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마시는' 아이들, 그보다 심각한 문제

서부원 입력 2017. 4. 21.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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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나의 스승 102] 급식소에서 아이들과 함께한 한 달이 준 깨달음

[오마이뉴스 글:서부원, 편집:최유진]

▲ 전혀 다른 두 식사 앞은 내 것이고, 뒤에 둘은 아이들의 것이다. 국도, 김치도, 나물도, 고추도 그들에겐 '못 먹는' 음식이다.
ⓒ 서부원
아이들 틈에 끼어 점심을 먹은 지 한 달이 넘었다. 처음엔 아이들도 어색해하더니, 출장 등 일이 있어 함께하지 못한 이튿날엔 부러 교무실을 찾아와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느냐며 되레 안부를 물어오곤 한다. 수업이 없는 시간에 교사들끼리 모여 식사를 하는 게 보통인데, 굳이 점심시간 아이들 곁으로 간 건 이유가 있다.

점심시간에 대한 아이들의 불만을 담임교사로서 직접 확인해보기 위해서다. 그러자면 머리가 아닌 몸으로 경험해보는 수밖에 없다. 점심시간이 짧다는 것과 새치기가 많다는 것, 그리고 음식이 맛이 없다는 것과 잔반을 남겨서는 안 된다는 규정 등은 아이들마다 입버릇처럼 말하는 거의 '일치된' 불만이다.

과연 4교시 끝종이 울리기가 무섭게 복도는 100미터 경주인 양 내달리는 아이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각 교실에서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과 뒤엉키다보니 여간 소란스러운 게 아니다. 몇몇 아이들이 계단을 뛰어 내려가다 넘어지는 아찔한 장면도 여러 번 봤다. 아무리 을러대봐야 지켜볼 때뿐,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아이들이 급식소를 향해 '전력질주'를 하는 이유는 밥에 앞서는 다른 이유가 있어서다. 서둘러 식사를 하고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뛰어놀기 위해서다. 학년별로 줄 서고, 학생증 스캐닝하고, 다시 배식 줄 서고, 음식을 받아 자리에 앉아 먹고 나면 어느새 점심시간이 끝나버린다는 거다. 먹는 시간은 5분인데 줄 서는 시간이 30분이라며 자조할 지경이다.

점심시간을 밥 먹은데 고스란히 쓴다는 건...

아이들에게 점심시간이란 점심식사만을 위한 시간이 아니다. 운동장에서 뛰어놀 시간이 없으니 점심시간을 체육시간처럼 여기는 것이다. 축구 시합을 위해서 점심 한 끼 정도는 기꺼이 거를 수 있다고 너스레 떠는 아이도 봤다. 참고로, 학교마다 교과별 수업시수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고등학교에서는 체육수업이 주당 2시간을 넘는 곳은 거의 없다.

일주일에 한두 번뿐인 체육수업시간보다 매일 돌아오는 점심시간이 훨씬 소중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주어진 점심시간 50분을 고스란히 밥 먹는 데만 쓴다는 건, 아이들로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급식소 안에는 한 손엔 공을 다른 한 손엔 축구화를 들고 줄 선 아이들이 있고, 운동장에는 늦은 김에 나중에 줄 서겠다며 일찌감치 공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늘어선 줄마다 새치기가 성행하는 것도 그래서다. 신고는 끊임없이 들어오지만, 현장에 있지 않는 한 확인해 처벌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더욱이 천 명이 넘는 아이들이 한꺼번에 밀려드는 곳에서 새치기를 단속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조회 때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떠들어대는 담임교사의 훈화가 고작이다.

교사들끼리 요일별로 순번을 정해 질서 지도를 하고, 학년별로 배식 시간에 차이를 두는 등 나름의 방안을 강구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대책과는 거리가 멀다. 뛰어놀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에서 새치기는 아이들에게 가장 효과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점심시간을 온전히 점심을 먹는 데 쓰도록 하지 않는다면 백약이 무효일 수밖에 없다.

다른 별에서 온 듯한 아이들의 식성

▲ 치킨 카레가 나온 날 치킨 카레는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 중에 하나다. 많은 아이들은 치킨 카레 외에는 아무 것도 담지 않았다.
ⓒ 서부원
당장 점심시간을 늘리는 것도 필요할 테지만, 운동장에서 뛰어놀 시간을 교육과정 속에서 확보해주는 것이 더 근본적인 대안이다. 국영수는 정규수업에다 방과 후 수업까지 매일 한두 시간씩 배정돼 있지만, 체육은 일주일에 고작 한두 시간뿐이다. 이러한 교육과정을 손보지 않고서는, 아이들에게 점심시간은 체육수업시간을 벌충하는 시간일 수밖에 없다.

국영수가 대학입시에 미치는 영향력이 여전히 절대적이라곤 하지만, 모든 아이들에게 다 그런 건 아니다. '수포자(수학 공부를 포기한 고등학생)'가 학교마다 넘쳐나는 건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고, 영어와 국어도 수학의 '길'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게 현실인데, 교육과정은 그런 아이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다. 수업시간 엎드려 자는 것보다 차라리 운동장에서 뛰어놀도록 하는 게 훨씬 교육적일 텐데 말이다.

