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위만 '만신창이'되는 TV토론, 일요일에 또 봐라?

배지현,김성욱,손병관 2017. 4. 20.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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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시간총량제' 토론 방식에 비판론 고조, 선관위는 '그대로 강행' 시사

[오마이뉴스 글:배지현, 글:김성욱, 글:손병관, 편집:이준호]

 2017 대선후보 KBS 초청토론의 한 장면.
ⓒ KBS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통령후보에게 공격이 집중된 19일 KBS TV토론 방식에 대한 비판론이 나오는 가운데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KBS와 거의 동일한 방식의 TV토론을 23일 강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후보들에게 공정한 경쟁의 기회를 주자는 애초 취지와 달리 TV토론이 '1위 주자 왕따시키기'로 변질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일으킬 만한 상황이다.                          

대선후보 5인은 19일 KBS 주최로 진행된 19대 대선후보 토론회에 참여해 각 주제마다 후보에게 질문과 답변시간을 합쳐 9분씩 주어지는 '시간총량제'로 토론을 진행했다. 이 방식대로 토론을 해보니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상대에게 질문을 한 번도 받지 못했고,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도 사회자로부터 "시간이 많이 남았다"는 말을 계속 들어야 했다.

반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토론이 진행된 90분 중 45분 동안 각 후보들에게 받은 질문에 답변하느라 주어진 18분을 거의 모두 사용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사드 문제를 연이어 묻자 문 후보가 "이러면 다른 분들의 질문에 답할 수가 없다"며 곤란해하기도 했다. 문 후보는 다른 후보들의 질문들에 답하느라 정작 다른 후보에게 질문할 기회는 거의 얻지 못했다. 시간총량제가 만들어낸 '빈익빈부익부' 현상이다.

이 때문에 KBS 토론이 끝난 후 민주당에서는 "이런 방식의 토론은 더 이상 안 된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민주당 선대위 신경민 TV토론본부장은 <오마이뉴스> 전화 통화에서 "토론회가 아니라 문재인 인사청문회였다"라며 "토론의 목표가 1위 후보의 인사 검증이라고 하면 목표를 달성한 거지만 5인 후보의 식견과 철학을 듣겠다고 하면 완전히 실패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철근 국민의당 대변인도 "어제 지켜보던 국민들은 안철수·문재인 후보 검증이 부족해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며 "미국처럼 일정 수준 지지율이 나오는 1·2위 양자토론이 유익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맞짱 토론이 시급하다"고 문재인·안철수의 양자토론을 제안했다(민주당 박광온 공보단장은 "양자토론도 환영한다. 다만, 다른 세 후보와 그 지지자들의 동의를 안철수 후보 측이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의당 한창민 대변인도 "스탠딩 토론이 효율적이려면 소수여야 한다. 지금처럼 다수일 땐 한 사람에게 집중되거나 한 사람은 소외되는 일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문제를 지적했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중앙선관위는 4월 23일과 5월 2일 방송될 대통령선거 후보자 TV토론 1·3차에 후보당 총 18분의 '시간총량제'를 계획대로 진행할 예정이다.

시간총량제는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미국의 대선 토론 형식을 우리 현실에 적용해보자는 취지로 '스탠딩 토론'과 함께 지난 7일 채택한 방식이다.

기존의 주도권 토론으로는 대선 후보들을 제대로 검증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룰 변경'의 배경으로 크게 작용했다.

▲ 사상 첫 대선후보들 '서서 토론'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생방송 토론을 준비를 하고 있다. 이번 대선 토론은 사상 첫 스탠딩 토론으로 진행됐다.
ⓒ 국회사진취재단
2012년 18대 대선 때는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가 주도권 토론 방식으로 토론회 검증 과정을 거쳤다.

당시 유권자들은 각 후보가 발언한 뒤 일정 시간 안에 정해진 두 후보끼리만 대본에 따라 질문하고 답변하는 토론 방식을 시청한 뒤 대통령 후보를 선택해야 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후보자 검증이 제대로 안 된다는 언론들의 비판이 많았다"며 "시간을 할당해 강제로 답변하고 질문하도록 하는 것을 개선하는 차원에서 도입했다. 역동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며 미국식 시간총량제로 바꾼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미국 대선 토론의 경우 공화당과 민주당의 양 후보가 사전자료나 원고 없이 자유롭게 서로의 공약을 얘기하거나 의혹에 대해 날선 비판을 하는 방식이다. 후보들은 청중을 향해 얘기하거나 방청객의 질문에 답변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토론을 진행할 수도 있다. 양자토론이기 때문에 19일의 '5자 토론'처럼 특정 후보에게 질문이 집중되는 '기현상'도 찾아볼 수 없다.

이 때문에 선관위가 토론 방식의 변화를 보여주기에 급급한 나머지 미국식 제도를 무분별하게 수입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김지윤 아산정책연구원 박사는 "미국 대선 TV토론의 타운 홀(town hall) 방식은 후보뿐만 아니라 관중과 질의응답을 거치며 리더의 소통 능력을 평가할 수 있다는 게 핵심"이라며 "어제의 스탠딩 자유토론 방식은 기존의 좌식 토론을 말 그대로 '서서(standing)'한 것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는 "KBS 토론에선 제대로 된 후보 검증이 힘들었다. 미국에서 형식만 가져오면서 문 후보 같은 경우엔 질문만 받았다"며 "후보들에게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기회를 못 줬다"고 말했다. 이어 최 교수는 "선관위가 특정 후보에게 불리하거나 유리할 수 있는 상황을 피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비판 받고 있는 부분을 수정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선관위는 이러한 비판에도 이미 정한 방식의 큰 틀을 유지한 채 사회자 역할만 증대하는 '소폭 수정'만 하겠다는 입장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위원회가 결정하고 공표하는 것이기 때문에 추후 변경될 사항은 없다"면서도 "어제(19일 TV토론)는 사회자가 개입을 너무 안 했다. (1·3차 토론회에서는) 시간 편차가 많이 나면 사회자가 적절하게 개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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