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세상]4차 산업혁명이 성공하려면

이필렬 방송대 교수 문화교양학부 2017. 4. 20.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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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대통령 선거에 나선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의 4차 산업혁명을 둘러싼 논쟁이 꽤 뜨겁다. 문재인 후보는 대통령직속위원회를 만들어서 4차 산업혁명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한다. 안철수 후보는 정부에서 주도한다는 발상이 박정희식이라고 비판하면서, 민간에서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보기술(IT) 기업 창업과 경영의 경험을 가진 안철수 후보는 4차 산업혁명을 자기 영역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문재인 후보의 3D프린터 발음이 틀렸다고 지적하며 자신만이 이 나라의 4차 산업혁명을 제대로 완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두 후보 모두 한국이 미국이나 독일 같은 국가에 비해 4차 산업혁명의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진단에는 일치한다. 이 진단은 맞는 것 같지만, 그 원인에 대한 분석은 두 후보 모두 설득력이 부족하다. 지난 9년간 정부가 손놓고 있었기 때문이라거나, 정부의 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들의 분석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다. 4차 산업혁명의 바탕은 디지털 기술이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자율주행차, 3D프린터 모두 디지털 기술에 기반을 두는 것이다. 이 기술을 국가나 재벌이 주도해서 발전시킬 수는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은 일정한 한계를 넘지 못한다. 게임 체인저를 탄생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게임 체인저를 만들겠다고 욕심을 부리면 10여년 전의 황우석 사건 같은 정부, 학계, 언론, 기업 합작의 거대 사기극이 튀어나올 수 있다.

얼마 전 대학에 다니는 아이와 독일의 ‘산업 4.0(Industrie 4.0)’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국에서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구글의 래리 페이지나 세르게이 브린 같은 인물이 나오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지체 없이 재벌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정확한 진단으로 보인다. 재벌이 모든 분야에서 ‘좋은’ 인재를 빨아들이고, 경제와 정치뿐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서 강력한 힘을 행사하는 이 나라에서 기발한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해도 게임 체인저로 발전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극심한 생존경쟁과 패자가 되면 부활이 아니라 관심 밖으로 밀려나버리는 사회상황이 청년들을 창의성과는 거리가 먼 공무원이나 공사로 내몰기 때문에, 기존 구조를 뒤흔들 수 있는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싹트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해진다. 먼저 재벌체제를 타파하고, 공무원과 공사 체제를 개혁하고, 패자가 부활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를 만들어줌으로써, 창의적 아이디어가 분출되고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4차 산업혁명을 위한 위원회나 민간기구 몇 개 정도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경제, 교육, 노동, 복지 정책이 모두 달려들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이에 비춰보면 현실성이 거의 없더라도 창의적 교육을 위해 교육체제를 개편하겠다고 하는 안철수 후보가 4차 산업혁명에 좀 더 폭넓게 접근하는 것 같다. 이 점에서 그가 4차 산업혁명과 연관지어 규제프리존 도입 정책에 접근하는 것도 한편으로는 긍정적으로 볼 수 있지만, 그는 규제프리존이 기존 재벌체제를 더 강화하여 오히려 4차 산업혁명을 방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은 고려하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서 박근혜 정부는 독일의 DFKI(독일 인공지능 연구센터)를 본떠 지능정보기술연구원을 만들었다. 두 후보도 대통령이 되면 이런 연구소를 지원하고 새 연구소를 만들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운영하는가다. 독일에도 정부의 지원을 받는 연구소들이 많다. 그런데 독일의 연구소는 정부의 간섭을 거의 받지 않는다. 돈을 사적으로 유용하거나 횡령하지 않았는지만 철저하게 감시당한다. 한국의 연구소는 정부부처에 거의 종속되어 있다. 부처 공무원은 어떤 연구를 어떻게 하는가에도 개입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4차 산업혁명이 제대로 될 수 없는데, 후보들은 하드웨어만 이야기하지 이런 소프트웨어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이필렬 방송대 교수 문화교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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