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4월, 과학기술은 '춘래불사춘'

2017. 4. 18.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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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진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융합연구본부장
윤석진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융합연구본부장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20세기 가장 유명한 시 중에 하나라는 황무지의 첫 구절이다. T.S. 엘리엇은 삶의 방향과 의욕을 잃은 채 살아가던 20세기 초 현대인의 황폐한 정신세계를 그렇게 표현했다. 하지만 지난 반세기 우리가 지나온 봄은 T.S. 엘리엇 시와는 달리 치열했고 눈부시게 찬란했다. 우리 삶의 방향은 뚜렷했고 의욕은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세계가 놀라고 부러워하는 성공을 이뤄냈다. 그랬던 우리 대한민국의 지금은 어떠한가?

2017년 4월 우리의 봄은 더 이상 찬란하지 않다. 아픔이 많은 4월이라서가 아니다. 밝은 앞날이 보이지 않아서다. 작년 유엔 행복보고서에서 우리나라 국민의 행복도는 58위로 조사됐다. KISTEP에서 2016년 실시한 대국민 설문 결과에 따르면, 우리 국민 중 삶에 만족한다는 비율은 42%로 절반 이하다. 또 우리 사회를 신뢰한다는 응답도 11%에 불과했다. 더 큰 문제는 83%가 5년 뒤에도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는 차치하더라도 30년 넘게 연구실과 연구행정을 했던 필자도 과학기술 측면마저 희망 가득한 미래를 그리기 어렵다. 우리가 사랑했던 4월의 파란 하늘은 과학기술 문명의 부산물인 미세먼지에게 빼앗긴 지 오래다. 인공지능, 자율주행, 양자컴퓨터, 블록체인 등 마술과 같은 기술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성큼 다가오며 우리 일자리를 위협한다. 과학기술마저도 더 이상 밝은 미래의 전령이지만은 않은 것이다.

사실 지난 50년 동안 과학기술이 일관되게 전한 미래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대한민국을 배고픔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었다. 1966년 KIST 설립을 시작으로 60, 70년대 산업화 기술 기반을 제공했다. 80, 90년대 들어 선진기술을 추격하며 세계 유수 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기술적 토대 마련을 도왔다.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이로운 경제 발전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 제 역할을 다한 것이다. 그렇기에 2000년 초반 실시된 국민의식조사에서 과학기술에 대한 신뢰도는 73.3%로 조사 대상 중 1위를 차지했다.

우리는 2000년대 들어 더 이상 모방과 추격 전략이 유효하지 않음을 깨닫고 선도 모델로 변모를 꾀했다. 하지만 전략적 요소투입이라는 검증된 성공 공식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미래 먹거리를 마련해야 한다는 경제적 가치를 중시했다. 최근 들어 과학기술계를 바라보는 언론의 시각이 곱지 않다. 논문 특허는 세계적 수준이라고 하지만 국민이 체감할만한 성과는 대체 어디 있냐고 묻는다.

사실 과학기술계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과거 추격형 연구와 같이 성과가 보장되는 연구 분야와 주제가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기술 투자가 후순위로 밀리는 것은 같은 이유에서 일 것이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정부재정총지출은 4.5% 증가했다. 반면 R&D 투자는 최근 두 해 동안 제 자리 걸음을 하며, 같은 기간 평균 3.5%에 그쳤다. 항상 높은 증가율을 보여 왔던 R&D 투자 추세가 꺾인 것이다. 우리 과학기술의 방향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종전을 앞둔 1944년, 미국 바네사 부시는 대통령 루스벨트의 요청에 따라 '과학, 그 끝없는 프런티어'라는 과학정책과 전후 과학 프로그램 기획이 담긴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는 기초연구가 중장기적 산업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신념과 과학자에 의한 R&D 거버넌스를 제시했다. 50여년이 지난 1997년, EU 집행위원회는 '사회, 그 끝없는 프런티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번엔 경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학기술과 사회의 상호작용 강화를 강조했다.

필자는 이 두 보고서에서 우리 과학기술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을 수 있었다. 그 첫 번째는 경제라는 프레임에서 국민행복까지 확장이다. 화폐가치 관점에서 본다면 중요성이 낮은 분야일지라도 국민행복 관점에서 본다면 중요한 분야가 많다. 메르스, 조류인플루엔자, 미세먼지 연구가 좋은 사례일 것이다. 두 번째로 효율에서 효과로의 전환이다. 효율은 동일 목표를 달성하는데 시간, 연구비 등 자원을 최소화 하느냐에 주안점을 둔다면 효과는 우리가 원하는 문제를 제대로 풀어냈느냐에 중심을 둔다. 흔히 우리는 과학기술정책을 논할 때 효율이라는 단어를 먼저 떠 올린다. 말로는 선도형 연구를 외치며, 우리 체질은 추격형 연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할 부분이다.

앞서 언급했던 2000년대 초반 국민의식조사에서 우리 국민의 10명중 9명은 과학기술에 대해 희망적인 태도를 갖고 있었다. 지난 10여 년간 과거 성공 공식을 답습하며 실기하는 동안 과학기술에 대한 지지를 이미 잃은 것은 아닐까 걱정스럽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이 화두인 지금 우리 과학기술계도 신발 끈을 다시 매어야 한다.

도종환 시인의 시구처럼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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