?’ ‘하나님은 동성애자를 사랑하지 않으실까?’ 이런 논쟁은 얼마든지 받아들인다. 그러나 지금 개신교는 정치세력화를 위해 동성애 문제를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때문에 장애인, 여성 등 모든 사람들의 인권이 다 낮아지고 있다. 지금 이분들은 각종 시민적 권리, 즉 인권조례나 군형법 문제까지 전부 동성애 논리로 반대를 하고 있다. 원래 쉽게 만들어져야 할 조례조차 지금 안되고 있다.”

- 심상정 정의당 후보를 제외하면 모든 대선주자들이 차별금지법 보류 입장을 보이고 있는데.

“오랫동안 정치와 종교가 서로를 이용했다. 정치인이 종교계 리더에게 잘 보여 표를 받으려 하는 건 문제다.”

- 퀴어문화축제는 올해에도 열리나.

“올해 18회째다. 6월3일에 서울광장에서 퍼레이드하겠다고 신청했다. 그러자 우리를 반대하는 단체도 같은 날 행사 신청을 했다. 한 달 동안 3번 조정회의를 했는데 시간만 지나갔다. 나중엔 서울시 측이 잔디 관리를 이유로 모두에 불허 통보를 했다. 서울시는 대체 왜 이렇게 행정을 하나. 순수하게 민간의 힘으로 이만 한 규모로 열리는 행사가 국내에 거의 없다. 서울시가 주최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예년처럼 협조해달라는 것뿐인데, 반대하는 세력의 눈치를 보는 것 같다.”

- 곧 선출될 새 대통령과 차기 정부에 할 말이 있다면.

“우선 대선후보들은 육군참모총장의 동성애자 색출 지시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보여달라.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될 후보가 군에서 벌어지는 불법 개인정보 수집과 함정수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인권에 나중은 없다’, 이게 우리가 늘 하는 얘기다. 대통령 개인이 동성애나 성소수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상관없다. 그러나 대통령으로서는 사회적 차별과 폭력을 방관하지 않겠다는 신념과 책임감이 중요하다. 정치적 이해와 무관하게 대한민국 헌법 제10조(행복추구권)를 대통령이 지켜줬으면 좋겠다.

<홍재원 기자 jwh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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