실로 아이들의 밥 먹는 속도는 엄청났다. 숟가락을 든 지 채 5분도 되지 않아 자리를 떴다. 하나같이 무언가에 쫓기듯 허겁지겁 식사를 했고, 마주앉은 친구들과 대화도 거의 없었다. 밥을 '먹는다'는 말보다 차라리 '마신다'는 표현이 더 적확할 듯싶었다. 그저 체하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그런데, 정작 놀라운 건 따로 있었다. 마치 다른 별에서 온 듯한 아이들의 식성이 그것이다. 그들의 식판 위에 받아든 메뉴는 나와는 아예 딴판이었다. 같은 날 같은 배식구에서 나온 음식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이는 몇몇 유별난 아이들의 식성이라며 무시하기 어려울 정도로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다섯 개의 식판 구멍은 밥과 국, 반찬 세 가지를 위한 구성이다. 성장기 아이들의 영양을 고려해 매일 식단이 달라지지만, 아이들의 식판에 급식소에서 준비한 '1식 3찬'이 그대로 오르는 날은 거의 없다. 좋아하는 반찬 한 가지와 밥만 받아오는 경우가 허다하고, 그마저도 다 먹지 못하고 남기는 아이들이 많다.

음식을 아예 받지 않은 아이든, 한두 숟가락 먹다 말고 잔반통에 통째로 버리는 아이든, 이유를 물어보면 '맛이 없어서'라는 한결같은 대답이 따라온다. 그들에게 고기 외에는 전부 '먹기 힘든' 음식이다. 나물은 말할 것도 없고, 콩나물국이나 시래기된장국 같은 건 아예 손도 안 댄다. 생선이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김치조차 못 먹는다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금요일마다 급식 외면하는 아이들

한번은 한 아이의 '휑한' 식판을 보며 나물 무침을 슬쩍 건네며 골고루 먹어야 한다고 말을 건넸다가 '봉변'을 당한 적도 있다. 순간 귀를 의심했지만, "(나물을 먹으면) 토가 나올 것 같아서"라고 대답했다. 지금껏 나물 요리를 단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다는 그는, 친구들 중에 육개장에 들어있는 채소를 일일이 건져낸 후 먹는 경우도 많다면서 짐짓 태연하게 말했다.

아무리 고기라도 맛이 없으면 요즘 아이들에게 배척당하기 일쑤다. 그러다 보니 바삭한 식감을 살리기 위해 튀기거나, 달달한 소스를 덧입힌 요리가 많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많은 양의 아까운 음식이 그대로 버려지게 된다면서 영양교사도 고충을 토로한다. 다 큰 고등학생들의 입맛을 바꾸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그나마 급식 지도를 통해 잔반을 줄이는 게 상책이라는 하소연이다.

'맛이 없는' 음식을 못 견뎌하는 아이들이 해마다 급증하고 있는 듯하다. 이곳 광주광역시의 경우, 매주 금요일을 '채식의 날'로 지정 운영한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아이들의 편향된 식습관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많은 아이들에게 금요일은 '점심이 없는 날'로 여겨진다. 젊은 교사들조차 금요일 점심만큼은 학교 밖에서 해결하는 경우가 적지 않으니 더 말해서 무엇 할까.

다른 날도 없진 않지만, 금요일의 경우에는 아예 급식소에 오지 않고 곧장 구내매점으로 달려가는 아이들이 많다. 급식소로부터 매일 파악한 학급별 급식자 현황을 받아 개별 지도를 하는 등 고육지책을 쓰고 있지만, 상황이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되레 친구에게 학생증을 맡겨 스캐닝 하도록 부탁하는 등의 편법만 독버섯처럼 생겨나고 있다.

교육이 아이들을 변화시키는 것이라면, 과연 학교는 그 역할의 몇 퍼센트를 감당하고 수행할 수 있을까. 학부모들은 상담을 할 때마다 입버릇처럼 '담임선생님만 믿겠다'고 말하지만, 거칠게 말해서, 그건 부모로서 책임을 회피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아무리 유능하고 열정적인 교사라도 그 '몫'에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걸 애써 외면하고 싶은 것이다.

점심시간 급식소를 나오며 자문해 본다. 식습관 하나 바로잡는 것도 버거워하며 포기하는 마당에 아이들 앞에서 대체 무엇을 가르치겠다는 걸까. 하긴 운동장에서 뛰어놀 시간조차 흔쾌히 내어주지 못해 밥을 '마시게' 하면서, 무슨 얼어 죽을 교육인가 싶기도 하다. 학교도, 학부모도 대학입시를 핑계 삼지만, 언제까지 그것이 전가의 보도가 될 수 있을지 그저 착잡할 따름이다. 아이들과 함께한 급식소에서의 한 달이 준 나름의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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