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엄마들의 '몰표'를 얻고 싶다면

김윤덕 문화부 차장 2017. 4. 20.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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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덕 문화부 차장

설치작가 김범 작품에 '자신이 새라고 배운 돌'이 있다. 새 전문가가 돌덩이를 앞에 두고 "너는 돌이 아니라 새"라고 반복해 주입하는 80분짜리 영상물이다. 2009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작가였던 양혜규의 '무명 학생 작가들의 흔적'도 위트 있다. 헌 교과서에서 텍스트는 지우고 학생들이 암기하기 위해 줄 긋고 동그라미 친 흔적들만 살려 작품화했다. 마치 어느 예술가의 드로잉처럼 보인다. 이 재기 발랄한 작품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레슨 제로' 전시에서 볼 수 있다. 주입식 교육의 일방성, 획일성을 풍자한 작품들이다. 문패가 '레슨 제로'인 건 모든 숫자에 곱하면 무(無)가 되고, 모든 숫자 뒤에 붙이면 열 배씩 불어나는 숫자 '0'처럼 어떻게 가르치느냐에 따라 교육은 제로가 될 수도, 무한대의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선 주자 토론회를 보다가 '레슨 제로'란 말을 곱씹었다. 질문 요지를 못 알아듣고 그저 웃고 퉁치려는 후보, 경청은 없고 통배짱으로 맞서는 후보, 배운 걸 체화하지 못한 채 웅변만 하는 후보들이 전형적인 한국 교육의 산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내건 교육 공약은 토론회만큼이나 부실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돌파할 큰 그림은 없고 학종이냐 수능이냐, 특목고 폐지냐 유지냐 같은 곁가지를 잡고 설전을 벌였다. 심지어 고교 무상 교육, 반값 등록금 같은 공약은 그들이 '무능하다'며 내쫓은 박근혜 전 대통령 공약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엄마들 사이 '누가 돼도 입시 지옥은 계속된다'는 자조는 그래서 쏟아졌다.

김윤덕 문화부 차장

인공지능, 생명과학이 주도할 4차 산업혁명 시대는 단순 지식이 아니라 창의력, 문제 해결력, 공감과 협업 능력을 지닌 인재만 살아남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전망이다. 대통령 될 사람이라면 이에 대한 통 큰 비전을 보여줬어야 한다. 대입제도를 밥 먹듯이 바꿔도 교육은 왜 제자리걸음인지, 사교육 시장은 왜 계속해서 팽창하고, 수학 포기자는 급증하며, 핀란드 못지않게 뛰어난 한국 교사들은 왜 공교육을 망쳤다는 오명(汚名)을 뒤집어써야 하는지 그 원인부터 파고들었어야 한다.

현장의 목소리에 조금만 귀 기울였어도 "역대 최대 빈곤 공약"이라는 혹평은 받지 않았을 거다. '대한민국의 시험'을 펴낸 교육학자 이혜정은 우리 교육을 바꿀 열쇠가 시험에 있다고 한다. 내신부터 수능까지 오지선다형으로 꼬고 또 꼬는 시험 방식만 바꿔도 교실 풍경이 달라진다고 했다. 수학자 박영훈은 "한국 아이들이 수학을 잘한다는 건 대단한 착각"이라고 꼬집었다. '목적지에 도달은 하지만 어떤 길을 밟아 왔는지는 기억 못 하는 내비게이션식 수학의 병폐를 없애지 않는 한' 수포자는 늘고 교실은 황폐해진다고 경고한다.

정치사상가 에드먼드 버크는 "교육은 적은 비용으로 나라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했다. 사드만큼 교육이 중요한 이유다. 엄마들은 보수의 적자(嫡子)가 누군지, 진짜 진보가 누군지 따위엔 관심 없다. 내 아이 미래를 열어줄 지도자여야 한다. 지금이라도 '수포자' 줄일 묘안을 내놓는 후보가 있다면 기꺼이 한 표 던지겠다. 커리큘럼, 시험 방식, 교수법을 쇄신하겠다 도전하는 사람을 지지하겠다. 대학 안 가도 행복해지는 길 열어주는 후보는 몰표를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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